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침은 복잡하고 분주하다. 사람의 물결, 도로 위 자동차들의 몸살, 시끄럽고 어수선한 풍경이 마치 전쟁터처럼 느껴진다. "균형 발전"이라는 정책적 함의는 어디로 가고, 아직도 모든 흐름과 형성이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 많다.

혹자는 농촌의 아침 풍경을 낭만적이라고 표현한다. 신선한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 조용한 일상이 여유로워서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좋은데 결정적으로 문제는 사람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80대 농부, 70대 경운기 기사, 60대 청년회장이 이제는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동트기 전 논밭에 엎드려 일하는 몇 사람들과 집집마다 개 짖는 소리, 확성기를 매단 트럭이 어슬렁대며 고물 내놓으라 연신 소란을 피우는 정도가 전부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학교 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군데군데 빈집들이 계속해서 늘어만 간다.

"장애인의 날"이 벌써 33회를 맞이했다. 정책도 예산도 많이 늘었고, 사회 인식과 편의시설도 좋아졌다. 장애인들이 국가 정책에 참여하는 비율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며, 다양한 분야에 직·간접적으로 진출해서 "장애"가 아닌 "능력"을 인정받으며 넓게 활약하는 인재도 많아졌다. 이와 같은 결과는 틀림없이 긍정이며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농촌 장애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정책적 방향이나 갖추어진 제도는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시각장애인이어서 못 찾았는지도...

모든 사람이 현재를 "장애인 자립"의 시대라 말한다. 그러나 농촌 지역 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재활"의 시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단어로 존재할 뿐, "재활"이라는 시대를 그냥 건너뛴 느낌마저 든다.

치료와 교육, 직업과 사회참여에 대한 환경적 뒷받침은 매우 허약하며, 겨우 공공부조에 의한 시혜적 지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짧지 않은 33년의 시간이 그렇게 가 버렸고 농촌 거주 장애인들은 세월에 떠밀려 고령사회 속으로 그냥 들어가고 말았다. 이와 같은 현실이 "차별 속에 차별"이 아닌가 크게 외치고 싶다.

경기도 파주시에는 "파주시 장애인 자립지원 지역사회 조직화에 관한 조례"가 자치법규 제1000호로 제정되어 있다.

서울시와 안양시를 합한 넓은 면적에 단 1개소의 장애인종합복지관이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지역 주민과 함께 6년 전에 시작한 사업이 조례로 제정된 것이다.

사회참여 의지가 분명한 장애인을 중심으로 2인 이상의 지역 주민이 무형의 사랑방 형태로 지원에 나서게 되며, 장애인복지관이 수립한 개별화 계획에 따라 지속적으로 자립을 실현해 나가는 프로젝트이다.

또한, 각 읍·면 단위로 공무원, 기업인, 유관 단체장, 장애인 지도자들이 참여하는 "장애인자립지원위원회"를 조직해서 농촌 장애인들이 지역 내에서 충분히 사회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기반을 형성하는 신개념의 프로젝트이다.

공식적인 사업 명칭은 "행복한 내일을 여는 사람들"이며, 현재 파주시에 8개 읍·면에 조직화를 완성하여 활발하게 장애인복지를 실천하고 있다.

공간과 시간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으면서도 적은 비용으로 정말 따뜻하게 장애인의 사회참여 기반을 다져 나가고 있다.

장애 유형, 성별, 연령을 따로 구분하지 않으면서 각 개인이 바라는 미래에 대해 밀도 있게 설계를 한 후, 상호 협의와 토론을 거쳐 "성공적인 사회참여"를 달성해 나간다.

(좌) 월롱면 장애인자립지원위원회 월례회의 (우)광탄면 장애인자립지원위원회 월례회의. ⓒ유석영

지난해 10월부터 경기복지재단, 성공회대 김용득 교수연구팀 그리고 우리 복지관 비상설 연구진이 공동연구에 착수하여 올해 2월에 Community Based Support Service 즉 CBSS라는 모델로 큰 그림을 그리며 태어났다.

이 프로젝트를 경기도와 전국 농·산·어촌 장애인복지관에 집중적으로 파급하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상으로 국제적인 교류도 계획하고 있다. 그야말로 농촌장애인의 성공적인 사회참여를 꽃처럼 피어나게 하려고 우리는 열심히 발로 뛰고 있다.

정부와 장애인복지 전문가들이 도시에 시선을 집중하는 동안 농촌 장애인들이 꿈을 펼칠 기회를 더 이상 상실하지 않게 하려고 우리 복지관과 파주 지역 주민이 궁여지책으로 손잡고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이제는 멋진 모델로 모두에게 희망의 바람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장애인복지관의 지역사회중심 지원서비스(CBSS)모형 개발. ⓒ유석영

새 정부는 지금이라도 농·산·어촌 장애인들의 사회참여 기반 조성을 위해 정책적 배려를 해 주었으면 한다.

비용과 환경적 요인에 매몰되지 말고 지역 정서와 장애인의 비전에 맞는 지원 사업의 방향을 설정해서 장애인복지관과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여 착실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복지 분야에도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고 비록 오지에 살더라도 충분히 사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경기도 파주는 장애인들이 대상자가 아닌 주민의 위치에서 함께 지역발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각 개인이 지닌 비전을 주민의 손을 잡고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고 있다.

이렇듯 우리 경기도 파주시가 군불을 지폈으니 정부와 장애인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발 벗고 나서서 도시와 농촌이 장애인 자립의 또 다른 차별을 넘어 아름답게 사회참여 할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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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영 칼럼니스트
사회적협동조합 구두만드는풍경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장애인복지 향상, 선한 가치의 창출과 나눔을 이념으로 청각장애인들이 가진 고도의 집중력과 세밀한 손작업 능력을 바탕으로 질좋은 맞춤형 수제 구두를 생산하며, 장애 특성에 맞는 교육을 실시하여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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