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한 번도 두렵거나 굴욕적이거나 상처 입은 적이 없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것이다.”(줄리아 소렌)

한국의 코마네치를 꿈꾸며 훈련을 하던 모습과 선수시설 모습. ⓒ이찬우

이 소녀를 처음 보았던 기억은, 필자가 사고로 병원 치료를 받던 1987년 9월경, 자그마한 체구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늘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기억이다.

27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녀와 당시 청년이었던 필자는 매일 여의도의 척수협회사무실에서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 센터장과 사무총장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인연이 참 멋지다.

바로 그 소녀가 정작 본인은 좋아하지 않는 수식어인 ‘비운의 체조선수’ 김소영이다.

체조선수 출신인 김소영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국가대표로 선발돼 훈련하던 중 이단평행봉에서 추락했다. 당시 메달 유망주이고, 고1이었던 소녀는 이 사고로 목뼈가 부러지면서 중추신경까지 끊어졌고, 다시는 자신의 발로 일어설 수 없는 1급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당시 137cm에 30kg의 작은 체구의 가녀린 소녀는 그 체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중증장애인이라는 무게를 지탱하게 되었다.

체조밖에 몰랐던 소녀가 국가대표가 될만큼 자유자재로 구사하던 그 귀한 몸이 사지마비 장애로 손목만 조금 쓸 수 있는 몸이 되었으니, 그 참담함과 힘듬은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히 세상으로 나왔고, "몸이 불편해 진 것이 행복한 일은 아니지만 '잇몸'으로 살 수 있는 요령을 배우면서 삶을 즐길 수 있다."며 긍정의 힘, 도전의 화신이 되었다.

모험을 즐기며 다양한 레포츠를 하는 모습-스킨스쿠버, 스키, 레프팅. ⓒ이찬우

사고 후 10여 년의 재활훈련 끝에 1995년 영라이프 장애인스키캠프를 주최할 때에는 외국에서 스키 강사를 초빙하고, 스키 장비를 들여오고, 기업 스폰서를 구하면서 힘든 줄도 몰랐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치러낸 성공적인 행사였다.

이후 장애인 선교단체를 통해 사랑의 휠체어 보내기 운동을 펼쳐 많은 휠체어를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전달했고, 이 일은 지금까지 계속 진행 중이다.

또한 2000년 제주 문섬에서 사지마비 장애의 몸으로 스킨스쿠버에 성공했고, 그 뒤 장애인스쿠버협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5년의 유학생활 끝에 얻은 값진 학사모를 쓰던 모습. ⓒ이찬우

더 나은 미래와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02년 미국 유학을 떠난 그는 5년만인 2007년 상담학 전공으로 캘리포니아주의 마스터스 칼리지에서 학사모를 썼다.

귀국한 뒤에는 척수장애인 동료상담과 장애인스포츠동호회 활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으며,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 국제업무를 담당하였다. 2011년부터는 한국척수장애인협회에서 특유의 집중력과 동시통역이 가능할 정도의 어학실력으로 협회내 국제업무를 담당하며 외국서적 번역 및 감수, 작년에는 뉴질랜드를 방문하여 선진 재활시스템을 배우는 프로젝트를 총괄하기도 하였다.

2013년에는 척수장애인재활지원센터 센터장으로 임명되어 대한민국의 척수장애인의 준비된 사회복귀를 위하여 애쓰고 있다.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지만 늘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가는 것에 주저하지 않던 소영씨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서울특별시 의원이 그것이다.

의원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서울특별시의회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김정재 의원의 궐원(’14.2.21자)에 따라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서 새누리당의 김소영 씨를 의석 승계자로 결정하고 3월 12일부터 의원직을 시작하게 되었다.

2010년 6·2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인재영입위원회를 통해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1번으로 추대를 받았으나,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최종적으로는 장애인 몫으로 서울시의회 비례대표 6번을 부여 받았었다.

오는 6월 30일까지의 짧은 임기이지만 새로운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고 본연의 임무를 잘 수행할 것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늘 전진하는 김소영 의원의 목표가 어디까지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그 곳이 어디든지 격려하고 지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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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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