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업을 듣고 있는 장애인 ⓒdisstudies

필자는 시각장애 1급이다. 왼쪽 눈은 빛도 안보이며 오른쪽 눈은 빛 정도만 보인다. 학교 다닐 때는 당연히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대학시절에는 공부도 공부지만 그 흔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할 수 없어서 부모님 보기가 민망한 적도 많았다.

어머니의 권유로 맹아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포기하고 일반 중·고등학교를 다녀서 안마 기술도 배우지 못해 마땅히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 할 기회조차 정말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2-3개월이나 되는 대학교의 방학이 정말 싫었다.

그 긴 기간 동안 별로 할 일 없이 집에서 그냥 눈치 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가끔 집근처 복지관에서 주최하는 문화행사나 여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바람을 좀 쐬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하였으나, 뭔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가슴 속 깊이 박혀있는 것을 느꼈다.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떵떵거리면서 살 만큼 큰돈을 벌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친구들이 버는 만큼 벌어서 자신있게 살고 싶은 욕망이 풀리지 않은 응어리가 되어 마음 속에 깊이 박혀버린 것이었다.

흔히 장애인 재활 쪽에서 직업재활을 '재활의 꽃'이라고 부른다. 왜일까? 그만큼 직업재활이 장애인 재활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필자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직업만 있으면 만사형통은 아니지만 그래도 장애인 재활과 자립에 있어 직업은 가장 핵심적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정신을 장애인 철학의 가장 핵심적이며 근본적인 원리로 생각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마라는 가르침, 어른이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려는 문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려는 생각 등등 이러한 이념 때문에 미국에서는 직업재활을 유별나게도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장애인 당사자로서 필자 역시 직업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미국에서 말하는 직업재활 서비스란 무엇인가? 우리와는 어떻게 다를까?

필자가 2년 전에 직업재활 서비스를 받으려고 서울에 있는 장애인 복지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너무 큰 기대를 했던 것일까. 솔직히 제공되는 직업재활 서비스의 종류와 질을 보고 다소 실망했다. 주로 직업알선·매칭, 직업훈련 등과 같은 서비스가 주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미국에서 말하는 직업재활의 참 뜻과 직업재활 서비스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한 장애인이 직업을 갖는데 필요한 서비스가 모두 다 직업재활 서비스에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약간 추상적인 것 같아서 실제 예를 한번 들어보자.

휠체어를 사용하는 척수장애인 피터는 재활상담사가 되려고 한다. 재활상담사가 되려면 뭐가 필요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자. 당연히 직업알선·매칭, 직업훈련 서비스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선 재활상담사가 되려면 재활상담을 전공하여 대학을 졸업해야 한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등록금, 교재비, 교통비, 기타 문구 구매비 등등이 필요하다. 이동을 위해서는 전동 휠체어도 필요할 수 있으며 자동차가 있다면 차량개조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집에서 학교까지 다니려면 주택개조 역시 필요할 수 있다. 졸업할 즈음에는 재활상담사 자리를 알아보기 위한 직업알선·매칭도 필요하며 사회 초년생이라 직장 인터뷰 경험도 없으니 모의인터뷰, 이력서 작성, 면접관이나 직장 동료·상사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한 기술 등도 익혀야 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척수장애로 인한 심리적·정서적인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상담도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활동보조인, 대학 수업 이수를 위한 과외선생님 등도 필요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피터가 직업을 갖는 데 필요한 이런 모든 서비스를 직업재활 서비스로 간주하며, 직업재활기관에서 제공한다.

이렇듯 미국에서는 말만 직업재활 서비스이지 장애인의 재활에 필요한 교육, 심리, 의료, 직업, 사회통합 등을 모두 아우른 서비스를 직업재활이라는 이름 아래 종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름이 직업재활이라 하여 절대로 교육재활, 심리재활, 의료재활 등과 같은 타 재활영역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여러 종류의 서비스가 직업재활기관 한 곳에서 모두 제공되니 일명 원스톱 (One-stop) 서비스인 것이다. 구체적인 재활서비스 제공 방식에 대해서는 차후 칼럼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말하는 장애인 직업재활은 단순히 직업과 관련된 직접적인 서비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 한 장애인이 재활을 통해 자립을 달성하는데 요구되는 모든 서비스를 총칭해서 직업재활 서비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직업재활 서비스는 여러 기관에서 제공되지 않고 한 직업재활기관을 통해서 제공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장애인 직업재활 서비스의 종류는 제한적이며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것 같다. 직업재활 서비스의 양도 문제이지만 여러 기관에서 제공되고 있어서 장애인들은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차근차근 풀어가야만 미국과 같이 여러 종류의 직업재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장애인들에게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의사의 진찰을 받는 장애인. ⓒrehabhospital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원선 칼럼리스트
재활복지전문인력양성센터 센터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장애인 재활·복지 분야의 제도 및 정책적인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미국의 장애인 재활서비스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와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현재 장애계의 주요 이슈인 장애 등급제 폐지, 재활서비스 대상자 판정, 개별서비스 제공 방식과 서비스의 종류, 원스톱 서비스 체계의 구축 등과 관련해 미국에서 얻은 실무경력을 토대로 정책적인 의견을 내비칠 예정이다. 미국 주정부 재활기관에서의 재활상담사로서 실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얻은 지식과 실무 경력을 바탕으로 미국의 선진 장애인 재활서비스 제공 과정과 내용에 대해서 상세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