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 대선에서 장애인단체들은 선거연대를 결성하여 장애인계의 공약들을 제안했다. 그 중 하나가 장애 등급제 폐지였다.

각 정당들은 모두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하였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등급제 폐지는 5년 내에 이행하는 것으로 국가 계획을 수립하였다.

2012년도에는 보건복지부에서 장애계, 학계를 포함하는 장애판정체계개편기획단을 구성해 월 1회 정도 회의를 개최하였고, 등급제 폐지로 인한 추가조치들을 정리하려 하였다.

장애계는 추가조치에 앞서 확실하게 폐지하겠다는 로드맵을 정부에 요구하였고,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폐지 후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안들을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기획단이 논의구조이지 결정구조는 아니라며, 별도의 연구용역을 통하여 앞으로의 문제들을 결정하겠다고 하였다.

장애인계는 5년 후의 모습을 논의하자고 하고, 그것을 당장 하자고 하였고, 정부는 5년 전의 과도기를 논하자고 하였다.

2013년에도 몇차례의 회의가 진행됐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회의에서 합의문을 채택하였는데, 장애정도에 따른 이원화된 서비스를 일원화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상당히 진전된 것이라지만, 2014년 새로이 꾸려진 기획단 회의에서 복지부 인사가 이 합의는 검토한다는 것으로 검토 결과 반영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는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합의문을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복지부가 최종적으로는 등급을 폐지하지만, 이를 위한 후속조치는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므로 일단은 중간 단계로서 중증과 경증 정도로 시범사업을 하여 등급을 간소화해 보는 것이 어떤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장애계는 중간과정이 필요 없으며 간소화는 폐지가 아니므로 후일 폐지를 하지 않기 위한 명목찾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품었다.

복지부가 새로 구성한 2014년 기획단은 장애계 인사 4명을 포함한 총 24명의 위원 구성했는데, 학계 중심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현재 별다른 회의 내용은 없는 상태다.

장애등급을 폐지하자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인간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은 비인권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인권적 측면에서 등급을 폐지하자는 것은 문제의 지적일 뿐,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에 대하여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안은 사람이 아닌 서비스에 등급을 매기면 될 것이다. 활동보조 서비스처럼 별도의 서비스 판정 도구를 만들고 서비스 등급을 매기는 것이다.

둘째는, 헌법 제30조 ‘장애인은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보호한다’는 조항에서 생활이 어렵다는 것이 현재의 장애인 삶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어려운 장애인만 국가가 보호한다는 선별적 복지를 말하는 것이며, 권리가 아닌 시혜의 대상화라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하면서 장애인을 기초생활수급자인가, 중증인가를 기준으로 서비스 제공 유무를 판정하는 것이 불합리하고 서비스를 주기 위한 기준이 아니라 예산에 맞추어 탈락시키기 위한 기준이 되므로 이를 시정하기 위해 등급을 폐지하라는 것이다.

즉, 등급을 폐지하고 모든 장애인에게 보다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것이다.

현재 서비스 욕구가 있음에도 기준이나 판정 도구가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 맞추다보니, 활동보조 서비스가 더 필요함에도 극히 일부만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 복지를 위해 등급을 폐지하라는 말이다.

현재 장애인에게 주어지는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로 대변된다.

첫째는 장애인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각종 감면제도이다. 전기료, 가스비, 세금감면, 도로통행료, 자동차 구입시 특소세와 자동차세 등 국가 및 공공기관의 감면제도가 있고, 항공료, 전화료 등 민간기업이 감면해 주는 서비스가 있다.

서비스의 의무자는 국가인데 왜 민간이 이러한 서비스를 하도록 법이 만들어졌을까? 정부의 직접 예산을 확보하기에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에서 복지는 소비로 간주되어 예산확보에서 설득력이 낮아 복지부는 감면제도를 활성화시킨 결과이다.

이러한 감면 제도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제는 이것을 중앙정부에서 직접 장애인에게 수당으로 지급하는 방법으로 개선하자는 주장이 2012년도 기획단에서는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현재 전국적으로 이루어지는 감면제도를 종류별로 연간 총 얼마가 사용되는지 통계자료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지하철이나 철도청, 도로공사 등에서 주장하는 자료만이 있을 뿐이었다.

등급제를 폐지하면서 이를 현금화하여 중앙 정부가 장애인에게 직접 제공할 경우 현행 중앙정부의 장애인 복지예산 1조원의 몇 배가 될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민간이 잘 하고 있는 사업들을 국가가 떠안을 이유가 없고, 현재 주어진 것들은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장애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정부는 생각할 것이다.

