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차별금지법과 다른 법률과의 상충조항 중 대표적인 것이 상법 732조와 모자보건법 14조다.

모자보건법 제14조에는 인공임신중절수술(낙태)의 허용한계를 정하고 있는데,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낙태를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대통령이 정하는 장애나 질환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모자보건법 시행령 15조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한계를 연골무형성증, 남성섬유증 및 유전성 질환으로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 풍진, 톡스플라즈마증 또는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전염성 질환으로 정하고 있다.

여기서 위험성이란 사망에 이를 가능성으로 장애가 될 가능성과는 무관하다. 만약 장애인이 될 가능성을 위험성으로 판단한다면 다른 여타 장애원인도 유전성이나 전염성 질환에 나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는 생명권이나 낙태에 대한 조항은 별도로 없다. 건강권이나 부·모성권 등에서도 생명권을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장애를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총칙의 규정으로 낙태 역시 차별로 규정하고는 있고 모자보건법상 위험성과 부모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고는 하나 법에 열거된 원인이 아닌 이상 낙태는 금하고 있는 것이다.

태아 상태에서 차별은 바로 생명을 박탈하는 것으로 삶의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가장 심각한 차별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연하게 낙태가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이라 장애 태아를 발견하고 낙태를 할 경우 부모의 동의가 있을 것이고, 위험성이 강조되어 장애 태아가 낙태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현대 의학은 아직도 유전성을 밝히지 못한 장애가 많으며, 기형의 경우도 30% 정도만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기형의 유무와 유전성 질환을 알아보기 위한 방법으로는 초음파검사와 산모의 혈액검사를 통한 트리폴검사(기형아검사), 태아 심박동검사, 양막천자와 융모막 생검과 태아 혈액채취를 통한 염색체검사(유전자검사)가 있다.

유전자 검사는 기형의 위험이 높다고 의심되는 특별한 경우에 시행하는 것으로 모든 산모에게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검사는 아니다.

초음파검사는 사진을 통하여 육안으로 이상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고, 트리폴검사는 산모의 혈액 중 세 가지 성분분석을 통하여 삼체성 염색체 이상과 신경관 결손을 검사하는 방법이다.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산부인과 고승희 교수의 말에 의하면, 삼체상 염색체 수가 46개가 아닌 47개이면 다운증후군, 파다우증후군, 에드워드 증후군을 갖는 것이며, 신경관 결손이 있으면 무뇌아나 척추가 갈라지는 기형을 갖지만, 정확도가 75~80%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트리폴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면 양수천자를 통해 산모가 아닌 태아의 유전자검사를 해야 한다. 태아검사의 경우 세포를 떼어내기 위한 바늘로 인해 태아손상을 일으킬 위험성이 있다. 융모막 생검은 임신 9~11주경에, 양수천자는 임신 16~20주경에 시행할 수 있다.

TV "죄와 벌"이라는 법정 드라마에서 가족 중에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산모가 주치 병원에 다운증후군검사를 요구했는데, 담당의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검사를 해 주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보니 다운증후군이라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소송을 걸었는데, 법정에서는 원고가 미리 태아의 다운증후군에 감염 사실을 알았다 하더라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상황에서 산모에게 손실을 준 것이 없으며, 뱃속 태아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어 탁태할 기회를 잃었다고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실제로 일어났다. 지적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는 산모가 태아도 장애를 가질 수 있음을 염려하여 초음파검사와 유전자검사를 하였는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보니 지적장애인이었다.

산모는 장애인인 줄 알았으면 낙태를 했을 것인데, 병원이 검사를 소홀히 하여 장애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적장애 자녀를 또 가지게 되어 양육비가 많이 들게 되었으므로 병원은 2억 4천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 드라마에서처럼 병원측은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시하였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자 고등법원은 이를 기각한 것이다.

항상 오진은 있을 수 있는 것이라 병원측이 검사를 소홀히 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검사에서 100% 장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검사는 정확히 하여 이상이 없었지만 지적장애인이 태어난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 병원의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낙태는 불법이므로 달라질 것이 없고, 후자의 경우라면 더욱 병원의 책임이 없으므로 배상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유전에 대한 상담을 병원이 성실히 하지 않아 장애아를 낳을 가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고 부모가 주장하였지만 이 역시 낙태할 권리가 없으므로 현재와 달라질 것이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하였다.

