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공약에서 장애인등급제 폐지가 약속되었다. 그리고 인수위 국정과제에서도 서비스 전달체계 개편이 선택되었고, 개인별 맞춤형 서비스를 한다고 하였다.

서비스를 개별화한다는 말은 개인 맞춤형으로 서비스를 하는 것이므로 등급제는 필요 없게 된다. 등급에 따라 서비스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서비스를 달리하기 때문이다.

등급제는 왜 시행할까? 서비스와 연관관계 때문일까? 그렇다면 서비스는 6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는가? 서비스의 필요성을 기준으로 등급을 정하지 않고 의학적으로 등급을 분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급은 의사들의 놀음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애인의 장애 정도를 판정한다고 하지만, 등급판정이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하기 위한 수단보다는 인간의 신체를 해부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지 않나 싶다.

신체를 잘못 해부하면 정신도 해부된다. 즉 사망을 하게 된다. 그리고 신체적 손상이나 결함정도가 아니라 기능적 작업능력을 조사하여 의학적 판단을 탈피한다고 하면서 그 기능이 바로 의학적임을 전혀 망각하고 있다.

발목을 다친 것도 의학적이지만, 다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의학적이다. 다친 것을 치료하는 것도 의사이고, 움직이는 데 불편한 것을 해결하는 것도 의사이다.

사실 복지부분에서 등급을 전제로 하는 것은 장애인복지뿐이다. 여성도 등급이 없고, 노인도 등급이 없는데, 왜 장애인만은 등급이 필요할까?

복지는 의학이 아니고 의사들이 해결할 것도 아니면서 판사 역할을 의사가 하지 않으면 장애가 더 심해지거나 큰 일 날 수도 있다고 협박하면서 자신들의 밥벌이자 자신들의 영역으로 묶어 두고 있다.

중증장애인의 보장구나 특수한 의료적 장비에 대하여 의사가 판정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현실은 자전거와 자동차를 타는 자세가 나쁘면 몸에 이상이 생길 수도 있으니 자전거와 자동차 판매를 의사가 해야 한다는 식이다.

등급제가 사라지면 무엇을 근거로 서비스를 달리 할 것인가가 문제라고 한다. 그래서 등급제를 당장은 폐지할 수 없다고 한다.

서비스는 크게 4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무상지원이나 감면혜택이다. 이 서비스는 중증과 경증으로 나누어 차별해 왔다. 중증과 경증이 아니라 동반자가 필요한 정도인가 아닌가로 판단하고, 두 사람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는가 결정하면 된다.

지하철이나 교통 수단에서의 동반자 할인이 그러하다. 동반자가 필요할 정도이면 중증일 것이며, 소득이 더 낮을 것이므로 다른 감면 혜택에서도 차등을 둘 수 있다.

장애인으로 등록하기 위한 최소의 기준조건을 만들어 놓고 현재의 모든 장애인이 이 기준으로 등록이 가능한가를 평가하면 등록제도는 유지될 수 있다.

다음으로 재활서비스이다. 치료와 직업재활 등 지금까지 주로 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들이다. 이 서비스를 장애인등록 당시 원스톱서비스로 욕구와 서비스 이용자격까지 심사한다는 것이다.

이 것이 정부가 꿈꾸는 서비스 전달체계의 일원화이다. 서비스판정센터를 만들어 모든 장애인들의 서비스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비스의 중복과 누락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서화된 개별화 재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서비스를 통제하기에는 서비스의 전문기관이나 서비스 제공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공급되는 물량은 별로 없으면서 서비스자격 부여 심사를 한다는 것은 결국 서비스 배급제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결국 사회복지사라는 전문가들이 장애인들의 삶을 결정하는 키를 쥐고, 그 기득권으로 먹고 살게 될 것이다. 자립과 당사자주의로 인한 체면손상을 다시 만회할 기회가 될 것이고, 복지 전문가들은 여기에 목을 매어야 한다.

사실은 전문 기관을 늘리고 서비스 전문가를 양성하여 서비스를 할 여건을 개선하면 각자가 서비스 제공자에게 처방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다. 원스톱 서비스가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1차병원을 거쳐, 2차병원으로, 다시 3차병원으로 가면서 동일한 검사를 위해 여러 번 피를 뽑고 거리에서 헤매며 치료시기를 놓쳐 버리는 것과 같은 번거로움을 만들 수도 있다.

동사무소나 구청에서 행복서비스센터 등을 통하여 노인과 장애인 등 사례관리를 한다지만 이들은 서비스 소개방 역할에 불과하며, 결코 장애인의 전문성을 살리거나 장애인의 삶의 생애 주기별 서비스의 자격을 판정할 능력을 가질 수 없다.

등급제가 사라지면 각종 서비스는 등급에 따라 배급하는 것이 아니므로 별도의 각 서비스마다 자격판정을 해야 하므로 5천억의 경비가 든다고 한다.

