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 지체 장애인. ⓒ the guardian

미국은 정부에서 장애등록 혹은 장애등급을 실시하고 있지 않는 국가로 장애인을 증명하는 공식적인 정부문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장애 관련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해당 서비스 기관에서 제시하는 적격성 기준에 맞는 경우에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주정부 재활기관, 퇴역군인 재활기관, 자립생활센터, 사회보장국 등은 각기 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의 성격과 특성에 따라 적격성 심사 기준을 달리 적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장애인연금과 같은 현금을 제공하는 사회보장국의 적격성 심사기준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 칼럼에서는 필자가 일한 주정부 재활기관에서 적용하는 적격성 기준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주정부 재활기관은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추기관이며,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등급제 폐지와 관련해 대안을 찾아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주정부 재활기관은 4가지 적격성 기준을 적용하고 있으며, 장애인 재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이 4가지 기준에 모두 맞아야 한다. 4가지 기준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청인은 반드시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신청인의 장애는 직업을 찾거나 유지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쳐야 한다.

셋째, 신청인은 재활을 하려는 의지를 갖고 주정부 재활기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해야 한다.

넷째, 신청인은 직업을 찾거나 유지할 수 있는 신체적·정신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적격성 기준들이 어떻게 실무에서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재활서비스를 받으려면 당연히 장애가 있어야 한다. 첫 번째 기준은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받는 진단서나 소견서가 핵심적인 근거 자료가 된다.

기본적으로 의사의 진단서에는 환자의 장애나 질환으로 인한 기능적 한계(functional limitation)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기능적 한계란 신체적 혹은 정신적 장애·질환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일을 하는데 요구되는 활동을 어렵게 하는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녹내장으로 시력이 떨어진 경우의 주된 기능적 한계는 글이나 사물을 볼 수 없는 것이며, 목발을 사용하면 걷거나 장시간 서 있는 것이 어렵다는 것 등이 기능적 한계이다.

기능적한계가 하나이든 여러 개이든, 중하든 경하든간에 일단 하나라도 있으면 장애가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의 경우를 적용해보면 경증인 6급이라도 기능적한계가 있다면 일단 장애가 있는 것이다.

지체, 시각, 청각 등과 같은 신체장애의 기능적 한계를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서류는 의사의 진단서이다. 그렇다면 정신장애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신장애의 경우에는 전문평가사나 심리학자가 실시하는 평가보고서를 근거로 기능적 한계를 확인한다.

예를 들어, IQ검사, 학습능력검사 등을 통해서 IQ가 얼마이며 읽기, 쓰기 등을 어느 정도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인성검사를 통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등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는 의사나 평가사의 진단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의사나 평가사가 작성한 진단서에 신청인이 기능적 한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기록되어있거나 신청인의 사례를 맡은 재활상담사가 기능적 한계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부적격하다고 판정한다.

일단 장애가 있다면 두 번째 기준을 살펴본다. 신청인의 장애가 직업 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장애가 취업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신청인이 직업목표를 달성하는데 기능적한계가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파악한다.

당연히 사람에 따라 찾으려는 직업도 다르고, 장애의 경중도 다르니 규격화된 공식은 없다. 신청인의 특성, 강점, 재활목표, 생활환경 등등을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 하반신마비, 맹, 농 등과 같은 소위 중증장애의 경우라면 직업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경증장애의 경우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필자의 한 신청인은 가벼운 요통 때문에 오랫동안 서서 일을 할 수 없는 기능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K-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직업목표였다.

이 경우 비록 기능적 한계는 있더라도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키높이 의자를 이용하여 간단히 기능적 한계를 해결한 적이 있다. 이 경우 장애가 직업을 유지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어 부적격하다고 판정한 적이 있다.

혹자는 두 번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주관적이지 않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한 장애인의 모든 생활환경, 특성, 장애, 재활목표 등을 고려하는 것이니 딱 정해진 공식은 없다. 그러니 기관에서 일하는 종사자인 재활상담사는 전문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합리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두 번째 기준을 적용하는데 있어 일부 중증장애(예를 들어,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 전맹 시각장애인 등)로 인한 기능적 한계를 가진 신청인의 경우에는 직업목표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그 기능적한계가 고용활동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누가 보아도 하반신 마비, 맹, 농 등은 고용활동을 하는데 중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새끼손가락 절단과 같이 경증이라고 판단되는 장애라도 직업목표가 피아니스트나 컴퓨터를 사용하는 속기사라면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본 칼럼을 통해 등급제를 실시하지 않는 미국에서 장애인들이 재활서비스를 받는 기본적인 절차를 살펴보고 있다.

처음 두 가지 기준을 통해서 장애를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인 의사나 평가사의 정확한 보고서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장애인의 생활환경, 특성, 장애정도, 재활목표 등을 모두 고려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이후 칼럼에서는 나머지 두 기준들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알아보자.

경증 지체 장애인 ⓒdreams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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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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