이번 칼럼은, 지난 11월 5일 광화문에서 있었던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었던 광화문 촛불집회 참여 후기를 공유하며, 박근혜 퇴진에 대해 묻는 여섯 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지, 부모로서 지금의 나라 상황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등을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정말이지 몇 달 만에 남편과 단 둘만의 시간이 생겼습니다.

영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다 아시죠? 우리 엄마들에게 이런 시간이 얼마나 희소한지를…

몇 주 전, 시부모님과 식사를 했는데, 아이가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서 자고 오고 싶다고 하더군요.

‘야호! 올레! Bravo! Horray!’ 저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죠.

그리고 아이와 시부모님이 서로 약속을 잡은 날이 바로 지난 11월 5일이었어요.

오랜만에 주어진 엄청난 자유시간에 무얼 할까 무척 고민도 되고 설레기도 했지만, 사실, 올해 큰 맘 먹고 준비하고 있는 시험의 2차 응시일이 3주 정도밖에 남지 않아서 특별히 맘처럼 대단한 일정을 잡을 수는 없었어요.

결혼기념일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런 황금 같은 기회에 간만에 스파펜션이나 호텔패키지 같은 거라도 준비해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결국, 남편과 고민고민 하다가 잡은 일정은?

그 간 너무너무 보고 싶었던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함께 본 후, 박근혜 하야 촉구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이었어요.

'무현, 두도시의 이야기' 포스터 및 영화 스틸컷. ⓒ네이버영화

‘무현 두 도시 이야기’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일대기를 담담한 필치로 풀어 놓은 다큐멘터리 영화에요. 개봉관이 많지는 않지만, 다행히 집 근처 백화점 내에 있는 멀티플렉스 상영관에서 하고 있어서 편하게 가서 관람할 수 있었어요.

요즘처럼 하수상한 시절, 혼돈의 시기에 노무현 대통령의 발자취는, 그와 나의 정치적 이념이 다르냐 같으냐와 상관없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영화 속에서 숱하게 들었던 그 분의 연설들과 선거 운동 중에 아이를, 아줌마를, 사람들을 대하는 진솔한 태도를 보며, 그 분의 말 속의 진정성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그 분을 ‘그런 사람’으로 만들고, 기억되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서도 안 되는 ‘그녀’!

우주의 기운과 살점이 뜯겨져 나갈 때까지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을 논하는 그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써 준 것도 제대로 끊어 읽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연설들과 노무현 대통령의 아름답고 멋진 연설들은 너무나도 비교가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직업인 제게, 그 분의 사람의 영혼을 잡아 끄는 마력을 가진 멋지고 논리 정연하면서도 감정까지 듬뿍 담긴 연설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제 귀와 두뇌가 충만한 지적 유희의 호사를 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이 너무너무 보고 싶습니다.

사실, 한 번도 글이나 말로 다 꺼내 놓은 적은 없지만, 저는 직접 그 분을 청와대에서 접견할 기회가 있었던 터라, 영화를 보는 내내 더더욱 그 분이 그리웠습니다. 영화를 보며, ‘그래. 그 때 그 분을 생각하면, 충분히 저렇게 행동하셨을 거야.’라고 생각해 가며 그 분을 그리며 웃고 울다 나왔답니다. 기회가 허락되고, 돌아가신 그 분께 누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제가 잘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제가 만났던 그 분의 이야기도 꼭 풀어 놓고 싶습니다.

벅차고 먹먹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서서 우리는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양초와 종이컵, 커터칼을 사고, 밥을 먹고 가기에는 너무 시간이 빠듯해 밥을 포기하고 초코바와 음료를 사가지고 광화문 촛불집회에 가기 위해서였지요. 십 수년 만에 참여하는 집회에 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으로 갔습니다.

촛불을 들고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 ⓒ은진슬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라는 슬로건 아래 정말이지 엄청난 수의 시민들이 집회 시작 30분 전임에도 불구하고, 광화문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제 뒤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께서도 계셨고, 이응이 또래의 아이를 데려온 가족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모두들 현재의 말도 안 되는 국정 상황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나온 것입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에서 김정호의 딸의 이름, ‘순실’ ⓒ네이버영화

며칠 전의 일입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남편과 나, 아이를 돌봐주시는 이모까지 자주 순실 순실 거렸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이응이가 물었죠.

‘엄마! 순실이가 누구야? 순실이는 지도 김정호의 딸이잖아?’

역시 아이들은 정말 하찮은 것들도 잘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함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봤음에도, 저는 그걸 잊고 있었거든요.

‘아! 맞다. 이응이는 정말 기억을 잘 하는구나! 엄마는 잊고 있었는데… 그런데 엄마, 아빠가 말하는 순실이는 그 순실이가 아니고…’

여섯 살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저는 최대한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이렇게 말했죠.

