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제 선수의 타격장면. 초청한 일본 홋카이도 워리어팀의 선수로 참여하였다. ⓒ이찬우

9월 5일과 6일 양일간 일본 동경 외곽에 있는 세이브프린스돔 D주차장에서 열렸던 ‘일본 라이온스컵 휠체어소프트볼대회’에 초청을 받아 다녀왔다.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편이지만 이번 출장은 남다른 감회가 있다. 혹시 김명제선수를 아는가? 2005년 두산베어스에 1차 지명선수로 입단한 장래가 촉망되는 우완투수였고, 2009년 교통사고로 척수손상을 입고 우리의 뇌리에서 잊혀졌던 그 선수와 함께 대회를 참관한 것이다.

김 선수는 긴 병원생활과 장애로 인한 오랜 방황을 끝내고 지금은 휠체어테니스실업팀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데, 매우 활발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일본에 가기 전에 척수협회를 방문했지만 필자가 갑작스런 외부 일로 만날 기회가 없어 일본에서 처음 그를 보게 됐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의 그는 호남형으로 인상이 매우 좋았다.

사실 이 대회를 공동 주최한 일본휠체어소프트볼연맹과의 인연은 몇 해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맹의 간사로부터 척수협회로 먼저 연락이 와서 소프트볼에 대한 설명과 교류를 요청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소프트볼을 한다는 것이 미더워서 적극적인 연락을 하지는 못했었다.

간혹 유투브를 통해서 일본 선수들이 미국의 월드시리즈에 참여하는 장면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현재 휠체어 소프트볼 국가대표 감독이기도 하고 홋카이도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마사미 오니시 씨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왜 이 종목에 깊은 애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김명제(사진 아래의 가운데)선수와 함께 기념촬영. 사진 위쪽에 하얀셔츠를 입으신 분이 미나미 오니시 감독이다. ⓒ이찬우

지금부터 5년 전, 고교감독 시절 제자였던 한 선수가 자동차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이 소식을 나중에 듣게 되어 제자가 휠체어농구선수로 시합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가슴이 아팠고, 곰곰이 생각하니 야구를 하던 제자에게 다시 야구를 하게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고 수소문을 하다가 인터넷을 통하여 미국에서 휠체어소프트볼연맹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관련 규칙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당시 대학 감독을 하던 홋카이도에서 처음 팀을 구성하였다고 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홍보를 하여 일본 내에도 8개의 팀을 구성하게 되었고 미국의 월드시리즈에 참가하며 역량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야구의 고장답게 1976년에 National Wheelchair Softball Association (NWSA)이 발족되었다고 한다. 현재 30여 팀이 활동 중이고 메이저리그야구팀(MLB)과도 스폰서를 맺고 교류를 활발히 한다고 한다.

이번의 일본대회가 의미가 있는 것은 처음으로 프로야구팀인 세부라이온스팀의 후원으로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는 12개의 프로팀이 있는데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휠체어소프트볼의 저변확대를 꾀하고 있다고 했다.

세브라이온스팀의 사장과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번 대회에 대한 열정과 기대가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었다.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김명제 선수와 라이온스의 홈구장인 프린스돔 실내구장을 방문하였는데 그 규모가 대단하였다. 시합이 없는 날인데도 팬들이 구경을 오는 모습에서 일본의 야구 사랑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김명제 선수도 홋카이도 워리어(Warrior)팀의 선수로 시합에 참가하였다. 사고 이후 처음 잡아보는 배트와 시합으로 흥분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과거에 야구하는 느낌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옆에 있던 일본 감독에게 다양한 질문을 하는 그는 아직도 야구인이었다. 이번의 일본 여행이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하였음에 틀림이 없다고 본다.

사고로 과거의 명성을 잃는다는 것은, 특히 유명인으로서는 더욱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기고 새로운 것에 도전을 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우리 척수장애인의 본 보습이 아닐까? 이것이 진정한 ‘일상의 삶’이다.

야구와는 소프트볼은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몇 가지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일단 모두가 휠체어를 타야 하고, 볼의 크기는 16인치로 14인치인 소프트볼보다 크다. 당연히 휠체어를 타고 경기를 운영해야 되기 때문에 글러브는 끼지 않는다. 선수는 10명 또는 9명으로 구성되고 심판은 주심과 루심 각 1명이다.

현재 일본의 경우는 저변확대를 위해 비장애인들도 휠체어만 타면 선수로 참가할 수 있지만 공식적인 국제경기에는 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다. 모든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면 선수로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배트는 소프트볼 경기에서 사용하는 알루미늄배트를 사용한다. 특이한 것은 타자가 배팅을 할 때 휠체어가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힘이 좋은 선수들은 휠체어를 손으로 고정하고 한 손으로 배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구장은 휠체어를 움직여야 되기 때문에 아스팔트 위나 실내운동장에서 한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는 휠체어소프트볼 전용구장도 있다고 한다. 일본도 아직은 환경이 열악하지만 이정도의 관심과 열정이라면 조만간 전용구장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라이온스구장에서 제공한 주차장 위에서 하는 시합이지만 모두가 경기를 즐기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특히 가족들과 함께하는 경기라 마음에 들었다. 응원하느라 소리 지르고 웃고 즐기는 이 에너지는 가족과의 화합에도 분명히 일조를 할 것이다. 가끔 구장에서 바비큐 파티로 모든 참가자가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일본연맹은 2020년 동경장애인올림픽에 이 경기를 시범종목으로 올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일본 외에는 이 시합을 하는 나라가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연맹을 조직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척수협회의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고민 중이다. 휠체어 사용 장애인, 특히 척수장애인의 단체 스포츠 종목이 부족한 상항에서 필요한 종목이라는 생각이다. 또한 가족들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도 야구유니폼을 입고 힘차게 야구를 즐길 수 있도록 힘을 모을 생각이다. 꿈은 이루어진다.

휠체어소프트볼시합의 한 장면. ⓒ이찬우

절단장애인인 일본선수의 휠체어소프트볼경기에서 타격 모습. ⓒ이찬우

이 시합을 개최하신 세이브라이온스 야구팀의 사장과 기념촬영.(사진 위의 오른쪽) ⓒ이찬우

일본 홋카이도 워리어팀 선수들과 기념 촬영. ⓒ이찬우

일본 세이부 라이온스팀의 홈구장인 프린스돔에서 협회 직원들과 기념 촬영. ⓒ이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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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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