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 5번 플랫폼에 거꾸로 붙은 점자 엘리베이터. ⓒ서인환

서울역은 정말 복잡하다. 백화점이 있고, 식당가가 있으며, 철도박물관이 있고, 공항철도역사가 있고, 서부역이 붙어 있으며, 지하철이 있고, 지하도도 있다.

버스 환승센터에는 6라인의 버스가 플랫폼별로 있고, 승용차 주차장도 있고, 서부역에는 승용차나 택시가 2층까지 올라갈 수도 있으며, 광장 위에는 고가도로가 있어 회현동 방면에서 역사로 진입하려면 남대문으로 돌거나 고가를 타고 서울역을 한 바퀴 돌아야 한다.

광장에는 어김없이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고, 날마다 집회나 문화행사 하나 정도는 있다. 그것이 없으면 선교를 위한 공연이나 1인 악사의 연주라도 있다.

구역사에는 공연을 하는 공간도 있고, 무엇을 하는 곳인지 비어 있는 것 같은 공간들도 많다.

화장실은 대합실 2층 서부역쪽과 2층 입구 매표소 맞은편에 있고, 택시 승차차장은 서부역과 구역사 시계탑, 그리고 버스 환승센터 1번과 2번 라인에 있다.

그리고 인천가는 삼화고속은 우체국과 경찰서가 있는 광장 동편 구역사 바깥쪽에 있다. 구역사에는 화장실을 일반이 이용할 수 없고 바로 옆 경찰서는 급하다고 하면 매우 친절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 준다.

과거에는 서울역 시계탑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시계탑도 두 개이고 보니 주로 매표소 앞이 약속 장소가 된다.

롯데마트에 들어가 돌아다니다 보면 출입구를 찾지 못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잘못하면 코레일 본사 각종 사무실들이 나오기도 하고, 물품 창고, 주차장 같은 곳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특히 시각장애인들은 돌아다니다 보면 방향감각을 잃어버릴 경우가 많다. 동서남북의 개념이 정확하지 않으면 출구 방향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왕이 많은 것을 이용하여 대충 뒤따라가다가는 큰일이다.

임대용 회의실은 4층에도 있고, 공항철도 역사 지하 1층에도 있다. 흡연실은 서부역 쪽 2층 바깥에 있다.

대합실은 2층이고, 3층은 KTX라운지가 있어 기차 시간이 남은 사람들이 휴식하면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사실 광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대합실은 2층이지만 역사 대합실을 기준으로 하면 대합실을 1층으로 볼 수도 있어 사람들이 혼동하기가 쉽다. 그러나 벽에 몇 층인지 붙어 있다면 혼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벽에 몇 층인지 붙어있다 하더라도 시각장애인은 혼동스러울 수 있다.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이렇게 보지 못함으로써 층수가 혼동되는 건물들이 많이 있다. 비시각장애인은 안내판을 보고 혼동을 교정하지만 시각장애인은 교정할 기회가 없다.

어떤 견물은 언덕에 있어 앞으로 나가면 1층이지만 뒤로 나가면 바깥이 3층이고, 또 어떤 건물은 나가는 곳이 대여섯 개가 되는 곳도 있다.

이렇게 상당히 구조를 알고 있는 나도 서울역에서 가끔 당황스러운 일을 당한다. 아니, 그런 당황스러운 일을 경험했기에 이 정도라도 안다. 그럼에도 앞으로도 당황스러운 일을 얼마나 당할지도 모른다.

내가 서울역을 처음 구경한 것은 1972년 초등학교 6학년 시절이었다. 이모댁을 방문하기 위해 서울역에 도착한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당시에는 구역사만 있는 시절이었는데도 말이다.

대우빌딩 앞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길 건너편에 큰 건물이 있다는 말을 듣고 지하도를 건너 나가면 아무것도 없어 사람들에게 물으면 지하도를 건너면 있다고 했다. 다시 지하도를 건너면 또 다른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나 다시 서울역 광장이 나오고 사람들은 또 건너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하도 출입구가 너무 많으니 제대로 찾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건너편 건물을 가리키며 그 목적지를 생각해서 방향을 잡고 건너면 되지 생각하겠지만 목적지를 정하지 못하고 건너서 확인해야 하는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몇 번 출구로 건너라고 했다면 잘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평소 번호를 생각하지 않는다. 눈으로 사는 세상이 그렇다.

당시 이모님댁은 노원구에 있었는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지하철도 들어가고, 도로도 동부간선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청량리역으로 전철로 이동하여 중량교로 버스를 타고 가서, 2차선 꼬부랑길로 버스를 갈아타고 1시간 가량 달려야 갈 수 있는 곳이 노원이었다.

그리고 당시 노원은 콘크리트로 정비된 물길이 아니라 시골과 같이 논길 사이의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배나무와 밭길, 그리고 연탄이나 나무땔감 더미와 모래와 목재상들이 띄엄띄엄 보이는 시골길이었다. 당시 버스 안내양 누나가 매우 친절했다. 요즘 무인안내 시대에 시각장애인은 너무나 외롭다.

