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서울을 가 본지 1년이 되어 간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잘 따져보니 6개월 만이었다. 아마도 활보의 공백 기간과 혼동했던 모양이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뇌성마비 1급을 가진 장애인의 외출은 마치 군인이 실전을 만났을 때처럼 어렵고, 또 설렌다. 물론 그 설렘은 종류가 다른 것이지만.

또 외출을 하려면 삼합(三合)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말이 무엇인고 하니 첫째는, 집안에서 도와주는 가족들의 시간과 여건이 맞아야 하고 둘째는, 외출을 함께 할 상대와도 시간이 맞아야 하며 셋째는, 날씨가 좋아야 한다. 날씨가 춥거나 비나 눈이 온다든지 하면 외출이 쉽지 않다.

혹자는 그런 것 가리지 말고 외출하라지만 절대 유아독존(唯我獨尊)할 수 없는 나이기에 그럴 수가 없다. 이런 이유로 외출이 늦어졌다. 아쉬운 것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사진 첨부도 함께 해서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외출은 목적지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이다. 오랜만의 외출이라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가려는 욕심이 컸다. 그런데 내가 자주 나가지 못하는 영혼이다 보니 생각해 낼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해서 다른 분들의 조언을 많이 받았다.

강남 일대(삼성, 강변 등)부터 인사동, 성대 앞 대학로, 목동, 홍대 입구까지 다양한 자문을 받았는데, 결국 삼성역(코엑스)부터 강남과 강변 코스까지만 돌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사실 목적지를 정하는 것부터 동행인과 말이 많이 오갔는데 이유는 내가 그에게 목적지 정할 기회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내가 전적으로 갈 곳을 정하길 바랐는데 그건 스스로가 주객전도(主客顚倒)가 되는 것을 방지하려함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내가 외출할 수 있음은 동행인의 마음이 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도 본인의 삶이 있고, 그 날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마음으로 도움 주기를 자원했으나 본인이 힘들어지면 회의감이 들게 마련이다.

그 점을 고려해 그에게도 기회를 허락했다. 절대 내가 주체(主體)가 되길 거부했다거나 의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맘을 그에게 전했더니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그는 이렇게 이야기 했다.

“형. 그렇게 사람 사정 다 봐 주면 형이 손해세요. 끝이 없거든요, 형 위주로 사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참 고마웠고, 흐뭇했지만 그는 내 맘을 뼛속 깊이 동의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어쨌든 그런 고마움을 품고 제일 먼저 향한 곳은 강변의 T마트였다.

T마트는 평소 자주 가봤던 곳이라 익숙하다. 내가 살고 있는 분당에는 신분당선이 생겨나고 기존 분당선이 확장되면서 조금 더 복잡해졌지만 향후 몇 년 뒤를 떠올리면 반나절 생활권의 돌입이 꿈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었다.

T마트는 전반적으로 규모도 넓고 신식 건물의 전형이라 이동하기에 그리 나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이 옥의 티였다.

화장실 역시 좁거나 위생적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화장실 내부에 비해 변기에 앉기 위한 공간은 여유가 없었다.

나의 경우 보조인이 변기에 앉혀 주어야 하기 때문에 두 명이 들어 갈 공간이 필요한데, 남자 둘이 들어가기엔 터무니없이 협소했다. 물론 내가 용무가 급했으므로 잡히는 대로 가서 장애인전용 화장실이 아니었지만 그 뒤로 장애인 화장실을 가봐도 그다지 넓은 공간이 아니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청결하고 넓다. T마트의 노력(?)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나 세심한 부분을 좀 더 신경 써 주었으면 금상첨화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아쉬움이 드는 곳이 또 있었는데, 바로 9층의 식당가다. 9층에 가보면 한국인이 즐기는 웬만한 식단은 다 밀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끼니를 해결하기 전, 기다리는 시간을 아껴 하늘공원이란 곳을 가보았다. 이름대로 전망이 아름답고 하늘을 편히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곳 진입구의 언덕이 문제였다. 휠체어로 갈 수 있도록 조치는 해 놓았는데 그 언덕이 결코 낮은 편은 아니라서 나오는데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난다.

휠체어를 밀어 본 경험이 많은 이들에겐 난(難)코스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장애인들이 항상 경험이 풍부한 동행인과 다니지만은 않기에 자칫하면 사고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건물의 미(美)는 외관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이용하기에 용이하도록 하는 것, 그 것이 곧 미(美)의 기준이자 우선이다. 이 점을 건물주나 공사인부들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살짝 아쉬운 점은 있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샅샅이 둘러볼 수 있었단 점에서 좋았던 여행이었던 것 같다.

다음 칼럼에선 예정에 없었던 2차 목적지에 얽힌 에피소드와 함께 찾아올 것을 약속드린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언제나 열정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30대의 철없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주관적인 옳고 그름이 뚜렷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분노하고 바꿔나가기 위해 두 팔 벗고 나선다. 평범한 것과 획일적인 것을 싫어하고 항상 남들과는 다른 발상으로 인생을 살고픈 사람. 가족, 사람들과의 소통, 이동, 글, 게임, 사랑. 이 6가지는 절대 놓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최신 장애 이슈나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장애당사자주의적인 시각과 경험에 비춰 연재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