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성문집 ⓒ이승범

학성문집

권주열(남, 63년생, 지체장애) 시인

학성동 가구골목에 가면 학성문집이라고 있다. 그 안에는 문이 수북 쌓여 있다. 문도 정작 여닫기기 전에는 저렇게들 겹겹이 누워, 창이 오기 전에 미리 창으로 기다리거나, 집보다 먼저 문으로 설레는구나, 하고 지나치는데, 문득 학성문집 그 커다란 출입구엔 문이 없다. 치아 빠진 잇몸 같은 문틀만 남아, 행여 저렇게 많은 문이 걸리적거릴까봐, 문을 떼버린 학성문집. 그 문 안에는 연신 기계가 돌아가고 톱밥이 날리지만 마음의 안팎으로 서성이던 문, 노크를 해도 짐짓 벽인 체 하던 문, 마침내 마음 열고 사방 벽까지 환하던 문, 문은 없다 그 어디에도. 단지 수북하게 쌓인 짐짝, 그 짐짝들이 먼지 뒤집어 쓴 채 문을 못 열고 있다

권주열: 구상솟대문학상 본상(2002), <정신과 표현> 등단(2004) 울산문인협회 올해의 작품상(2009) 외. 시집 <바다를 팝니다> <바다를 잠그다> 외.

시평 : 출구가 없다

방귀희(솟대문학 발행인)

시인의 직업은 약사이다. 시인의 연배에 소아마비 약사들이 많다. 그 당시 공부를 잘 한 장애인들이 택할 수 있었던 직업이 매우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교육 혜택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에게 약사는 최고의 직업이었지만 막상 본인들은 답답해 했다.

그 답답증을 치유하기 위하여 권 시인은 시를 썼던 것이다. 시인은 구상솟대문학상 본상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시작했다. 시인에게 약국은 답답한 공간이 아니라 시상의 발상처가 되었다.

학성문집은 시인의 경험을 통해 나온 시이다. 한때는 책방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던 희망의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긴 흉물스러운 폐가가 되더니 급기야 책 대신 기계가 들어앉았다.

책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을 학성문집이란 시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책을 멀리하는 현대인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주고 있다. 책방일 때는 사방이 문이었지만 이제 문은 없다고 한 것이다.

정말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문은 없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학성문집(영시)

Hakseong Door Shop

Gwon Ju-yeol

If you go to the furniture alley in Hakseong-dong you can find Hakseong Door Shop. Inside, doors are piled on top of each other. Before they are actually opened and closed, doors lie like that in layers, waiting as windows before the windows arrive or trembling in excitement as doors until their house comes along. So I thought as I passed by. But in the vast entrance to Hakseong Door Shop there is no door. Only a doorframe remains, like a toothless gum; perhaps the front door of Hakseong Door Shop was taken off so that it would not get in the way of all those many doors. Inside that doorway machines keep turning and sawdust flies up, but the door that once was the entrance to a heart, the door that pretended to be a wall even when someone knocked, the door through which light shone onto every wall when the heart finally opened, such doors are nowhere to be found. There are merely objects piled one on another, and those objects, thick with dust, cannot be opened.

Mr. Gwon Ju-yeol. Born 1963. Physical disability.

Ku Sang Sosdae Literature Award - recipient (2002)

Debuted in Spirit & Expression (2004)

Ulsan Writers’ Association Annual Award (2009)

Poetry collections: Selling the Sea; Locking the Sea

The poet is also a pharmac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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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문학 칼럼리스트
1991년 봄, 장애문인의 창작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이자 유일한 장애인문학지 '솟대문학'을 창간한 후 현재까지 단 한 번의 결간 없이 통권 96호(2014년 겨울호) 까지 발간하며 장애인문학의 금자탑을 세웠다. '솟대문학'의 중단 없는 간행은 장애문인의 등용문이 되었으며, 1991년부터 매년 솟대문학상 시상으로 역량 있는 장애문인을 배출하고 있다. 2015년 12월 '솟대문학' 통권 100호 발간을 위해 현재 “100호 프로젝트”로 풍성한 특집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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