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모 장애인단체 회장이다. 지부에서 수 천만 원의 건보료를 체납하고 있는 상태다. A씨는 직장 가입자로서 매월 꼬박꼬박 건보료를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다.

건보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하는 경우 의료급여 서비스는 정지된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건보료를 제외한 자부담금을 정산하면 1, 2년 후쯤에 공단으로부터 부당하게 지급된 보험금 청구액을 지급하라는 고지서가 날아온다.

장애인단체의 회장은 주식회사처럼 유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업장의 건보료 납부 무한 의무책임이 있으므로 지부에서 연체한 건보료로 인하여 의료급여가 정지된다.

회장으로서 사회봉사를 열심히 하였고, 무보수로 장애인을 위하여 일한 죄밖에 없지만, 아무리 본인의 건보료를 잘 내었다고 하더라도 체납금이 있는 이상 평생 아무런 건보 혜택을 볼 수가 없다.

B씨는 과거 시민사회단체 대표직을 역임한 자이다. 단체의 운영비 마련을 위하여 수익사업을 하였는데,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문을 닫게 되었다. 그리고 단체활동도 그만 두고, 단체 역시 해산하였다. 해산 당시 부채가 많은 상태에서 건보료를 연체하였는데, 그 금액이 3천만원이나 된다. 사업 실패의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살고 있던 집까지 팔아 빚을 청산하였으나, 건보료를 미쳐 다 해결하지 못하였다.

B씨는 현재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기에 취업을 하였고, 그 직장에서는 매월 건보료를 납부하고 있다. 그러나 B씨 역시 3개월 이상 연체자로서 병원이나 약국에서 보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세무 신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 변변찮은 직장을 구한 것은 건보공단에서 급여압류라도 하여 일하나마나가 될까봐서였는데, 현재 형편으로는 평생 밀린 보험료를 내기 어려울 것이고, 앞으로 매월 보험료를 잘 낸다고 하여도 전혀 혜택을 볼 수가 없다.

그의 자녀는 최근에 취업하여 건보료를 잘 내고 있지만 B씨의 체납으로 인하여 체납 당시 B씨의 부양으로 보험료가 체납되어 있는 것이므로 부모의 체납금이 해결될 때까지 대를 이어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건보에서는 법률에 의하여 보험료 징수를 강제화하고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 위하여 도덕적 헤이로 인한 다른 가입자의 부담을 줄 수 없다는 명분으로, 이러한 정책을 펴고 있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여 직원의 급여를 주지 못할 형편이면 근로복지공단에 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고, 빚더미에 눌려 생활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파산이라도 하여 다시 솟아날 구멍을 찾을 수 있지만, 건보료를 연체하고서는 비상사태나 큰 수술이 생기면 혜택을 볼 수 없어 수술비나 치료비 마련을 포기하고 죽어야 할 수도 있다.

체당금은 급여 공제 이전의 전체 금액을 직접 노동자에게 지급하므로 세금과 보험료 등은 고용주에게 그대로 남으면서 체당금의 부채도 떠안게 되어 근로자 공제는 안되면서 납부의무만 생기게 된다.

과거 3개월 미납액이 개인적인 것이라면 보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든 연체금을 갚을 것이다. 그러나 사업을 하여 고용한 사람이 많은 경우나, 단체를 운영하는 책임을 맡아 연체금이 거액이 되어버린 경우에는 갚을 능력도 없어 건보 혜택은 보지 못한다.

당장 직장을 가져 일을 하면 직장가입자로서, 혹은 일이 없어 쉬더라도 지역가입자로서 평생 돈은 계속 내야 한다.

건보료를 체납한 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데도 갚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모든 통장을 압류하고 제산도 압류하기 때문에 노숙자로 살지 않는 이상 갚지 않을 방도가 전혀 없다.

갚을 능력도, 압류할 제산도 없는 사람이면 혜택을 포기해야 된다. 혜택도 못받으면서 현재의 건보료는 매월, 평생 동안 내면서 적당히 살아야 한다.

