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거주시설 대표들의 모임인 한국장애인복지시설협회(이하 한장협)와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회가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거주시설이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에 대하여 일단은 환영할 일이다.

도가니 사건 이후 재발방지를 위하여 사회복지법을 개정하고, 성폭행 사건의 발생시 임원은 원아웃제, 이용자간이라도 삼진아웃제를 실시하는 등 강력한 처벌조항이 생겼다. 도한 거주시설에 차별감시단을 두고, 공익이사제를 선임하도록 하였다.

전국에 많은 사회복지시설이 일시에 차별감시단을 조직하고, 공익이사를 선입하려고 하니 수만명에 이르는 인사를 어디에서 찾는가도 문제였다. 그리고 인권감시단이 시설 외부의 조직으로 두느냐, 내부의 조직으로 두느냐도 고민거리였다.

외부에 두면 활동에 한계가 있고, 내부에 두면 자율성에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부에 두는 것으로 결정되어 장애인 인권단체의 거주시설 접근성은 약해졌다.

이런 시점에 변호사라는 법률 전문 인력을 대한변협이 공급하고 봉사하겠다는 것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법률 전문직 중에 노무사라는 직업이 있다. 노무사는 같은 노동법을 다루지만, 사측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법에 저촉되지 않게 서류를 잘 갖추느냐라는 자문을 사측에 해 주는 사람이 있다.

물론 사측이라고 하여 모두 노동자 반대편에서 노동자를 억압하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사측의 잘못을 지적하고 법이 이러하니 해 서는 안 되는 것을 사측에 설득하는 좋은 경우도 있다.

반면에 해고를 하되 법에 근거하여 문제가 되지 않도록 교묘하게 서류를 잘 만드는 방법만 지원해 주는 사람도 있다.

노동사무소에서 노동법 위반 고발 사건이 있으면 사측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사주가 잘못하였으니 처벌해 달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모두 노무사로 사측과 노동자의 다툼을 노무사끼리 대신 싸우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변호사라는 직업도 같은 문제를 두고 원고와 피고의 입장을 서로 상반되게 주장하지만, 그들 역시 모두 같은 변호사이다. 이렇게 두 얼굴을 가진 직업이 시설 운영자와 협약을 했다고 하니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시설의 이사회는 운영의 중요한 결정을 하는 기구로, 공익이사가 있으면 비정상적 운영을 막는 역할을 할 수 있고 보다 투명하게 운영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공익이사제를 두었다.

하지만 몇 달에 한 번 회의만 참석하고, 운영자가 제공하는 정보나 자료에 의존하여 설명을 듣는 것이 공정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까라는 것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공익이사가 운영자측과 친분관계가 형성되어 오히려 운영자의 대변인 역할만 할 수도 있다.

대한변협이 이용자의 신고상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시설에서 법률지원 신청을 받는다고 하니, 이런 우려는 더욱 강하게 생긴다.

물론 거주시설과 대한변협의 업무협약 내용은 이용자 인권옹호를 위하여 한 것이라고 한다. 공익이사나 인권지킴이단 운영은 시설 운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용자를 위한 활동이니 틀린 말이 아니다.

업무협약 내용을 보면 법률지원이 필요할 시 신청을 받아 지원한다는 것 같기도 하고, 인권지킴이단이나 이사, 운영위원의 인력 소개 요청이 있으면 지원한다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인천에 있는 모 시설의 경우 이용자 대표와 평직원 대표, 지역의 덕망 있는 인사, 지역 자립생활센터 소장, 경찰관, 장애인단체 인권 담당, 후원회 등으로 인권지킴이단을 구성했다.

시설 운영자를 회의에서 완전히 배제하여 운영자의 간섭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사례를 보면 운영자 중에는 스스로 자정 수준이 아니라 감시를 받기를 자청하는 분들도 있다.

대한변협이 인력풀을 이용하여 지역에 있는 변호사를 소개하고, 법률 전문가들에게 장애인 인권 감수성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고, 대한변협이 나서면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한장협이 나서서 거주시설에서 공익이사를 개별적으로 교섭하기보다 체계적으로 주선하는 것도 보기 좋다. 한장협이 아니면 이러한 역할을 마땅히 하기도 어렵고, 조직 대 조직이 아니면 인사발굴도 어렵고, 개별적 인사 영입에 진도도 더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피해자보다는 가해자의 가능성이 더 높고,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감시의 대상인 거주시설장의 모임인 단체와 변협이 협약을 하였다고 하니 코미디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용자에게 법률지원의 접근성이 좋아질 것인지, 아니면 거주시설장의 든든한 법률자문인이 될 것인지는 조금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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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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