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제는 국가의 복지 제도 요소요소에 들어 있는 제도이다. 일종의 기본틀인 셈이다. 하지만 이 제도의 모순으로 인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예를 들면 어린 나이에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시설에서 생활을 하다가 성인이 되어 시설에서 나와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으며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을 하려고 신청을 했더니 연락도 되지 않는 가족이 전산기록에 나타나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을 하는 경우이다.

가족으로부터 사실상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얼굴조차 모르는 상태지만 단지 호적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권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성인이 되어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별도의 세대를 이루고 사는데, 따라서 실제적으로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하는데, 가족의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에서 탈락을 하는 경우이다.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장애인과 함께 가족을 구성하여 사는 것부터가 상당한 부담을 하고 있으며, 많은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데, 평생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부당하다.

현실적으로 양육과 교육을 받는 아동기나 청년기에는 가족의 부양으로 도움을 받지만 성인이 되면 거의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60세인 장애인에게 90세 노부모가 생존하고, 그 부모의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권에서 탈락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90세 노부모로부터 부양받는 것이 아니며, 부모님 재산만 있을뿐 형제가 많아 그 재산이 장애인 본인의 것이 된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 이 경우 실제적으로는 아무런 경제적 지원도 없는데 수급권에서 제외된다는 것은 모순이다.

지난 19대 총선공약에서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모두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최근 야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한 후보자가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하여 고려해보겠다는 다소 애매한 공약을 밝혔다.

장애인들에게서 부양의무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 의무를 가족에게 전가시킨 것이라고 비판한다. 결국 가족으로부터 부양을 받지 못하는 일부만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정당과 정부 입장에서는 부양의무제가 폐지되면 엄청난 혼란이 오며, 국민의 도덕적 해이가 조장된다고 우려한다. 성인이 되어 가족으로부터 독립만 하면 소득이 없는 사람은 모두 수급자가 될 수 있으므로 일단 수급자격을 얻으려 할 것이고, 일단 수급자가 되면 수급비 외에도 의료급여나 교육급여를 받고 나면 소득을 가지는 활동을 기피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장년이 되어 실업자가 되거나, 조기 퇴직을 하면 재산을 조기에 자녀에게 물려주고 노후 대책으로 수급권을 선택할 것이므로, 모든 노령자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이는 국가 세입 축소와 부담 가중으로 국가 경제의 파탄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하는 정치인들이 있다.

부양의무제로 인하여 억울한 사람들은 심청이를 판 심학규가 눈을 뜨려고 딸을 판 것이 아니라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려면 가족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고 농담을 한다.

가족이 부양을 포기하는 문서를 작성하면 부양의무자에서 부양자가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특례조항이 법에는 있으나, 시설에서 나온 위의 예에서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도 모르는 가족을 찾아가는 것도 어렵거니와, 찾아간다고 해도 문서를 만들어주겠느냐는 것이다.

보완책으로 국가가 수급권 신청자에게 수급비를 지원하고 구상권을 가족에게 행사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가족간의 화목은 깨어질 것이고, 국가에도 구상권 행사로 인한 많은 행정비용과 인력낭비가 뒤따를 것이다.

강제로 부양하게 하는 것이므로 가족의 부담이 부당하다고 본다면 이러한 논의조차 무의미하다.

결국 아무런 해답을 찾지 못하고 부양의무제도를 개선한다면 수급권을 인정하는 기준 소득액을 상향하여 실제로 재산의 가치나 소득으로 작용하지 않는 기본자산의 거주시설로 인하여 수급권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들고 나올 것이다.

현실적으로 상당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소득이 없어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수급권에서 제외된 경우 도움이 될 것이다.

사실 현실에서도 차상위자나 차차상위자 등의 이름을 붙여 유사한 방법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지원하고 있다.

식품비 비중이 낮고 물가가 낮으면서 수급비로 기초 생활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소득활동을 하면 더욱 윤택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라면 노동력 상실 등으로 수급자가 된 사람도 불만이 없을 것이고, 굳이 수급자로 안주하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경제 수준은 이러한 구조가 되기에는 국민소득이 아직은 낮고, 이런 단계에서의 수급권 제도가 발전을 가로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는 위기적 상황이다.

장애인도 월 300만원 소득을 올리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어느 장관에게 건의하자, 그 장관은 월 80만원으로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장관일지라도 300만원을 버는 세상은 만들 수 있어도 80민원으로 잘 사는 사회는 결코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최근 기초생활 수급권자 중에서 8만 명이 자격을 상실했다고 한다. 전산망으로 가족의 재산을 조사하여 부모나 자녀의 재산을 찾았다는 것이다.

탈락자들은 상당히 억울함을 느낄 것이다. 과거 형제의 재산까지 수급자 기준액에 반영하던 것을 이제는 1촌만 보는 등 개선은 하였지만, 부부재산만 보도록 하자는 주장도 거세다.

어떤 경우이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수 있고, 자산을 숨길 수도 있다.

성인이 되면 독립이 당연한 외국문화와 우리의 문화의 차이도 부양의무제 폐지를 방해하고 있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 또는 도덕적해이자로 보는 시각도 문제가 있지만, 실제적으로 그러한 현상은 일어나며, 특히 수급권에서는 엄청난 배가현상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가 없다.

결국 수급권 판단 기준선을 조정하는 선에서만 조정이 가능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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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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