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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행의 ‘기적’을 아직도 믿는다

‘장애’라는 타이틀이 없는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3-12-16 11:23:52
기적(奇跡)

명사
1.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2. <종교> 신(神)에 의하여 행해졌다고 믿어지는 불가사의한 현상.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인 포레스트가 보행의 기적을 얻어 두 다리로 뛰는 모습.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산다. 나는 보행의 기적을 아직도 믿는다. ⓒ네이버 영화 에이블포토로 보기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인 포레스트가 보행의 기적을 얻어 두 다리로 뛰는 모습.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며 산다. 나는 보행의 기적을 아직도 믿는다. ⓒ네이버 영화
보이지 않는 손께서 인간에게 값을 지불할 것을 요구치 않고 무료로 베푸신 것을 세 가지만 말해보라고 하면 주저 없이 말할 것이다. 바로 자연, 공기, 보행. 참 값진 것들이다. 이 세 가지의 가치는 물질로 환산할 길이 없어 살 수도 없는데 그런 대단한 것을 무상으로 받았다. 무상이기 때문에 어떤 기준도 자격도 필요치 않다.

누구나 받는 세 가지지만 난 이 중에서 두 개밖에 받지 못했다. 한국 사람인 이상 공짜를 무척 좋아하지만 풀 패키지를 무료로 받지 못한 것이 참 아깝기만 하다. 보행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지 못하는 대신 ‘장애’라는 특별한 타이틀을 받았지만 별로 달갑지 않다.

보이지 않는 손께서 왜 내게 보행이라는 무료 선물을 주지 않으셨을까에 대한 의문은 아직도 갖고 있지만, 원망은 갖고 있지 않다. 남들이 거저 가지는 걸 난 기적이란 이름으로 소망해야 한다.

장애를 가지고 산 지 오래되었건만 기적을 염원하는 이 마음은 변치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활활 타오른다. 다만 겉으로 보기에 소원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세상을 사는 미덕이요 센스이기 때문이지 보행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보행기적을 무상으로 얻은 몇몇 사람들을 바라볼 때 마음이 불편하다. 잠시 샛길로 새어 보자.

한참 대선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작년 말,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는 대선 후보자 3명이 차례대로 나와 자신의 삶을 재조명하고 포부를 전하는 시간이 마련됐었는데, 안철수 당시 후보가 나와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예전에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섬 지역 노인 분들을 위해 왕진을 간 적이 있었고, 진료를 해드리고 무상으로 약까지 드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진찰을 해드렸던 분들의 증세가 호전 되지 않았다. 왜 그런가 했더니 약값을 지불하지 않아서였는지 몰라도 어르신들께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중엔 어르신들께 100원씩을 받고 약을 드렸더니 그 때부터는 챙겨 드시더라.

기억으로만 더듬어 쓰는 것이라 정확치는 않지만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오늘날 많은 ‘보행가능자’들이 이런 마음 아닐까 싶다. 자신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무료로 얻었으니, 그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염려, 진로에 대한 염려, 연애와 결혼에 관한 염려, 양육에 관한 염려 등으로 시간을 보내지만 장애인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염려, 배변과 배뇨에 관한 염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염려,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염려 등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분명히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원론적인 것으로 염려하며 살아가는 장애인에 비하면 그런 고민을 하지 않으며 사는 비장애인은 행복하다. 사실 신체의 제약이 있는 자들에겐 보행 그 자체가 기적이며, 듣지 못하는 자에게는 듣는 것 그 자체가 기적이며, 보지 못하는 자들에겐 보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니겠는가?

장애라는 타이틀이 없는 분들께 여쭙고 싶다. 당신은 이 중에서 몇 가지의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가?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장애라는 타이틀이 당신께 부여 되지 않았다면 이미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며, 혹여 당신의 곁에 장애를 가진 이들이 있다면 병신, 벙어리, 귀머거리라고 놀릴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긍휼함을 가지고 내 일처럼 돕는 것이 먼저다. 이건 진심 어린 부탁이다.

난 아직도 믿는다. 보행이라는 아름다운 기적을. 그리고 그 아름다운 기적이 일어나면 내 도움이 필요한 그곳에서 베풀며 이 세상을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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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안지수 (morebeyo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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