‘박근혜 대통령 알지?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고 계시는 분, 순실 할머니는 그 분의 친한 친구야. 그런데,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 할머니는 자기가 대통령이니 힘이 세다고, 순실 할머니는 내 친구가 대통령이니까 나도 뭐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는, 자기 갖고 싶다고 맘대로 남의 것을 뺏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정해진 규칙을 어기고 너무 많은 말썽을 부려서 나라에 엄청난 피해를 끼쳤어. 정말 말썽꾸러기 할머니들이지. 그래서 어른들이 자꾸 이야기 하는 거란다.’

‘아! 박근혜 퇴진 나도 들어 봤는데, 그럼 대통령 못하게 하면 되잖아!’

‘그래, 그렇지. 그래서 지금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 할머니랑 순실 할머니랑 잘못했다고, 대통령을 그만 두시라고 자꾸 이야기 하고 모이고 그러는 거야.’

‘아! 그렇구나!’

내 아이를 위해 촛불을 들고 외친 그날, ⓒ은진슬

사실, 20대의 저는 선배 장애인들이 이동권을 얻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지하철 철로에 쇠사슬로 몸을 묶고, 안마사들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릴 때, 그것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고상하게 책상 앞에 앉아 외국 서적과 법률을 뒤적이고, 향긋한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죠. 너무 강경하게 투쟁하는 건,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우리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 이성적이고 냉정한 태도로 말하고 글을 써서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저런 건 너무 극단적이고 감정적이며 세련되지 못한 태도라고, 하지만, 이제 40을 바라보는 저는, 이 혹독한 나라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저는 이제 압니다.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가 누리는 것들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아무도 우리의 어려움을 돌아보지 않았을 거라는 것을. 나와 같이 소프트파워로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 방법도 있고, 다른 이들처럼 절박함을 세상에 외쳐 간절한 열정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그저 다를 뿐, 그 누구도 틀리지 않다는 것을.

이런 제가 내 아이를 위해 근 17년 만에 집회에 참여한 것입니다. 내 아이가 이 다음에 자라서, 엄마는 그 때 뭘 했냐고 물으면 당당히 대답할 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엄마, 아빠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그 날 그 자리에서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외쳤다고.

촛불시위는 생각외로 문화제나 축제 같이 화기애애하고 즐거우면서도 절제된 분위기였다. ⓒ은진슬

영화를 보고 광화문으로 이동하기 전,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트윗을 이미 접한 터라, 사실, 걱정도 되고 긴장도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그 곳에 가니 어떤 문화제나 축제 같은 곳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로 화기애애하고 즐거우면서도 절제된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촛불에 불을 부쳐주었고, 마치 모두 아는 사람들인 양 친절한 눈길과 손길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집회가 시작되자 짜릿짜릿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내 생애를 통틀어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안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과 공존했던 적은 없었으니까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진심을 다 해 ‘박근혜 퇴진’, ‘박근혜 하야’를 외쳤습니다. 음악을 전공했던 제게는 그 외침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이하고 웅장한 사운드 그 자체였습니다. 그 곳의 20만 개의 악기가 ‘박근혜 하야’를 외치면, 동시에 울린 그 악기 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반복과 긴 울림을 일으키며 멋진 민주교향곡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 시간 그 자리의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들이 이 나라의 미래를 바꾸는 전주곡을 연주한 것입니다.

저도 그 시간 그 자리의 일원일 수 있음에 벅차고 감사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또 얼마나 질서 있고 평화롭고 즐거웠던지요.

다들 촛불을 들고 흥얼흥얼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는 물러나라!’를 노래처럼 읊조리며 기쁘고 즐겁게 시청역으로, 광화문역으로 걸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복잡하고 큰 집회를 마치고 막 광화문광장을 나서려는데, 그 어마어마한 인파 속에서 남편 회사 동료와 딱 마주쳤다는 거 아니겠어요? 심지어 그 분은 혼자 오신 듯 했어요. 남편 회사는 매우 규모가 큰 공기업이라 이렇게 만나지기는 정말로 힘든 회사임을 감안할 때, 현재 국민들의 민심을 극적으로 대변해 주는 사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시청역까지 걸어가는데, 거리에는 쓰레기 하나 없고, 너무나도 안전하고 질서정연하고 흥겨운 분위기였어요. 역에는 퇴근시간만큼 사람이 북적북적거렸지만, 모두 질서를 지켜 아무 문제 없이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귀가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분위기였습니다. 집에 들어가는 길에, 저녁을 먹지 못한 우리는 마트에 들러 스파클링와인 한 병과 연어회를 사 들고 들어와 시민축제의 벅찬 여운을 즐겼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집회는 계속 될거라고 하죠? 저처럼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은 아이들 때문에 몸이 가볍고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혹시 참여하지는 못하더라도 SNS에서 관련 기사를 공유한다거나, 활발하게 의견을 개진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그 뜻을 응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정도라면, 부모님과 함께 집회에 가서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는 민주시민교육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조금 한산한 집회 날을 골라 이응이와 함께 가서 더 많은 걸 보여주고 들려줄까 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세상을 위해, 우리 엄마 아빠들도 모두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 함께 촛불을 들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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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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