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나, 그리고 어머니. ⓒ이샛별

가족과 친지들이 한 자리에 오랜만에 모이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말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반가움이 가득할 것이다. 설날이 지나고 나서야 문득 떠오르는 내 어린시절의 명절은 지금의 내 모습과 무척이나 상반된 모습이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흐름을 매번 놓치기 일쑤고, 오가는 대화 속에서 문득 '소외감'이 들었던 적은 '농인'이라면 한번쯤은 거쳐나간 관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나의 가족 조차도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거리'는 있을 수밖에 없다. 내 언어인 '수어'로 소통하기까지는 정말 '먼 거리'라는 것을 더욱 와닿게 하는 단어가 바로 '명절'이 아닐까 싶다.

여기서 내 경험을 살짝 꺼내어 보자면, 어렸을 때는 부모와 친척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 내 목소리에 부정확한 발음이 뒤섞여도 마냥 귀엽게만 보아 주시고, 예뻐해 주셨다. 하지만 지금은 다 자란 몸에다 아직도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부담스러운 시기로 접어들었다.

엇갈리고 또 엇갈릴 때마다 서로의 보이지 않는 '틈'이 더욱 벌어질까봐 겁나고 두렵기도 하여 아예 대화를 피하기 바빴던 시간도 있었다. 요즘처럼 살기 바빠서 연락이 소원해지고 오랜만에 만난다고 하여도 명절이 조금은 '난처한 날'이라고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의 언어가 그들의 언어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주려는 노력보다 그들의 음성언어를 나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바빠 정작 내 언어가 무엇인지 관심을 잘 가져주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의 딸이며, 어느 직장에 들어갔는지를 대강 부모님의 목소리를 통해 전해듣기만 하던 나의 친척들도 조금씩 나의 언어를 이해하고 내가 '농인'이라는 것을 더 알아준다면 나도 그들과 '어울림'이라는 단어를 더욱 더 마음에 품고 다가설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져본다.

명절 분위기가 한창이던 어느 날,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지난 2월 11일 서울 광진구의 한 단독주택 지하에서 독거 농노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그의 조용한 죽음에 대한 소식은 곧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렇게 '농인'은 '소외감'과 늘 싸우고 있다. 정보의 소외, 문화의 소외, 소리의 소외 등 많은 싸움에서 농인은 '외로운' 승리자가 되는데까지 늘 마음이 바쁘다.

왁자지껄한 명절의 분위기 속에서 혼자 앉아 있는 농인이 여러분의 가족 중에 있을 경우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수어로 건넨다면 그 농인의 마음은 당신의 마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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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샛별 칼럼리스트
경도농아인협회 미디어접근지원센터에서 농인(청각장애인)을 위한 보이는 뉴스를 제작하며, 틈날 때마다 글을 쓴다. 다수 매체 인터뷰 출연 등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농인 엄마가 소리를 알아가는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일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수어와 음성 언어 사이에서 어떤 차별과 어려움이 있는지, 그리고 그 어려움을 일상 속에서 잘 풀어내는 과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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