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생활운동의 아버지 Edward V. Roberts (사진 출처: Metropolitan Transportation Commission)ⓒ이광원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다가 사고나 질병 등으로 중도에 중증의 장애를 입게 되는 경우 ‘중증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때문에 삶을 비관하고 자신의 장애를 부정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삶을 끝내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영구적인 장애를 갖는 다는 의미의) 장애인임을 부정하며, 곧 치료를 통해 나을 수 있는 환자로 믿고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더 이상 의료적 접근 방법이 필요치 않게 되었음에도 집이나 사회로 복귀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자신의 ‘장애’가 곧 ‘치료될 수 있을 것’이란 환상 속에 ‘환자’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국가적으로는 건강보험 재정에 과도한 부담을 주게 만들고, 개인적으로도 불필요한 치료나 민간요법 등에 비용과 시간들을 낭비하게 한다.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을 주장하는 자립생활운동(Independent Living Movement)의 리더들은 의료적 모델(medical model)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환자 역할(sick role)’기대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임을 지적하며, 장애의 탈의료화(Demedicalization)를 주장해 왔다.

빌 클링턴과 대화중인 Edward V. Roberts(사진 출처: Metropolitan Transportation Commission)ⓒ이광원

거번 데종(Gerbern DeJong) 박사는 그 ‘환자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한 바 있다.

"‘환자 역할’에는 면제와 의무라는 서로 상관된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환자는 질병의 정도나 특성에 따라, 정상적인 행동과 책임을 면제받는다. 둘째, 환자는 자신의 질병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면제 받는다. 일반적으로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납득시킬 필요가 없으며, 자신의 의지만으로 상태를 호전시키라는 요구도 받지 않는다.

이러한 면제가 주어지는 데는, 다음과 같은 교환조건이 있다. 첫째, 환자는 자신의 상태가 비정상적이며, 바람직하지 못한 것임을 규명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가능한 모든 것을 동원해 자신의 상태를 회복시켜야할 의무가 있다.둘째, 환자는 자질을 갖춘 이의 도움을 찾아나서야 할 의무가 있으며, 상태의 호전을 위해 의사와 협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의료적 모델에 따라 장애인이 ‘환자 역할’을 수용하게 된다면, ‘비정상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자신의 상태를 수용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적으로 ‘환자 역할’의 의존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의존으로부터의 탈피’를 통해 당당히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할 ‘자립생활의 성취’는,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철제호흡보조장치(iron lung)에서 자신의 아들 Lee Roberts와 대화중인 Edward V. Roberts (사진 출처: Metropolitan Transportation Commission)ⓒ이광원

사람들로부터 ‘자립생활’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접할 때가 있다.

학자에 따라 자립생활에 대한 정의가 서로 다르겠지만, 필자는 자립생활을 ‘장애인이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삶의 통제권을 회복하여 역량강화(empowerment)된 상태로 지역사회에서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지닌 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 아주 짧게 말할 때는 ‘의존으로부터의 탈피’라고 답한다. 여기서 말하는 ‘의존’이란 의사나 치료사 등 의료전문가에 대한 의존, 사회복지사나 관청의 복지담당 공무원에 대한 의존, 시설의 직원들에 대한 의존, 부모에 대한 의존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의 경우에는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의존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자립생활의 성취’인 것이다.

한편, ‘중도에 중증의 장애를 입은 환자를 얼마나 빠른 시간 안에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된 장애인으로 거듭나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장애인 개인이나 사회•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선진국들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오고 있다.

중도에 심각한 중증장애를 입는 대표적인 경우가 척수손상 환자들이라 척수손상 문제에 대응하는 재활시스템들을 잘 갖춰 놓은 나라들이 많다.

다음 호부터는 본 칼럼을 통해서 영국, 스위스, 뉴질랜드 등의 선진 사례를 차례대로 소개해보고, 그를 통해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독자들과 같이 생각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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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이광원은 장애인 보조기구를 생산·판매하는 사회적기업 (주)이지무브의 경영본부장과 유엔장애인권리협약 NGO보고서연대의 운영위원을 지냈고, 소외계층 지원을 위해 설립된 (재)행복한재단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 패러다임이 소개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말 한국장애인자립생활연구회 회장 등의 활동을 통하여 초창기에 자립생활을 전파했던 1세대 자립생활 리더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의 초안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사)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 국회 정하균 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한 지체장애 1급의 척수장애인 당사자다. 필자는 칼럼을 통해 장애인당사자가 ‘권한을 가진,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소비자’라는 세계적인 흐름의 관점 아래 우리가 같이 공감하고 토론해야할 얘깃거리를 다뤄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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