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발, 발= 영화 「킬빌(kill bill)⌟에서 5년간 혼수상태였던 더 브라이드가 마비상태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위해 모든 감각과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하는 첫 마디는. “엄지 발가락을 움직여.” 그녀는 생존의지를 그 발가락 하나에 집중시킵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 이사도라 던컨 아시죠? 발을 딱딱한 토슈즈(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설수 있게 만들어주는 슈즈)안에 넣고 짜여진 형식에 맞춰 춤을 추는 ‘발레’의 틀을 깨고, 푹신한 들판에서 자연과 함께 맘껏 춤췄던…, 그녀의 자유의 상징도 맨발이죠. 맨발의 이사도라 던컨.

숲이나 바다로 휴가를 떠났을 때 좀 더 가깝게 자연을 느끼고 싶거나 일상에서 탈출을 선언할 때 우리는 숲길과 모래사장에 맨발을 올려 놓습니다. 맨발을 땅에 내디딜 때 발바닥은 올록 볼록 올라와 있는 돌 모양을 느끼기도 하고 햇빛에 바짝 달궈진 모래 알갱이를 느끼기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맨발’은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합니다. 맨발로 걷는 힐링 프로그램이 생기기도 했지요. 이렇게 발에 관해 쓰다 보니 의자 밑 제 발가락이 꼬물 꼬물거려 지네요.

발 예술= 장애인 예술가 중에 발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일컬어 '구족화가'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보기는 했었는데 직접 본 것은 저번 토요일이 처음이었습니다.

4월 18일 제35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서울시청 시민청 활짝라운지에서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프로그램 <꽃밭(Flower Garden)>을 개최하였습니다.

이 행사 2부 원예체험 프로그램 ‘풀놀이야’에서 구족화가분이 발로 꽃꽂이를 하는 모습을 처음보게 되었습니다.

탁자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유유히 발을 움직여 가위로 꽃을 자르고 꽂습니다. 제 발가락은 엄지 발가락과 뭉쳐서 움직이는 4개 발가락 딱 두 부분만 앞 뒤로 움직이는데, 화가분의 발가락은 마치 지금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제 손과 같이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꽃을 꽂는 발. ⓒ정희정

엄지 발가락과 검지 발가락이 주홍색 꽃을 잡아 초록 오아시스에 꽂습니다. 발 아치는 말랑한 젤리처럼 유연하에 휘어져 발가락 움직임을 지휘합니다.

발에서 전해지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하고 궁금해 집니다. 많은 것을 발로 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는 종종 손으로 여러 가지 제스츄어를 만들어 마음을 표현하곤 합니다.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오므려 하트 전달하기도 하구요. 사진 찍을 때는 어색한 브이가 슬몃 올라오지요. 손은 또 다른 표현 매체인 것 같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손으로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합니다만, 그 중 멋진 일 중 하나는 글쓰기, 그림그리기, 피아노 치기 등의 예술인 것 같습니다. 내 안에 쌓이고 섞인 무언가가 한 줌의 영감을 받고 손을 통해 발현되는 것.

구족화가 분들은 이 모든 표현을 발로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느꼈던 모든 것들의 총합은 발을 통해 캔버스에 그려집니다. 그리고 오늘은 싱그러운 생기를 품은 꽃으로 전달합니다.

한 개씩, 한 개씩 시간과 함께 꽃 상자는 발로 꽂은 꽃으로 그득하게 됩니다. 풀밭 위 이사도라 던컨의 맨발의 자유처럼, 구족화가의 발은 꽃과 함께 자유입니다. 딱딱한 토슈즈 안에서 뛰쳐나온 무용가의 발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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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정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건강운동과학연구실 특수체육전공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재학 중 이며, 서울대학교 'FUN&KICK'에서 발달장애학생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체 표현에서 장애인의 움직이는 몸은 새로운 움직임이며 자기만의 고유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다. 칼럼을 통해 발달장애학생들의 움직임과 영화 및 예술을 통해 표현되는 장애인 움직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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