이는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자신의 몫으로 만들기 위해 복잡한 절차, 비싼 약을 강매하기 때문이며, 간단하고 저렴한 그러나 약효에 별 차이가 없는 자격기준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또한 등록장애인 300만이 의사들에게 장애등급 판정을 위해 사용한 금액이 1조원이 넘는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정부가 사용하는 판정비용 5천억원은 부담스럽다는 것은 비양심적 발언이다.

셋째 서비스 유형인 장애인들의 역량강화와 자립에 대한 서비스는 등급과 무관하므로 굳이 판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감면혜택을 위한 간단한 판정만 있으면 현재는 등급제는 언제든지 폐지해도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

새로운 판정기준을 마련하고,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하고 등 등급제 폐지의 조건을 내거는 한 새 정부 5년 안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양가족이 있으면 수급자가 될 수 없어 심청이를 팔았다고 한다. 그림 안태성 ⓒ서인환

심봉사가 심청이를 공양미 삼백석에 팔았는데, 눈을 뜨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부양가족이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하기 때문에 팔았다고 한다.

공양미 삼백석으로 재활을 하였다는 증거는 없으나 그 효과로 딸이 왕비가 되었고, 아버지를 찾기 위한 맹인잔치에서 딸을 보고 놀라 눈을 뜨는 것이 재활과정의 효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딸이 없어 수급자가 되었고, 그 수급비가 있었기에 잔치에 갈 차비도 마련할 수 있었고, 이제 출세한 딸을 만났으니 수급비없이도 잘 살겠구나 생각하니 세상이 열리더라는 것이다.

평소에 눈을 감고 살다가 딸을 보고 놀라 눈을 뜬다는 이야기는 시각장애인들이 평소에 눈을 감고 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재활론자들의 이야기다. 보이지 않는 것과 감고 사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인 것이다.

아무리 장애가 심해도 복지법상 유형과 판정기준에 없으면 비장애인이다. 그림 안태성 ⓒ서인환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통증으로 몸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도 장애인이 아니다. 복지법상 장애 유형에도 없고, 장애인등급 판정 기준에도 없기 때문이다.

의학이란 것이 아직 발전 과정인 학문이며, 아직 인류 인체 신비가 모두 밝혀진 것도 아닌데, 의학은 마치 완성된 학문인양 현재의 의학으로 알 수 없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머리가 둘 달리든, 머리와 엉덩이의 위치가 서로 바뀌든 장애인복지법상 15개 유형에 없으면 장애인이 아니다. 단지 괴물로만 취급된다.

장애인등급은 신라시대의 6두품 제도인가? 중증과 경증으로 분리한 서비스 차별은 성골과 진골의 골품제인가? 그림 안태성 ⓒ서인환

장애인 등급은 마치 신라시대 6두품 제도와 같다. 등급이 높아야 하고, 수급자라야 혜택을 받을 자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장애인 중 중증은 성골이고, 경증은 진골이다. 중증의 모임에 경증은 주변인이고, 경증의 모임에 중증은 거북스럽다. 서로 처지가 다르고 수급자격이 다르다.

자신만을 위해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서로 존중하고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최소한의 책임을 제한하기 위한 수단이다. 따라서 평등은 그저 따지기 위한 시비가 되며, 평등은 결국 전쟁을 불러오게 된다.

현재 등급제가 배급의 평등을 논하지만 결국은 전쟁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부부가 서로 평등을 주장하며 매일 말다툼을 하다가 결국 완전한 평등을 위하여 이혼하는 꼴이다.

맞춤형을 잘 하면 개별화 서비스이지만 잘못하면 개인의 삶의 질에 총 맞추는 일이 생긴다. 그림 안태성 ⓒ서인환

현재 정부는 맞춤형 복지를 한다고 한다. 개별화된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으면 개별적인 서비스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처참하게 만들거나 방임을 통한 유기로서 복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도 있다.

맞춤형이 개별적으로 충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총을 쏘아버리는 결과를 만들 수도 있다. 지난 해의 사고 사망 사건들이나 삶을 포기한 자살들이 바로 총 맞은 이들의 삶이 아닐까?

등급제는 즉시 시행 가능하며, 중증과 경증의 간편 분류는 감면혜택 서비스에 적용 가능하지만 등급제의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서비스 전달체계 구축이 등급제 폐지의 전제조건은 결코 아니다.

넷째 서비스 유형인 바우처와 현물서비스는 이미 기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으며, 전문가에 의한 재활서비스는 등급과 무관하게 각 기관에서 판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3년 재활법을 제정하면서 개별화 프로그램을 도입하였고, 직업재활을 중심에 두고 자립을 위한 서비스 구축체계를 법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국립재활연구소와 판정위원회, 지역 재활국이 서로 역할을 분담하여 전달체계를 구축하였고, 재활국은 복지관과 지자체 장애인복지과의 중간결합 형태로 당사자에 의해 운영되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 비해 등급제와 전달체계라는 제도를 기준으로 40여 년이 뒤떨어진 우리는 아직도 방향을 잡지 못하고 끙끙거리고 있다. 그러니 장애인 당사자들은 앞으로 또 얼마나 허송세월을 두고 기다려야 할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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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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