파산신청으로 구제제도가 있으니 어찌보면 은행부채가 아니라 건보료가 노숙자를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남의 개인 부채는 강제로 삭감하면서 국가의 부채는 절대 삭감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사보험이라면 연체를 하면 자동 해약이 되겠지만, 해약도 되지 않으면서 그리고 평생 보험료를 내면서 과거 연체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서비스가 중단되어 위급 상황에서는 죽어야 한다면 이는 상당히 부당하다.

사업의 실패로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이혼도 하는 상황에서 민생에서 가장 악독한 제도가 건보료가 될 수도 있다. 건보료는 삭감도, 파산과 회생 절차도 없어 연체금을 갚을 능력이 되면 갚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현재 돈을 내고 있으면서도 생 죄인으로 평생의 권리를 박탈당한채 살아야 한다.

건보제도의 취지는 이런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 연체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 일정 기간 잘 내고 있으면 보험 혜택은 주어야 한다. 그리고 생활에 지장을 받지 않은 한도 내에서 연체금을 현재의 납부액에 최대 50%까지만 더 청구할 수 있도록 하여 분납이 가능하도록 해야 어려운 백성들이 숨을 쉬고 살 수가 있다.

연체금이 일정 금액 이상이고, 연체 기간이 장기화된 경우, 현재의 일정 기간 보험료를 잘 내고 있다면 이러한 사람에게도 솟아날 구멍을 주어야 할 것이다.

건보료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피폐한 삶과 죄책감과 부담으로 정신은 망가지고 평생 시달리게 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면, 정부는 이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정말 미운 친구를 죽이는 법이 있다. 거액의 거래를 한 다음 부가세 영수증은 필요 없으며, 신고를 하지 않으니 부가세는 받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물건을 샀다고 세무서에 신고를 한다. 일부러 신고를 하지 않아도 물건 산 근거가 없으면 남아 있는 돈에 대해서는 세금이 부과될 것이므로 자신의 세금을 줄이려는 마음으로 신고를 하게 될 것이다.

부가세는 친구에게 주지 않았으므로 친구는 받지도 않은 부가세를 내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지방세도 내야 하며, 연체금과 가산금을 포함하여 몇 배를 내어야 한다.

그러면 망하게 된다. 친구에게 받을 것은 민사이고 주지 않는 한 어떻게 할 수도 없지만 본인은 국가에 세금을 내지 않은 죄인이 되어 평생 목줄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세금과 같은 건보료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한 최소한의 돌파구를 열어주어야 할 것이며, 현재 성실한 납부자는 보호해야 할 것이다.

해결 불가능한 과거의 오점 하나로 평생 의무만 있고 아무런 혜택이 없는 그런 법은 악법일 것이다.

혜택을 주지 않는다면 가입자에서 해약이 되어 더 이상 받지를 말든가, 아니면 그 해의 병원비용만 청구하든가 무슨 대책이 있어야 한다.

부족한 보험료를 더 충당한다거나, 성실하게 내어야 한다는 규칙을 지키기 위해 체납자에게 혜택을 정지한다면, 그 목적은 체납액을 더 걷기 위한 것인데, 결과는 어차피 혜택을 보지 않으니 앞으로도 내지 말고 버티자는 식이 되어 버릴 수 있으며, 그 제도는 역효과만 가져오게 한다.

3개월 이상 연체자에 대해 보험 가입자 자격을 정지하면서도 의무는 계속 유지하는 제도는 재고되어야 한다.

국민으로서의 복지와 부담금의 의무는 분리하여 생각하거나, 최소한 불성실이나 부도덕이 아닌 성실한 책임감으로 폐업한 고용주로서의 부담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풀어 주었으면 한다.

악덕 업주가 폐업 직전에 악용할 소지가 있다고 한다면 폐업위기 관리나 폐업 시기에 재산 청산 관리팀을 운영하더라도 죄가 있어 말은 못하지만 삶이 고통스러운 선량한 사람은 우선 살려놓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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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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