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12월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 장애인계 인사 20여명과 함께 이성재 국회의원, 한신대 김성재 교수, 권도용 교수와 필자가 올림픽파크텔에 자리를 같이 했다.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후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새벽부터 유세를 다닌 탓인지 김대중 후보의 얼굴은 창백하고 피곤해 보였고 걸음걸이도 다소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김대중 후보의 장애인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남달랐다.

김대중 후보는 헝가리의 장애인을 입양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군사정권시절 국내에 들어올 수 없게 되었을 당시, 유럽을 방문하게 되면서 알게 된 가정의 이야기였다.

당시만 해도 헝가리는 유럽에서 가장 복지가 낙후된 나라였지만 중증장애인을 입양하여 학교교육은 물론이고 지역 사회 공동체가 함께 장애인을 키우고 직업인으로 육성시키고 있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이 때 발생되는 장애인의 양육비와 재활 치료비를 모두 국가에서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후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장애인복지정책에 대해 두 가지 방향을 갖고 있다는 말씀이었는데, 하나는 아무리 심한 중증장애인일지라도 단순히 시혜적인 복지가 아닌 일을 통한 복지, 즉 '생산적 복지'를 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을 갖고 직업인으로 소득을 보장받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의 경우에는 삶을 국가와 정부가 책임지는 '국가 책임주의'를 구현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어떤 대통령도 이처럼 장애인의 삶을 이해하거나 명확한 정책방향을 제시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이 날 김대중 후보의 말씀은 여느 유세나 정책발표보다도 훨씬 강력하게 다가왔고, 우리 모두는 진한 감동으로 설득되었다.

당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장애인복지계에서는 장애당사자면서 복지철학이 있는 김대중 후보를 한뜻으로 지지하게 되었다.

장애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건국 이래 최초로 복리슬로건을 정한 정부가 되었는데, 이름하여 '생산적 복지'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후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복지슬로건이 각기 다르지만, 일이 가장 중요한 복지라는데는 한결같이 동의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실현하고자 하였는데, 그렇게 나온 것이 제1차 장애인정책 5개년 계획(1998년~2003년)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보건복지부, 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 고용노동부(노동부)의 3개 부처만이 참여하긴 하였지만, 대통령의 의지를 담아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보장'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해나갔다.

김재중 정부 시절에는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보장'이라는 목표 아래 '제1차 장애인정책 5개년 계획' 수립이 추진됐다. ⓒ김종인

김대중 대통령의 국가책임주의는 비단 장애인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는데,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복지철학을 실질적인 정책으로 실현해나갔으며, 이들을 동정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바뀌도록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끌었던 것도 그의 정책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장애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정책을 근간으로 하여 현재까지 복지정책이 발전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모두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장애인과 약자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관심으로 장애인복지정책 5개년 계획을 최초로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의 복지정책을 살펴보며, 대통령의 장애인에 대한 바른 이해와 복지철학이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열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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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칼럼리스트
나사렛대학교 재활복지대학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사)한국사회복지정책연구원장으로 특수교육, 사회복지, 재활학 등 장애관련 전 분야를 두루 섭렵한 장애인 분야 최고의 전문가다. 나사렛대가 장애학생 최대의 고등교육기관으로, 재활복지특성화대학으로 우뚝 서도록 견인차역할을 했다. 장애인 재활복지 실천현장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통하여 새것을 배운다) 칼럼에서는 재활복지의 산 역사를 조명하면서 미래 한국장애인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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