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병원의 사회복지사로부터 긴박한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 척수장애인이 있는데 중계기관으로부터 ‘서비스를 중지할 터이니 시설로 들어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협회에서 해결(?)을 해줘야겠다는 것이다.

눈이 번쩍 뜨였다. 탈시설, 반시설이 주된 흐름이고 자립생활이 대한민국 장애인의 패러다임의 주류인데 대명천지에 시설이라니?

당사자, 활동보조 중계기관의 담당 팀장과 각각 통화를 하고 나니 서로의 시각과 입장이 많이 달랐고 오해가 있는 듯 했다. 전화보다는 현장에서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필자를 포함 척수장애인 3명이 한 차에 동승하여 휠체어 3대를 싣고 새벽에 왕복 700Km의 울진으로 향했다.

결론적으로 장애를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음을 알려주는 사례이다. 사회복지는 환경속의 인간(person in environment)을 중요시 해야 한다.

생태학적 이론에서는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환경 내의 다중적인 상호작용을 볼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개인의 정상적인 삶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생리적, 심리적, 사회적 체계에 대한 영향력을 이해하여야 한다고 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문제는 사정표나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그 심리적 정서적 원인과 주변을 세밀하게 관찰해야 하니 당연히 동병상련의 장애인들이 가장 잘 알 수 있고, 적절한 해결의 제시도 가능하다.

당사자는 5년 전 다이빙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사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이 되었고 사고 전 수협에 10년 이상 다녔지만 사고 후 차상위로 전락하였다. 1년 전 부인과 이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11살 아들과는 생이별을 하고 있어 아들을 위해서라도 시설에는 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무척 강하였다.

당당한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현실은 꼼짝없이 방 한 칸에 머무르고 있는 신세가 되다 보니 주위와 불화가 생기고 집착을 하게 되고 의심을 하게 되니 활동보조인과도 여러 가지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다.

외출이라도 자유로우면 좋겠는데 5층 아파트의 1층인 집은 여러 개의 높은 계단이 있었고 친구들이 만들어주었다는 나무 경사로는 오히려 더 위험하고, 주민들의 불만도 있었다.

누가 오는 것도 어렵고 그렇다고 마음대로 나갈 수도 없는 환경이라면 건강한 사람들도 주위와 트러블이 생길 것이고, 폐쇄된 공간에서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은 자명하다.

이럴 때 당사자의 마음과 환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사자만 나쁘게 몰아갈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래서 동료상담이 필요하고 적극적인 사례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간 3명의 긴급 동료상담팀은 센터 관계자와 당사자를 만나 여러 시간의 대화를 통하여 충분히 개선할 여지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몇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였다.

먼저 제일 큰 문제는 외부와의 물리적 단절이었다. 마음껏 출입이 가능하도록 환경개선이 필요하였다. 먼저 LH공사 등에 문의하여 출입이 자유로운 임대주택과의 맞교환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고, 시간이 걸린다면 베란다로 경사로의 설치가 가능한지를 타진해 보고 그것도 어려우면 당분간 자활센터를 통해 안전하게 출입을 지원받는 것을 논의했다. 다행히 자활센터와 거리가 멀지 않아 연락만 하면 출입에 도움을 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폐쇄적인 생활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시켜주었으며, 열린 마음으로 상부상조의 정신이 필요하니 주변인들과의 트러블에 대해서는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모두 해결을 하라고 했고, 그 자리에서 경찰과의 연락을 통해 취하를 하였다.

40살은 어떤 것을 하기에도 늦지 않은 나이이므로 삶의 목표를 위해 사이버대 입학을 권하였다. 당사자도 법에 대한 관심이 많아 법학 전공을 고민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사회활동을 권유하였다. 장애인단체 활동이나 자활센터에서 자원봉사 상담활동도 해볼 만하다.

그리고 꾸준히 재활운동을 한 덕에 상지의 힘은 어느 정도 있어 그 정도면 휠체어 럭비도 가능하여 체험해보는 것을 권유하였고, 7월 중순에 있는 구미컵 전국휠체어럭비대회에 구경 차 한 번 들를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척수협회 측에서도 지속적인 동료상담을 위하여 경북 안동지회, 강원 강릉지회 그리고 경주의 IL센터와 연계하여 동료상담을 연계하였다.

활동보조 중계기관도 그간에 다방면의 인내와 노력을 해왔음을 알 수 있었고, 노력과 인내에도 불구하고 활동보조인과의 갈등이 지속적으로 생기다 보니 활동보조 중지 등 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충분히 이해를 한다.

중계기관은 장애인 당사자와의 갈등이 생기면 단편적으로만 해결하려하지 말고 주위의 장애인단체를 통해 동료상담 등 심리상담 조치를 취하였다면 이렇게까지는 악화되지는 않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

당분간 당사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간을 두고 예의주시하고 협조하기로 마무리를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가 다녀온 후, 당사자가 훨씬 밝아진 모습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센터 팀장의 전화를 받았고, 지금도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곤 한다.

최근 들어 활동보조인과 이용자간의 갈등이 많이 생기고 있는 것으로 안다. 활동보조인의 지속적인 교육과 함께 당사자의 교육도 동시에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이를 위해 연금공단은 장애유형별로 전문적인 동료상담가를 양성하여 이용자 교육과 심리상담을 전담하는 전문가를 하루속히 양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에 대한 이해와 환경안의 장애인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넓은 이해 없이는 장애인을 둘러싼 그 어떤 것도 명확한 해결이 불가능 하다.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의 해결 가능한 변화를 통해서도 장애인 당사자와 그 당사자를 둘러싼 인간관계들이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는 지혜가 더욱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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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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