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은 이미 출마 자체만으로도 권력을 가지고 있다. 출마자는 이미 지역 유지이거나 지역의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시설들은 지역 정책에 의해 부가적 지원금이나 성금배분이 결정된다. 그리고 대선이 있는 겨울철은 동사무소 등에서 난방비나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 지급되는 시기이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가 그 지역에 직접적 영향력은 없을지 몰라도 그 후보를 지지하는 선거운동원이 그러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운동원 중에는 공식 운동원도 있고, 비공식 운동원도 있다.

선거를 할 시기가 되면 장애인 주거시설에서는 직원이 이용자를 대상으로 투표가 무엇인지, 어떤 절차를 통해서 하는지, 누가 출마하였는지, 후보자들의 기호와 이름, 학력과 약력을 설명하게 된다.

어느 시설의 투표를 위한 교육 자료를 구하여 내용을 살펴보았다.

먼저 투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이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투표할 때의 준비물을 알려주고, 절차로는 본인 확인하기, 투표용지 받기, 기표하기, 투표함에 투표용지 넣기에 대해 설명하고, 그 순서를 잘 이해하였는지 다시 확인한다. 그 다음으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을 때 유효표와 무효표에 대해 설명한다.

무효표의 예로 누구를 지지했는지 명확하지 않은 줄 중간에 도장을 찍은 것과 도장을 여러 곳을 찍을 것을 보여준다. 투표할 때에 필요한 것을 잘 숙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졸업장, 망치, 시집, 주민등록증, 이력서 등을 보여주면서 선택하게 한다. 그 다음으로 사진과 함께 후보자의 이름과 기호 등을 보여주었다.

지적장애인에게 투표용지를 보여줄 때에 기호 1번을 찍은 사례를 보여주면 실제로 그 그림대로 1번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각 번호를 찍은 것을 여러 개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교육자료는 그렇지 않았다.

시설에서 이런 설명회를 하기가 귀찮거나 설명을 하여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직원이 대리투표를 하기도 한다. 대리투표는 부재자 신고를 하여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받아 대리로 투표하면 된다.

부정선거의 또 한 가지 방법으로는 시설장이나 직원이 특정 후보를 찍도록 유도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있다. 누구를 찍도록 지시하면 그것이 부정이라는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지적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표현보다는 지시해 주기를 바라고 따르는 것에 익숙하다.

다음으로는 특정 후보의 정보만 제공하는 것이다.

비디오 선거 홍보물을 보여주면서 그 사람의 얼굴을 자주 접하게 하고, 그 사람의 번호를 알려주면 그 번호를 찍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18대 대선에서 장애인시설에서 부정선거를 적발한 것을 진선미 의원실에서 자료를 받아 공개한 것에 의하면, 총 28건 모두 부재자 선거관련이었다.

이 시설들은 모두 요양병원이기 때문에 직접 투표장에 갈 수 없어 부재자선거를 신청하였던 것이다.

이 사건들 중 경고처분을 한 12건은 이용자의 동의없이 부재자 신고서를 작성한 것이다. 투표를 대리하기 전 신고서 작성 단계에서 발각이 되어 경고로 그친 것이다. 그러나 고발조치한 15건은 사회복지사나 총무직원 1인에 의해 부재자 대리신청에 이어 대리투표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원장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대리신청 단계에서 적발되었다면 경고로 그쳤을 것인데, 수사의뢰가 된 1건은 원장의 지시로 직원들이 나누어서 이용자들의 투표권을 대리로 행사한 집단대리사건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처리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요양시설로 등록된 곳은 치매환자나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있으므로 부재자투표를 신청하면 눈여겨보면서 감시를 하다가 부정선거를 적발할 가능성이 높았다. 일종의 표적조사를 한 것이다.

요양시설에서 부재자 신청을 하지 않은 곳에 대하여 이용자의 편의를 제공해 주기 위하여 이용자의 의사를 물어서 대신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 역시 이용자의 권리를 분명 침해한 것이다.

본인의 의사를 묻지 않고 부재자 신청을 하면 부정이고, 묻지도 않고 신청도 하지 않으면 부정이 아니다. 신청을 하고 대리투표를 하면 고발대상이고, 사전에 탄로가 나서 투표까지는 대리로 하지 않았으면 경고가 되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장애인 주거시설을 직접 찾아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부재자 신청을 본인의 의사를 물어 대신해 준다거나, 투표장을 별도로 만들어 투표하게 하는 등의 편의는 없었고, 이용자 중 권리를 행사하도록 지원하거나 권리를 찾도록 서비스를 시설에 요구하는 등의 활동도 없었다.

