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일 세계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둔 시점에서 서영교 의원 대표발의로 장애인복지법 일부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법안 발의는 10명의 의원이 함께 해야 하는데, 정확히 10명이 서명하여 발의했다. 이 사실만 보면 많은 의원들이 이 법안에 동참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그 법안의 내용은 제39조를 개정하는 것이다. 제39조는 장애인이 이용하는 자동차 등에 대한 지원을 다루고 있는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용 하이패스 단말기 구입에 있어 구입비를 보조할 수 있도록 추가한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과 규모, 절차 등은 보건복지부령으로 하위법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장애인들이 고속도로 통행료를 감면받고자 장애인용 하이패스를 구입하게 되면, 지문인식기 등으로 인해 감면이 아니라 오히려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장애인의 하이패스 단말기와 장애인의 하이패스 단말기의 차액이 9만1천원이나 하니, 그 금액만큼 혜택을 보려면 어떤 장애인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이패스 단말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감면은 받을 수 있다.

단지 하이패스 구간을 갈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고,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하지 않아도 되고, 줄을 서서 요금 정산을 위해 대기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장애인들은 장애 유형에 따라 감면카드를 제시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할 수도 있다.

기회균등의 원칙으로 보면 장애인도 하이패스 구간을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그러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단말기 구입비를 과중하게 내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에서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왔으나, 국토부는 복지부로, 복지부는 국토부로, 국토부는 다시 도로공사로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몇 년을 지나왔다. 도로공사는 복지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란다.

이 법안에 의하면,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으므로 장애인복지법 소관부처인 복지부나 지자체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법이 통과되면 기재부에서도 예산을 어느 정도는 인정할 근거가 생기는 셈이다.

하지만 법은 발의만 되고 무한정 시간을 끌 수가 있다. 이 법을 통과시키려면 장애인들의 강력한 요구가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이다.

법이 통과되면 모든 장애인들이 이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구체적인 내용은 시행령에서 다루도록 하위법에 위임하고 있으므로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만 해당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혜택의 대상이 많지 않은 경우는 장애인들이 강력하게 요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일단 법을 통과시키고 그 대상의 범위를 넓혀 달라는 요구를 추가적으로 해서 시행령을 개정해야 할 것이다.

올해 전라남도에서는 지자체 예산으로 기초생활 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장애인에 한해서 선착순 350명에게 하이패스 구입비 9만1천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올해 시범사업을 해보고 신청자가 많으면 내년에 추가적으로 예산을 더 확보하여 이 사업을 확대한다고 한다.

전라남도에서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자 중 자기 소유의 차량을 몇 사람이나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범위를 제한해 놓고 신청자가 적다거나 홍보 부족으로 이 사업의 인기가 적으면 이 사업은 일시적 사업으로 종료될 것이다.

하이패스 단말기 구입에 있어 왜 수급자와 차상위만 해당하는가도 의문이다. 어느 정도의 형편이 되면 정부는 아예 지원을 하지 않는다. 차라리 일정 배기량 이하의 차량에 한해서라고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한다.

다음으로 이런 지원이 생기면 장애인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지원을 받게 되면 지원을 받지 못한 사람은 나도 지원을 받고 싶은데, 개인 돈으로 구입하여야 하는 것이 억울하다. 그래서 구입을 망설이게 된다. 사람의 심리가 그렇다.

선착순 신청자가 많아 신청을 하지 못했다면, 구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다가 내년에 이 사업이 없어지거나 축소되면 더 억울한 사태가 생긴다.

전라남도에 하이패스 구입비 지원 시범사업이 생기면 다른 도시에서도 실시해 달라는 요구가 봇물처럼 생길 것이다.

이는 지원 제도의 확산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다른 지역의 사람들까지도 지원 제도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서 시장이 축소되어 버리고, 당장 필요하면서도 불편함을 참고 견디게 되니 장애인에게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전자제품이 새 모델이 나와서 구입하고 싶은데, 얼마 가지 않아 더 좋은 신제품이 나오면 먼저 구입한 사람이 억울하고, 또 얼마 가지 않아서 더 좋은 제품이 나올까봐 구입을 망설이기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장애인이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인지 확인하는 행정적 절차 때문에 개인적 추가 비용을 더 부담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전국적으로 확산해 나가야 한다.

전라남도의 사업이 좋은 사례가 되면 다른 지자체에서도 실시할 근거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계가 요구를 해야만 가능하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할 경우에는 당장 정해진 예산만큼 시장이 형성되지만, 그 대신 일반 시장은 아예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 배기량이 많거나 차상위 이하자가 아닌 경우에는 기다리지 말고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하이패스를 이용하는 마당에 자부담해서라도 하이패스 단말기를 설치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지원 혜택을 보려고 줄을 서서 기다려도 자신에게는 혜택이 돌아오지 않아 감정만 상하고, 혜택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분명 우선순위에서는 배제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그 대상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가의 문제이지, 모든 차량에 지원금을 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장애인 차량 120만대 시대에 현재 불과 3%밖에 보급되어 있지 않은 하이패스 단말기를 정부가 지원할 경우 천억 원이 소요되는데, 그만큼의 예산을 정부가 지원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도 더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서 법 시행을 지지하고, 지원은 양보하는 장애인들의 단결과 협력이 기대된다.

시장의 활성화와 장애인 편의성을 위한 보급, 그리고 정부의 지원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감 경감, 정부나 지자체가 진실로 장애인의 생활을 지원한다는 체감도 증대 등을 위하여 이번 전라남도의 장애인용 하이패스 단말기 구입 지원 사업이 크게 성공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과 사회참여 활동의 활성화에 하이패스 단말기 보급이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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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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