어제 밤에 나는 집으로 귀가하기 위하여 서울역을 지나게 되었다. 집을 인천공항쪽에 얻은 나는 매일 공항철도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길을 걸으면 사색에 잠기는 것이 잦은 나는 가끔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사실 시력이 좋지 않으니 더욱 눈에 불을 켜고 다녀야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그가 먼저 아는 척하며 정확하게 누구인지 말해주지 않으면 난처한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는 누구인지 파악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반가운 척 인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만나고, 어느 날 다른 장소에서 만나면 ‘며칠 전에 손짓을 하며 부르는데 왜 보면서도 그냥 갔느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 때 내 대답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 중이라 걸으면서 너를 보지 못했나봐, 미안해’가 되려면 아예 생각하면서 걷는 것이 편했고, 이제는 버릇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도 무엇인가 생각하다가 서울역 대합실에서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탄다는 것이 출입구를 잘못 찾아 기차를 타는 5번 홈으로 내려갔다. 늘 가는 곳인데도 출입구를 순간적으로 착각하여 구분을 못하다니 어이 없는 일이었다.

개표 검사대가 있었다면 잘못을 알아차렸을텐데 최근 그런 것이 없으니 아주 편하게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가차가 보였지만 ‘아 내가 평소에 왜 이런 장면을 봇 보았지? 공항철도를 내려가면서도 기차가 보이도록 창문이 되어 있구나 싶었다. 내려가고 나서야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 잘못 온 것을 알았다. 서울역 공항철도는 지하 7층에 플랫폼이 있다.

다시 올라가려고 하니 에스컬레이터가 아닌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플랫폼을 따라 걸어 보았으나 내려오는 플랫폼만 있었다. 아마도 출발선과 도착선이 달라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도 장애인 편의시설이 있겠지. 엘리베이터를 찾자고 생각한 나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점자로 ‘상’자가 있는 것을 보고 눌렀다. ‘상’자는 거꾸로 붙어 있었다. 어디 거꾸로 점자를 붙인 곳이 한 두 군데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불이 아래 화살표로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내려가는 화살표는 있어도 올라가는 화살표는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으니 화물전용 엘리베이터라 지하로 연결되어 있고 ,직원용으로 물품을 나르는 엘리베이터라고 했다.

그렇다면 점자가 잘못 붙은 것이 아니다. 엘리베이터 제작사에서 점자를 아예 주형물로 합쳐서 제작한 것이다.

버튼의 화살표는 방향을 돌리면 위가 아래가 된다. 점자로는 ‘상’자를 붙여 놓고 아래 화살표 버턴이 필요하자 그것을 뒤집어서 사용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자는 거꾸로 되지만 화살표는 내려가는 화살표로 사용된다. ‘상’자가 거꾸로 붙은 것이 아니라 ‘하’자가 붙은 버턴과 바뀐 것이다.

한 달 전 쯤 장애인관련 자문회의에 초대되었다. 회의 장소가 서울역 지하 1층 회의실이라고 통보받았다. 서울역으로 가서 지하 1층 회의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공항철도 역사에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물으니 지상과 같은 높이의 층에서는 1층이라고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지하 2층이란다. 안내를 잘못해 주는 사람들도 많으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다시 묻고 내려가서 다시 물어보았으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울 사람들은 친절한 편이기는 한데 몰라도 아는 척 잘못 가르쳐 주는 사람도 많다. 그럼 지하 1층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게 여러 번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회의 시간이 넘어 당황하게 되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심장이 심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전화를 하여 누군가에게 물으니 지하 1층은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엘리베이터로만 갈 수 있다고 했다. 회의참석자나 직원 전용이므로 7층까지 내려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바로 내려가도록 에스컬레이터는 만들지 않은 것이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뒤를 돌아보니 내 뒤에 내려오는 사람이 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다 내려가서 다시 올라와야 하는데 나는 그냥 뒤돌아서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뛰어 올라오는 역주행을 시도했다.

에스컬레이터는 속도가 있어서 뛰어도 제자리였다. 그러다가 나는 중심을 잃고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 넘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이 박살이 났고 손에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흘렀다. 손톱 하나가 갈라져 그 사이로 피가 터져나왔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 지하 2층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런데도 지나가는 사람 아무도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고 오히려 자신도 급한 일이 있는 듯 급히 서둘러 내 앞을 지나쳤다. 직원을 불러 주거나 피가 난다고, 사람이 쓰러졌다고 직원을 부르거나 도움을 청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 계단을 약 10개 정도는 굴렀는데도 말이다. 역주행한 내 탓이니 성질이 났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은 대합실에 중소기업 홍보관이 있고 벽마다 틈만 있으면 돈이 되는 광고판이 자리를 잡고 있다. 넘치는 광고판에 안내판은 너무나 부족하고, 안내 문구는 글씨가 작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높은 천정에 붙은 글씨는 노인이나 저시력 시각장애인은 볼 수가 없다. 부족한 안내판과 잘못된 안내판, 서울역은 섬세함과 고객 중심의 마인드가 비어 있다.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메뉴판을 계산대 뒤에 작은 글씨로 붙여 놓은 경우, 시각장애인들은 물어보고 메뉴를 선택하게 되는데, 모두 다 읽어 달라고 할 수가 없고, 직원이 모두 다 읽어 주기도 힘들다.

왜 시각장애인이 언어장애를 느껴며 대충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