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은 신분제도에서 온 말이다. 신분제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되었으나 신분증은 아직도 남아 있다. 신분은 social position(사회적 위치, 직위). 신분의 차이가 아직 남아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바로 신분증이라는 법적 용어이다.

주민등록증에는 어떠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정보도 없다. 장애인등록증이 신분증이라면 장애는 하나의 신분으로, 계층을 나타내는 증명서가 되어버린다.

장애를 하나의 계층으로 보는 것은 사회적 약자 그룹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있을 수 있고,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고유성을 인정하는 면으로 보면 긍정적 면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증을 신분증으로 인정하는 것은 편리성을 인정하는 긍정적 측면이 있고, 장애를 하나의 신분처럼 보거나 개인적 정보가 노출되는 부정적 면도 있다. 즉 장애인 등록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낙인으로 보기도 한다.

장애인들이 공무상 기관을 방문하거나 본인 확인을 하기 위하여 장애인증명서(복지카드)를 제시하였을 때 장애인증이 신분증으로 인정되지 않아 난감한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대부분 장애인들은 ‘장애인증도 신분증이다’라고 주장하고, 공무원은 그런 업무 지침이 없다고 맞선다.

둘 다 정확한 법적 근거는 잘 모르고, 양보할 수 없는 시비가 붙다가 대부분 공무원이 사과를 하고 마무리되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애인은 자존심에 많은 상처를 입고, 시간적 손해를 보게 된다.

외국에서는 신분증이 아니라 신원증(identity card)을 사용한다.

대한민국 법률에서는 신원증이라는 말은 단 하 번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신분증은 법률에서는 8개, 시행령에서는 45건, 시행규칙에서는 22건이, 고시나 훈령에서는 92건이 사용된다.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맡기라는 주문은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는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신분증에는 사진이 있고, 주소와 이름이 있고, 주민등록번호가 기록되어 있다. 사진을 보고 신분증을 제시한 사람과 얼굴을 비교하여 본인이 맞는지를 알아볼 수 있고, 제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신원조회의 기능이다. 단순 확인만의 기능이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기록해 두고자 하는 것이다. 신분증에 기록된 정보를 보고 방문자 기록을 하는 등이 이러한 기능이다.

세 번째로는 담보의 기능이다. 주민등록증 등을 맡겨 두고 다른 방문증을 받아 폐용을 하고 업무를 보고 나중에 다시 신분증과 방문증을 교환하는 것은 담보의 기능이다.

신분은 직위나 자격을 나타내기도 하고, 신원만을 나타내기도 한다.

운전면허증이나 국가기술자격증, 교원증 등은 자격을 나타내고, 기업에서의 사원증 등은 직위를 나타내며, 공무원증이나 국회에서 국회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발행하는 직원신분증 등도 직위를 포함하고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주민등록증은 신분증이 아니라 신원증이라 함이 맞다.

주민등록법 제25조(주민등록증에 따른 확인)에서는 '국가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사회단체, 기업체 등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할 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로서 17세 이상의 자에 대하여 성명·사진·주민등록번호 또는 주소를 확인할 필요가 있으면 증빙서류를 붙이지 아니하고 주민등록증으로 확인하여야 한다'라고 정하고 있다.

각 호는 1.민원서류나 그 밖의 서류를 접수할 때, 2.특정인에게 자격을 인정하는 증서를 발급할 때, 3.그 밖에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할 때로 나열하고 있다.

이 법에서는 서류를 주고받거나 확인이 필요한 경우 주민증 제시를 요구하여야 한다고 하여 다른 신분증을 일체 인정하지 않는 듯하다.

다른 신분증으로 대할 수 있다는 조항이 없다. 이는 ‘다른 신분증은 안 된다’가 아니라, 주민증의 용도를 규정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법은 주민등록에 관한 법이므로 주민증만을 언급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신분증이 된다는 규정도 없지만, 안 된다는 규정도 없다.

주민등록증을 보고 확인하라고 하였지 신분증으로 확인하라고 하지 않았고, 기업에서조차 주민증으로 하라고 정하고 있어 법적 효력이 사기업이나 민간에게까지 미친다고 보아야 하고, 기업에서 주민증 제시를 요구하여도 이에 응하여야 한다.

