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살아가는 방식을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지금은 고속도로 휴게소 등 대중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나 공공기관의 화장실에 “사용 중 / 비어있음”으로 화장실의 이용여부를 알 수 있는 표시들이 화장실 문 전면이나 손잡이에 되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알림 표시가 없었던 시절의 일화이다. 농인들과 문화시설 탐방이나 단체관광을 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을 사용할 경우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가끔씩 사소한 시비가 발생한다.

이유는 농인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문을 두드리지 않고 열게 되면서 안에 있던 청인이 화를 내며 농인에게 왜 문을 두드리지 않고 벌컥 열었냐고 소리를 지르며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청인은 당연히 화장실을 이용하기 전에 밖에 있는 사람이 문을 두드려 봐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을 펴고, 농인은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안에서 문을 잠그게 되면 밖에서 열려고 해도 열려지지 않기 때문에 굳이 두드릴 이유가 없으니 문을 잠그는게 맞다는 주장이 대립하게 된다.

정답은 무엇일까?

둘 다 정답이 맞다.

소리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청인 입장에서는 상대방이 문을 두드리면 자신도 문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화장실 사용여부를 알릴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문을 잠근 상태로 화장실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농인은 다르다. 소리가 아닌 시각을 통해 살아가는 농인이 화장실을 사용할 때는 청인이 문을 두드릴 때 소리를 들을 수 없어 화장실 사용여부를 상대에게 알려줄 수 없으므로 자신이 안에서 문을 잠근 상태로 화장실을 이용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화장실 이용 중에 무방비 상태로 낯선 사람과 마주치는 서로가 민망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한 적 있는 농인들은 화장실 문에 손을 대고 두드려 본다고 한다. 그러면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경우 진동을 통해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다툼은 시시비비를 가려 누가 옳고 그른지 나눌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농인과 청인의 살아가는 방식, 타인과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것을 상호간에 인식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해결이 가능하다.

사회적 환경이 농인과 청인 모두를 고려하여 형성되지 않는다면 각기 자신의 문화를 기반으로 청인은 밖에 있는 사람이 두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농인은 안에 있는 사람이 잠그는게 맞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미혜 칼럼리스트
한국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근무했다. 칼럼을 통해서 한국수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는 농인들이 일상적인 삶속에서 겪게 되는 문제 또는 농인 관련 이슈에 대한 정책 및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