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공원에서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아찔함 (맑은 하늘의 아찔함과 출입구 언덕의 아찔함)을 맛보고 난 후 동생과 나는 얼른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지하철에 오르기 전 행선지를 정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홍대가 멀지 않아 도전 삼아 가보기로 했다.

이전 같으면 엄두도 못냈을 홍대입구역. 주말이라 그런지 역시 청년층의 유입이 만만치 않았다. 가히 ‘젊은이들의 거리’라 할만 했다. 우린 내가 자주 가는 게임 커뮤니티의 회원 분이 오너로 계시는 카페에 가기로 하고, 바람을 가르며 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람을 가르며 서둘러 가려고 하면 늘 그 무엇이 발목을 잡는다. 바로 화장실.

여기서 우습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화장실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풀자면, 홍대입구역에서 볼일을 보려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외관은 넓은데 편의성은 별 3개 정도인 화장실을 보면서 ‘그냥 그렇구나’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도 볼일을 보러 간다며 나갔다. 장애인 화장실의 문은 자동문이었는데 밖에서 스위치를 열고 들어오면 안에도 스위치가 있는 그런 구조다.

그런데 문제는 동생이 화장실을 가고부터 시작되었다. “형 볼일 보시고 계세요. 얼른 다녀올게요.”란 말을 남기고 떠난 동생은 십 여 분 이상을 들어오지 못했다. 화장실 안에서 문을 열고 나가고 나면 안에 있는 사용자가 버튼을 누를 때까지 밖에서는 열지 못하게 락(Lock)이 걸려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

그걸 몰랐던 동생과 나는 한바탕 쇼를 벌였다. “형! 문이 안 열려요!”라며 간절(?)하게 외치는 동생의 말에 다시 눌러보라는 말밖엔 할 말이 없었다. 억지로 열어보려고 해도 어찌나 단단하던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난 변기에 앉아 있으니 오픈 버튼을 누를 수가 없고 도움을 요청할 때 누르는 응급 버튼도 내가 손이 닫지 않는 곳에 있었다. 한 마디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었다.

그 때 에이블뉴스에서 취재 나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우리끼리,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생이 생고생을 다하고 결론적으로는 역무원의 도움을 받아 출애굽과 맞먹는(?) 해방감을 누렸는데, 솔직히 정말 아찔했다.

이로써 나의 6개월만의 상경기는 간단히 ‘세 번의 아찔함’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지하철역을 떠나서는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요철(凹凸)이 많았고, 휠체어가 여러 차례 덜컹거렸다.

카페가 홍대 중심부에 있지 않아 자동차의 방해는 그다지 없었지만 카페 출입구의 언덕이 하늘공원보다도 높아 이동에 조금 애를 먹었지만 차 맛이 좋은 편이라 다시 한 번 가보려고 한다. 사장님이 거듭 죄송하다고 하셔서 오히려 더 죄송했다.

이런 정신없는 일정 가운데에도 지치고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행복했다. 아직까지 장애인의 활동이 용이해지기 위해 산적해 있는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당장의 긍정적인 측면이라고 하면 ‘지하철의 확장’이었다. 지금보다 더 구간이 확장 되고 편의시설도 늘면 장애인의 활동 영역을 더 넓힐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장애인에게 여행이란 ‘살아가게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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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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