법이 주민등록법이고 주민등록과 관련된 주민등록증의 효력이나 용도를 이야기한 것이라면 다른 신분증과의 연관성은 이 법에서 찾을 수 없다. 26조에서는 사법경찰관의 주민증 제시요구를 다루고 있다.

‘신분증명에 관한 법률’과 같이 신분증의 정의나 범위 등을 정한 독립된 법률은 별도로 없다. 신분증은 외국의 국가나 정부, 공기관, 혹은 민간기관도 발행할 수 있다.

기자의 경우 언론사에서 발행한 신분증이나 기자협회에서 발행한 신분증도 집시법에서의 취재활동 보장을 위해 신분증으로 사용될 수 있고, 공기관 방문시 그 기관에서 언론사에 미리 명단을 받아 출입증을 발급하여 기자출입증을 신분증으로 제한하여 사용한다.

주민등록법 제25조에서는 ‘대통령이 정한 경우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주민등록 확인에 대한 예외는 별도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고 하였다면 별도로 정한 규정으로 한정되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였으므로 별도의 예외규정에 관한 시행령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법률의 일반 시행령에서 정한 내용만 있으면 여러 법에서 정한 모두가 예외로 인정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선 적용한다는 것이다.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규칙 제32조(신고인 등의 확인) ②에서는 '그 밖에 대법원규칙으로 정하는 신분증명서'는 국제운전면허증, 전자카드식공무원증, 외국국가기관 명의의 신분증 그 밖에 대법원 예규가 정하는 신분증명서를 말한다'라고 하여 대법원 예규에 의존하여 그 범위를 정하고 있다.

법률에서 정한 신분증의 범위를 보면, '공공기관이 발행한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신분증'으로 규정한 곳이 다수인데, 이는 발행기관이 민간은 안 되며 사진과 주민등록번호가 있고, 주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법에서는 신분증을 열거하여 '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으로 정하고 있고, 법에 따라 이런 열거에서 장애인증이 들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등'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해석상의 시비가 있을 수 있다.

본인서명사실 확인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4조에서는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장애인등록증, 대한민국 발행 여권, 외국인 등록증, 국내거소신고증으로 나열하고 있고, 호적선례 200605-3 등 대법원 예규에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본인 확인이 가능한 경우는 신분증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자격시험에서는 신분증을 나름으로 정리하여 여권,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만으로 하고 있으며, 그 외의 신분증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여 국가에서도 인정하는 신분증을 산업인력공단 등이 인정하지 않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국가자격증도 신분증으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는데, 발행처가 국가이고 신원 확인 정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격증의 종류가 너무 다양하여 진위 여부 판단이 어려워 인정하지 않는 곳이 아직은 많이 있다.

군인증도 대법원 예규에서는 신분증으로 인정하고 있어 특정 직업군이나 교원증과 같은 자격증도 신분증으로 이용되고 있다.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 역시 국가에서 발행한 증명서이다. 구청장 명의로 발행된 문서이고, 신용카드 겸용의 경우에는 조폐공사라는 공기관의 정식 신분확인을 한 문서이다.

법률에서 열거식으로 정하든, 공기관 발행의 사진 등 확인정보가 있는 문서로 하든 장애인증은 분명 신분증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교원증처럼 자격을 정하든, 주민등록이나 장애인등록과 같이 국가의 신원등록을 하든 공인된 신원정보가 들어 있으면 신분증으로 사용된다.

복지카드라고 하는 것은 장애인등록증을 서비스 자격증으로 인식한 용어로 받아들이고 있다. 장애인등록증명서는 사진이 없는 문서로서 가족관계부와 같이 별도로 존재하지만 보통은 복지카드를 장애인증으로 인식하고 있다.

수많은 법률에서 각기 신분증의 인정 범위를 나열하여 서로 상이하게 해석하는 일이 발생하도록 하지 말고, 별도의 법률을 정하거나 하나로 통일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대법원 예규에 의존하여 해석하는 것은 법원의 판결을 행정에서 존중하는 것 같지만, 국민의 정보 접근성에는 매우 불리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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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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