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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의 육체성

우연히 만난 탄츠 라트 컴퍼니 무용수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3-25 17:28:24
기억은 감각의 체험이 시간 축으로 나열된 듯 합니다. 헬렌 켈러는 손 위로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촉감을 경험하고 나서야 그것을 ‘물’이라고 기억합니다. 손가락으로 선생님의 얼굴을 만지면서 전해지는 감각으로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몸을 통해 기억이 만들어집니다.

◆ 생각의 육체성

고유수용성감각은 신체가 느끼는 움직임, 촉감, 위치감, 방향감 등 모든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감각입니다. 즉 인간은 신체를 통해 생각하고, 움직임은 그 사람의 생각이 됩니다.

고유수용성감각은 신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물에까지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 개념은 인공 팔·다리 도구를 만들 때 사용됩니다. 다시 말해 인공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고유수용성감각은 도구에까지 연장되어 인공 팔·다리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성의 전이 입니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캔버스를 바닥에 깔아놓고 몸을 움직여 물감을 뿌리는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으로 유명한 미국 추상표현주의 예술가입니다.

캔퍼스에 몸의 움직임으로 즉흥적으로 물감을 뿌려서(드리핑 기법: 물감을 흘리거나 튀겨서 그린 그림) 그림을 그립니다. 무심히 지나치면 그저 물감을 뿌린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잭슨 폴록의 그림 중 'No.5, 1948'은 약 1316억원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가격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몇 십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의 그림에서 ‘살아있는 육체적 생동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휠체어육체성

움직임의 감각 체험은 고유수용성감각을 통해 생각이 되고, 기억으로 저장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억을 다시 움직임으로 재현하곤 합니다. 그것이 춤입니다.

손우경 영상 작가의 ‘신체와 영상의 현상- Image Phenomenon of Dance' 전시회가 있었습니다.

이 전시는 한국무용 중 특히 발 디딤에 초점을 맞추어 영상 작업을 한 것입니다. 버선 발로 바닥을 지긋이 눌렀다가 끈적하게 띄어놓는 작은 움직임에서 한국의 정갈한 멋이 배어나옵니다.

이 전시장에서 우연히 휠체어 무용을 하는 탄츠 라트 컴퍼니 무용수들을 만났습니다. 탄츠 라트 컴퍼니 무용수들은 휠체어 위에서 춤을 춥니다.

일상에서는 쇠로 만들어진 휠체어는 장애인들의 발을 대신하지만 춤을 출 때 휠체어는 그들의 발됩니다. 춤출 때 고유수용성감각은 휠체어까지 확장됩니다. 휠체어 프레임에서부터 좌석, 바퀴, 바퀴살 하나 하나, 팔걸이, 그리고 발판까지 운동신경은 뻗어 나갑니다. 춤이 무르익어가면서 몸과 연장은 점점 육체성을 가진 무용수가 됩니다.

휠체어가 차르르 돌아서 옆으로 뛰어가는 여자 무용수의 손목을 잡습니다. 순간 머릿속에는 캔퍼스 위에 잭슨 폴락의 선명한 빨강색 드리핑이 휙 하고 뿌려집니다. 떠나려는 여자 무용수의 손목을 잡은 남자 무용수의 오른쪽 손끝은 파르르 떨립니다. 이어 남자 무용수는 좀 더 강하게 여자의 팔꿈치를 걸어 챕니다. 묵직한 검정색 드리핑이 툭 떨어집니다.

발 디딤 영상과 휠체어 춤은 오묘하게 섞어 관객에게 육체가 가진 역동적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춤이 진행 될수록 내 눈앞에서는 탄츠 라트 무용수들의 공간을 휘젓는 액션 페인팅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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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정희정 (heejoung98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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