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9일자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이하 편의증진법 시행규칙)과 시행령이 동시에 개정됐다.

시행령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주차 방해 시 5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주요 개정 내용이라면 시행규칙은 BF(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인증을 받으면 적합성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주요 개정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편의증진법 시행규칙 제3조의 2(편의시설 설치기준의 적합성 확인 등)제2항에 “편의시설 관련 적합성 확인 요청을 받은 시설주관기관의 장애인 등 편의시설 관련 부서는 대상시설별 편의시설의 종류 및 설치기준 적합여부, 편의시설의 구조·재질 등에 관한 세부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 경우, 법 제10조의 2에 따른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받은 대상시설은 적합성 확인을 받은 것으로 본다”라고 하여 단서를 붙인 것이다.

법적 용어에서 갈음하거나, 간주하거나, ~것으로 보는 등을 의제라고 한다. 성년의제라고 하면 20세가 되지 않아도 부모의 동의를 얻어 결혼한 사람은 성인으로 본다는 것이다. 인허가 의제란 인허가 과정에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하여 A법에서 허가를 받도록 하고, B법에 의해서 한 행위에 대하여 허가를 받은 것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먼저 동법 시행규칙 제1조 목적에서 상위법에서 위임하거나 위임을 행하기에 필요한 것을 규정하기 위해서라고 하였는데, 의제는 위임한 바가 없고, 적합성검사 행위를 시행하기에 필요한 조치라고 보기에도 무리수가 따른다.

보통 의제는 법률에 의해 정해야 하는데, 의제를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것 역시 위헌의 요소가 있다 하겠다. 과거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마사 제도를 의료법 시행규칙에서 정하였다가 법률에 의하지 않았다고 하여 위헌이 되어 법률에서 규정하는 것으로 개정한 바 있다.

법적 용어 중에 집중효라는 것이 있는데, 여러 법률에서 허가, 인가, 면허를 요구할 경우 특정한 행정에 집중시켜 행정을 간소화하고 집중화하는 것이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을 받으면 편의시설 적합성 검사를 받은 것으로 한다는 것은 집중효가 아니라 분산효가 생긴다.

보통 법률에서 집중효를 위해 의제제도를 채택할 경우 부처 간의 상호 협력을 하도록 규정하는데, 적합성검사 의제에는 이러한 협의를 규정하지 않았다.

BF인증 심사에서 적합성 검사에서 요구하는 규정을 반드시 준수하여야만 인증심사를 통과할 수 있고, BF인증심사에는 비용이 들어가므로 건물시공자나 건물주의 부담을 줄여 규제를 완화해 주자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건물 인허가는 지자체의 소관인데, 적합성 검사는 지자체에서 하지 않고 BF인증심사 기관에서 인증을 받으면 되니 업무를 행하는 지자체는 BF인증을 받아오면 무조건 적합성은 면제해야 한다. 그러므로 상호 협의가 아니라 그냥 권한을 포기하고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BF인증 심사를 활성화하는 데에는 의제 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공공건물은 필수적으로 BF인증심사를 받도록 강제화하였기 때문에 BF인증심사에 무엇인가 인센티브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도 필요했을 것이다.

BF인증은 여러 부처의 산하 기관이 심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보건복지부의 일반업무인 편의시설 적합성 검사가 의제제도 도입으로 인하여 노동부, 국토부 산하 등 개별 공공기관이 의제처리 하는 것이 적합한가도 의문이다.

현재 BF본인증은 준공, 시공완료 및 사용승인 후에 신청하여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기준적합성 확인은 사용승인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이를 절차적 시간의 선후를 보면, 예비인증(허가신청→기준적합성 확인→건축허가→BF인증) 본인증(공사완료→기준적합성 확인→사용승인→BF인증) 순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BF인증을 받은 건물은 기준적합성 확인을 받은 것으로 본다는 시행규칙의 규정은 건축 관련 행위의 앞뒤가 뒤바뀐 것으로 도저히 동 요건을 충족할 수 없는 규정이 상충하는 구조이다.

그리고 BF의 경우 인증유효기간 5년이 경과된 뒤 재인증을 받지 않은 건물에 대한 유지·관리 책임과 기준적합성 확인의 방치문제가 발생한다.

편의시설 적합성은 준공허가의 조건이었는데, 이는 기한이 없다. 그러나 BF인증은 5년이란 유효기한이 있어 5년 후 재검증을 받지 않으면 의제가 풀려 적합성을 거치지 않은 건물이 되어 버린다.

BF인증제도를 활성화하고, 건축주의 부담을 경감시키고자 하였다면, 먼저 BF심사규정에서 적합성 검사의 기준을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심사를 통과할 수 없도록 점검을 해야 했다. BF인증은 최우수, 우수, 일반으로 적합성검사에 통과하지 않은 요소를 하나 정도 가지고 있어도 일반으로 하여 BF인증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의제제도를 도입하려면, 시행규칙이 아니라 법에서 정해야 하고, BF인증을 받으면 적합성 검사를 받은 것으로 본다는 표현보다는 적합성 검사 또는 BF인증을 받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의제가 아니라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된다.

사실 편의증진법은 건축법의 부속물은 아니다. 상위법도 하위법도 아닌 동일한 법률이다. 그런데 건축법에는 편의증진법과의 연관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편의증진법은 건축관련자가 보기에는 귀찮은 규제로 느껴질 수 있고, 미쳐 그런 규정이 있는지 몰라 놓칠 수도 있다.

편의증진법이 아닌 건축법에서 편의증진법에 의한 BF인증이나 적합성검사를 득하도록 규정한다면 편의증진법은 더욱 효력이 있지 않을까 한다.

지금이라도 시행규칙이 아니라 편의증진법률에서 BF에 대한 인센티브로 의제제도를 규정하도록 법 개정을 해야 하며, 정부는 국회에 정부발의안으로 개정안을 조속히 제출하여 줄 것을 기대한다.

하위법이 상위법을 이행하기 위해 규정한 것이 아니라 상위법을 피하거나 완화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려면 최소한 법에서 별도로 정한다는 유보조치라도 해야 한다. 장애인활동지원법에서 대상을 별도로 정한다고 하여 놓고, 하위법에서는 대상을 장애인 몇 급 이하로 제한한다고 하면 위헌은 아니다.

단지 법을 정한 것은 입법부이고, 법을 이행하는 것은 행정부이다. 법 취지를 입법부가 정하는 법률에서 정해 놓고 별도로 정한다는 규정으로 인하여 해석권이나 이행에서의 제한을 허용해 버리는 것은 법률을 만들 때에 주의를 하지 않으면 법을 알맹이가 없는 법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의제를 시행규칙에서 정한 것은 그것보다 더 위험하다. 이는 위헌 요소이기 때문이다. BF를 강화하려면 적합성 검사 면제 외의 다른 인센티브도 필요하며, 행정 절차상의 순서를 고려할 경우 BF인증을 득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면 적합성 검사를 받지 않도록 하거나, 준공 이전에 BF를 받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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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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