이를 수당으로 장애인에게 직접 제공한다면 오히려 서비스량은 축소되거나 대상자 조건을 다시 검증받아야 하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장애인연금이나 수당 등 현금급여 서비스가 있다. 외국에서는 현금 서비스가 발달되어 있는데, 우리의 경우에는 연금 외에는 현재 없는 셈이다.

주거수당, 이동수당, 정보화수당, 생활수당 등 여러 수당이 장애인연금법 제정 당시 논의가 되었으나, 모든 수당을 통합하여 장애로 인하여 추가적으로 들어가는 수당으로 하여 월 6만원 정도로 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수당은 연금의 추가급여로서 연금 해당자가 아니면 장애인이라도 추가적 비용을 지원 받지 못하게 되었고, 불과 6만원으로 모든 장애인 추가비용을 퉁치게 된 것이다.

다음으로 활동보조 서비스와 같은 현물 서비스다.

복지관 등에서 서비스 받는 각종 치료 서비스를 포함하여 장애인 서비스 전달체계를 일원화하려는 노력은 10여 년 간 지속되었으나, 국민연금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욕구를 묻는 정도로 환경평가를 할 뿐 장애인 서비스 판정을 통하여 각종 서비스의 양을 조정하는 일은 전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몇몇 연구기관이나 교수들이 연구용역을 받아 장애인 등급제 폐지 후 서비스 판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나, 여기에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장애인 판정을 새로운 기준으로 하겠다며 대한의학회에 연구를 맡겨 만들어진 KAMS 판정 역시 장애인들의 반발과 많은 문제점으로 폐기하였고, 활동보조 서비스 판정도구의 개발에서도 시각장애인 77%가 등급이 하락하는 등 문제가 많았고, 장애인을 노인취급하는 방식으로 노인도구를 개조한 것에서 장애 유형별 불이익이 있어 반발이 거세지자 폐기하였다.

새로이 등급을 대신할 도구를 별도로 만든다면 서비스 등급판정을 위해 전문가의 자리나 판정 예산은 늘어날 것이고, 그만큼 장애인에게 돌아갈 서비스 양은 줄어들 것이다.

모든 감면 제도를 일일이 장애인 개인별로 판정하기란 어렵고 귀찮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므로 경증과 중증이라는 기준을 장애인이 아닌 서비스 등급으로 하여 등급을 단순화하여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지하철에서 한 사람만 무임승차를 하게 할 것인가, 도움을 주기 위한 동행자까지 무임을 허용할 것인가의 기준은 동행자가 필요할 정도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가가 될 것이다.

활동보조 서비스는 현재도 별도의 판정 도구가 있으므로 장애인 등급이 없어진다면 초기에 누구나 신청은 가능하므로 신청해도 서비스를 받지 못할 수준이 알려지기 전에는 많은 신청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심사비용이 많아지겠지만 이는 일시적 현상이 되거나, 서비스 이용 자격에서 탈락한 장애인들의 민원이 많아 업무에 부담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현행 3급 장애인 중 3% 정도가 남의 도움을 어느 정도 필요로 한다는 보사연의 연구 결과처럼 3급까지의 장애정도가 아니면 점차 신청을 아예 포기할 것이므로 등급을 폐지한다고 하여 서비스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장애인연금에서 등급이 아닌 방법으로 적격심사를 해야 하므로, 어느 정도의 장애인가를 판정하여 서비스 판정을 하면 되고, 이 판정 기준은 중증 판정과 거의 유사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장애 유형별로, 장애 정도에 따라 서비스의 변화가 현재 서비스에서 후퇴하지 않도록 하여 민원을 없앤다는 원칙은 가지고 있으나 실제 적용에서 이러한 일들은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교수들의 연구물들은 다수가 폐기되고 결국은 중증의 기준이 사람이 아닌 서비스등급판정에 사용되는 것으로 이 문제는 끝이 날 것이다.

장애인시설의 지방이양을 다시 중앙으로 환원함으로써 수천 억원의 예산이 늘어나야 하는 시점에 등급제 폐지로 서비스의 양과 대상자를 늘리겠다는 의도에 대해 정부는 최소화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여기에 또 장애인등록은 의학적 판정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의학계의 기득권지키기와 서비스를 늘릴 기회로 삼으려는 장애인계의 노력, 활동보조 서비스처럼 장애 유형별 불균형을 추가점수라는 보너스로 단순하게 해결하려는 학계의 충돌이 전쟁터를 만들 것이다.

욕구를 평가하는 판정도구가 유형별 특성을 보너스로 입막음하는 행정편의를 막을 수 있는가가 장애유형별 특성이 진정으로 고려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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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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