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일에 발표된 국제연합(UN)의 장애인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CRPD) 우리나라 국가 보고서에 대한 권고문을 보면 현재 장애 정책과 서비스의 문제점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다.

UN에서 권고한 여러 지적 사항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의료적 기준에 기초를 두고 있는 현행 장애등급제의 폐지와 장애인들의 욕구, 환경, 특성 등에 따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 전달 체계 구현을 들 수 있다.

UN의 이러한 권고는 각 나라의 문화·사회·정치적 특성 등을 무시하고 단순하게 던진 권고가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인 장애 정책과 패러다임의 일반적인 추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이 의료적 패러다임에서 사회적·자립생활 패러다임으로 이동하고 있는 현재의 변화는 결코 무시하거나 거역 할 수 없는 커다란 흐름과 같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캐나다, 호주 등등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많은 국가에서는 이미 수 십 년 전부터 생겨났으며 변화의 중심에 장애등급제 폐지와 맞춤형 개별 서비스 제공이 있다.

장애 서비스 제공의 선진국인 미국의 경우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함에 있어 장애등급제는 무의미하다.

장애인의 장애 특성, 재활 욕구, 환경, 장·단점 등을 고려하여 장애인에게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히 장애종합판정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 서비스 전달 체계를 종합적으로 개편하는 문제이다.

단지 장애종합판정체계의 개발이나 연구에만 사회적인 관심이 국한된다면 장애등급제 폐지의 궁극적인 목표인 장애인의 특성에 따른 맞춤형 서비스 제공은 달성되기가 어렵다.

또한 장애인의 특성, 욕구, 환경 등을 1점-10점, 10%-100%, 혹은 1등급-10등급 등으로 수량화하는 새로운 장애종합판정체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장애인의 욕구와 환경 등을 수적으로 산술하는 것은 선진적인 장애 정책과도 정면으로 대치된다.

일반적으로 장애등급제에 기초하지 않고 장애인의 장애 특성, 재활 욕구, 환경, 장·단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지체·시각·청각·내부기관 장애 등과 같은 신체장애의 정도나 유무는 의료 전문가가 그리고 발달·정신장애 유무는 전문 평가사나 정신과 전문의가 진단할 수 있다.

의료적 진단은 장애·질병의 정도에 따라 등급화 할 필요는 없으며 그러한 장애나 질병이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이면 충분하다.

이러한 기준을 적용한다면 15개 장애 유형을 구분짓는 것은 무의미하며 어떠한 장애나 질병이라도 그 상태에 따라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중대하게 영향을 미친다면 장애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 하에서는 궁극적으로 장애를 등록할 필요도 없다.

장애인의 재활 욕구와 환경은 수량적인 기준을 적용한 평가 도구나 모형으로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250만 장애인의 재활·복지 욕구는 근본적으로 서로 상이하기 때문에 특정 몇 개의 욕구를 선정하여 도식화하는 작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대학을 진학한 후 직업을 구하려는 장애인, 지금 당장 특정 훈련을 받고 직업을 구하려는 장애인, 보조기기가 필요한 장애인, 의료보장구가 필요한 장애인 등 그 욕구나 환경은 다양하여 수학적으로 공식화할 수 없으며 직업재활을 원하는 장애인들 중에서도 어떠한 직업을 원하는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역시 직업목표를 도식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장애인의 개별적인 욕구와 환경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장애인의 사례를 담당하여 지원하는 전문 사례관리자가 필요하다.

사례관리자는 복지관 등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사자의 역할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인력이며, 배치되어 장애인의 개별적인 욕구와 환경을 전문적으로 논의하고 심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장애인의 재활 욕구는 객관적인 장애인의 장·단점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동일한 지체장애인 5명이 상담사가 되는 것이 재활 목표라면 5명 모두가 지적 능력, 정신 능력, 신체 기능적 능력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의 장·단점을 확인하기 위한 객관적인 평가 도구가 필요하다.

웩슬러 지적능력 검사, MMPI 인성검사 등등이 이러한 능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도구이며 이미 현장에서 오래 전부터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다시 장애인의 능력을 판정하기 위해 장애종합판정체계를 위해 평가 도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불필요하다.

다만 현재 사용되고 있는 기존의 평가 도구들이 더욱 더 정확하고 전문적으로 이용되고 실제 장애인의 특성 및 욕구와 맞물려 적용될 수 있도록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애 판정 및 욕구 평가와 관련된 기본적인 접근과 더불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장애인의 개별 욕구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 전달 체계이다.

현재와 같이 장애인이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맞추어 참여하는 방식의 서비스 전달 방법으로는 결코 장애인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며 대표적인 방법으로는 지역사회의 여러 서비스 기관을 이용하는 미국식 벤더 시스템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전체적인 서비스 전달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진정한 시스템 개편이며, 장애 서비스의 최종적인 수혜자는 장애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형태로 서비스 제공 방식이 개선되는 것은 당연하다.

장애등급제 폐지와 맞춤형 개별 서비스 제공은 개별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야하지만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되는 핵심적인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장애 정책의 발전과 UN에서 언급하고 있는 선진적인 서비스 전달을 위해서는 반드시 장애등급제 폐지와 맞춤형 서비스 제공은 달성해야 할 당면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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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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