시설의 투표는 물품 후원이라는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후보자가 직접 물품을 전달하면 후원금이라 하더라도 부정선거가 된다. 그러니 선거철에는 후원금이 줄어든다. 그런 상황에서 후보자가 아닌 차명으로 후원하는 것에는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이사 한 명 정도나 후원자 중에 정치와 관련된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리투표를 통해 가장 확실한 지지표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과 앞으로의 후원관계를 유지하거나 예산 지원을 받을 가능성에 대하여 이를 행동으로 옮길 종사자가 나오기 마련이다.

후보자나 지역 유지, 정치인, 후원자, 운영이사 등이 일종의 부정 교사이고, 직원은 행동대원 역할을 맡게 된다. 부정선거자는 예수를 판 유다처럼 식량고를 위해 희생된 영웅이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요양시설을 중심으로 조사를 하였지만, 장애인 주거시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니 대전의 모 시설의 경우 특정 후보 동영상만을 반복해 보여주고 특정 후보를 찍도록 종사자들이 이용자에게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조사를 보다 구체적으로 하기 위해 2차 조사를 하자, 2차조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설측에서 피조사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했는지 자체 조사를 통하여 상황을 파악하고 입막음을 하여 상당수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진술을 번복하였다.

시설에서의 2차 조사는 대부분 보다 심층적 조사가 아닌 오염되고 왜곡된 조사가 되어버린다. 1차 조사 즉시 신변을 분리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장애인의 대리투표가 인정된다. 대리자는 1인 2표를 행사한다. 그러나 위임장의 작성에 대하여는 위임자의 의사에 의한 것인지 철저하게 감시를 받는다.

우리의 경우 투표에서 위임은 있을 수 없다. 장애인이 직접 투표하여야 한다. 직접선거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대동하여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다. 그런데 신뢰자의 대동이 어디까지이며, 어떤 장애 유형까지 가능한지가 불명확하다.

시각장애인 활동보조인이 동행하여 대리로 투표하면서 본인의 의사와 반하는 투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적 사기이지, 부정선거는 아니라는 것이 프랑스의 해석이다. 굳이 같이 고생할 필요 없이 대리자만 투표장에 오면 되는 것이다.

청각장애인은 기표소까지 대동할 필요가 없고, 지적장애인은 때로는 무효표를 만들지 않기 위하여 대동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동행자가 본인의 의사를 얼마나 존중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미성년자 가족을 대동한 경우 미성년자가 성인의 법적 대리인이 될 수 있는지가 시비가 된다. 특히 유치원 아이를 데리고 가면 말이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기표소에 들어갈 경우 신뢰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이 동행을 하는 것에 대하여 제재하고 투표관리 직원이 대행한다면 비밀선거에 어긋난다. 그런데도 활동보조인의 동행을 부정으로 보고 직원이 대동해 주는 경우도 있다.

일정한 나이가 되기 전에는 투표권이 없으나 나이가 많다고 투표권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투표권은 심신상태로 제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와상이든 혼수상태든 투표권은 있다.

투표에 대한 지적장애인을 위한 동영상과 후보자 정보에 대한 영상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직접 만들어 보급하면 각자 시설에서 객관성이 보장되지 않은 동영상 교육은 막을 수가 있다. 그리고 청각장애인을 위해서는 자막과 수화 동영상도 필요하다.

시설에서의 부정선거는 의사소통이나 표현력이 부족하여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과 후원이나 지원금으로 살아가는 시설로서는 그러한 영향력 있는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렵다는 관계에서 일어난다. 특정 종교와 같이 특정 정당 활동에 줄을 선 시설장이 있는 곳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시설장들은 사회를 위해 봉사한 것으로 하여 국민들에게 이미지가 좋고,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이미 시설족벌화와 시설재벌화로 정치까지 꿈꾸는 자들도 있다.

와상장애인의 부재자투표 신청을 본인의 의사를 물어 지원하는 것은 시설의 몫이 아니라 선관위의 몫이어야 한다. 그러나 투표의 지지 의사는 비밀선거라는 점에서 선관위가 개입하기 어렵다.

장애인 등이 직접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듯이, 직접 본인의 의사를 물어 투표해 줄 사람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그 사람의 지명 역시 장애인 본인의 권리여야 한다. 기표소에서의 대리행위 역시 장애인 본인의 자기결정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지지자 선택도, 기표의 활동보조 행위 대리자 선택도 장애인의 선택권이 되어야 하고, 이것이 보장되어야 선거는 공정한 것이다.

본인의 이러한 권리가 보장되고 감시된다면 프랑스와 같이 대리투표를 해도 좋을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부정선거 감시보다는 모의 선거를 통한 교육이나 정보제공, 선거행위의 지원 등 지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선관위와 국가인권위, 복지부는 장애인의 자기선택권이 제대로 보장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대전의 모 시설에서 발생한 것처럼 상당히 많은 시설에서 부정선거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을까? 부재자 선거의 표적 감시가 아니라 전국의 모든 장애인 시설을 감시 대상으로 했다면 훨씬 많은 부정을 발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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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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