모자보건법이 실효적 법률로서 존재하는 이상 낙태를 완전히 금할 수는 없다. 법에서는 부모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부모가 질환이 있어야 한다. 부모가 아닌 태아가 장애인이라고 낙태할 수는 없다. 그리고 부모가 질환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행령에서 정한 극히 제한된 질환에만 적용된다. 헌법이나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의 생명권을 장애를 가졌다고 하여 침해할 수 없다.

앞으로 건강보험이나 복지수준이 높아진다면 모자보건법이 개정되어 부모가 특정 질환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낙태할 수 없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 생명이 생기기 전 단계인 피임만이 가능하게 되어야 맞다.

그리고 가족 중 장애인이 있어 유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낙태의 허용범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것은 증명되지 않는 가능성에 불과하며, 그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확률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가능성일 뿐이다.

부모가 유전인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질환을 가지고 있어야만 낙태가 가능하다. 그것도 극히 제한적인 질환에 한정하여 적용된다. 검사를 통하여 태아가 확실히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판명되더라도 낙태는 불법이다.

유전적 요인인지 환경적 요인으로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유전적 요인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고엽제 질환은 환경적 요인으로 얻은 질환이지만 유전된다. 부모가 유전적 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생명의 위험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낙태할 수 없다.

지적장애 1급 아이를 갖게 된 참담한 부모로서는 병원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가족사로 보아 둘째 아이도 장애인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어 검사를 하였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여 안심하였지만 장애아가 태어났으니 부모로서는 허탈했을 것이다.

이 소송에서 장애아를 낙태할 수 있느냐를 묻는 소송은 아니었다. 낙태할 기회를 놓쳐 장애아를 갖게 되었으니 손해배상을 하라는 소송이다.

검사로서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병원의 과실을 명확히 증명할 수 없고, 과실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낙태가 금지되어 있는 이상 낙태할 기회를 놓쳤다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므로 병원이 배상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태아의 장애가 발견되어 낙태할 수 있도록 법원이 허가해 달라고 소송을 했다면 모자보건법상 태아에 미치는 위험성이 높은 질환이 무엇인지 갑논을박 했을 것이다.

소송은 장애 자녀를 갖게 된 것이 병원의 책임도 있으니 배상하라는 소송이었으므로 장애를 가진 것이 부모의 탓은 아니지만 부양의무는 부모의 몫이라는 판결이다. 그러나 이 소송의 결론에 이르는 논리와 인정 부분에 의해 장애가 낙태의 대상이 되지 않음을 확인하는 판례가 되었다.

만약 의학이 발전하여 장애를 예방하거나 경감시킬 의술이 개발되어 있고, 병원의 잘못으로 그러한 치료 기회를 놓쳐 손해를 보았다면 병원은 배상책임이 있을 것이다.

현대 의술로는 장애를 발견하였다 하더라도 장애아가 태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 뿐, 낙태가 금지되어 있는 이상 달라질 것이 없으므로 병원의 과실이 있어도 책임은 없다는 것이다.

법원도 귀가 있어 장차법이니, 모자보건법의 개정 주장을 들었을 것이고,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져 법 적용을 매우 엄격히 하고 생명의 박탈을 함부로 하지 못함을 천명하고 있다.

이번 판결이 어떤 의미에서는 사법부는 모자보건법이라는 악법이 있어 법적 근거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최대한 생명을 함부로 할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법을 제정하는 의무를 가진 국회는 도대체 뭐하고 있느냐고 외치는 목소리가 담겨져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왜소증(저신장 장애)의 경우 연골무형성증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질환의 정도와 무관하게 부모가 유전질환을 가지고 있어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는 현행 법은 저신장 장애인에게는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예만 보더라도 이번 판결은 낙태할 권리는 누구도 없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연골무형성증(achondroplasia)은 장애등급 6급 6호다. 태아기에 죽어도 된다는 것이 모순인지 죽을 정도의 장애인데 6급인 등급제도가 문제인지 아니면 모두가 문제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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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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