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TV나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서 자립생활과 사회활동을 하는 여러 장애 선배들의 생활 모습과 성공 사례들을 통해 감동과 용기, 그리고 어떻게 살아 갈 것인지 자극과 동기를 얻기도 하였다.

그 것은 필자에게 존재의 의미를 찾고 가족을 떠나 자립생활이나 취업을 위해 무엇인가를 배우겠다고 결정할 때,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한 희망을 놓치지 않게 해 준 힘이 되었고,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제시해 주기도 했다.

배움에 대한 갈급함으로 검정고시를 공부할 때도, 연로하신 부모님을 떠나 자립생활 훈련을 할 때도, 장애인 보조기기 개발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재활공학을 전공할 때도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장애 선후배나 동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도전하고 성취해가는 모습들은 필자가 어려움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짧은 글로나마 칼럼을 통해 보조공학기기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자립을 하기 위해 어려움에 부딪힐 동료나 후배들과 공유하고 싶은 바람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필자가 일상생활에서 보다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여러 가지 보조공학기기들을 활용한 경험과 그 밖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다양한 보조공학기기들과 보조공학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나누는 것은 이용자로서, 전공자로서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제 앞으로 일상생활에 있어서 식사, 자세유지, 배변, 씻기, 옷 입고 벗기, 신발, 침구, 도어락, 학습관련 보조기기 등의 다양한 영역별로 필자가 직접 활용하거나 또는 추천할만한 보조기기들과 보조공학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소개하고자 한다.

자립생활훈련의 시작

2007년 무렵, 필자는 집을 떠나 자립생활 훈련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상황은 그 동안 모든 일상생활을 돌보아주셨던 부모님이 연로해져서 더 이상 돌보기 어려웠고, 이 것을 걱정하였던 친척들이 생활시설로 보내자는 제안을 강력하게 하던 때였다.

그 이전에도 친척들이 시설로 보낼 것을 권유해왔지만 부모님은 반대해오다가, 이 무렵에는 부모님이 연로해져서 성인이 다 된 필자를 돌보기가 이미 힘들어진 상태여서 더 이상 이렇다 저렇다 의견을 내놓지 않으셨다.

필자는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생활시설에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자립생활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자립생활을 훈련받아 보겠다는 필자의 말에 가족들은 반대가 심하였고 생활시설에 가기를 권유하였다. 그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필자가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어 한 시라도 누군가가 보살피지 않으면 하루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생활시설에 가는 것이 너무도 싫었던 필자는 혼자서 자립생활훈련 프로그램과 이용시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러 다녔다. 그 결과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훈련과 단기보호를 하는 이용시설을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IL센터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 과정의 웹마스터 교육도 알게 되었다.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상담 받고 좋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전동휠체어로 이동권이 확보되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전동휠체어는 필자의 자립과 이동의 자유에 있어서 중요한 보조기기였고, 필자가 겪었던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필자에게 가장 다행이었던 것은 교육 과정에서 식비와 교통비 명목으로 지급되는 교육 수당으로 이용시설의 월 이용료를 지불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립생활을 시작하는 필자에게 의미가 깊었다. 이용시설의 이용료를 가족들이 부담하지 않고 스스로 지불할 수 있다는 것과 가족들에게 필자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실마리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IL센터에서 직업훈련을 받기 위해 신청서를 내었을 때, 교육 관련 운영위원회에서는 필자의 장애가 컴퓨터 작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필자를 교육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운영위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정될 수 있었던 것은 교육 실무자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신청서를 제출할 때 자립과 직업이 필요한 당시 상황과 교육과정이 절실함을 자기소개서에 써서 첨부하였는데, 이를 본 실무자가 필자를 선정할 것을 요청하였던 것이다.

필자의 장애특성상 사람들과의 대화 과정에서 긴장하여 정확한 발음이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여 컴퓨터로 자기소개서를 미리 작성하였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지난 칼럼에서도 컴퓨터가 장애인들이 자기 표현과 의사 소통을 하는 도구로 사용되므로 컴퓨터 접근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바 있는데, 필자에게 있어서도 컴퓨터는 교육에 참여하고 싶은 희망을 표현하고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자립생활도 식후경

가족을 떠나 자립 훈련을 해야 하고 이용시설에서 다른 사람들과 지내게 되었을 때 가장 염려되었던 것은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벗고, 대소변을 보아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일상생활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가족의 전적인 보살핌을 받으며 집에서만 지내온 필자로서는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신체나 일상생활을 부탁하는 것이 두려웠다. 일상생활을 한 가지라도 더 스스로 하는 것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당당해진다'는 의미는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받아야 되는 부분이 많게 되면 조금이라도 더 도움받기 위해 눈치를 보거나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데, 스스로 하는 것이 많다면 덜 부탁하고 덜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필자가 입소하기로 한 이용시설에서는 의식주와 관련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간이 서너 시간으로 한정되어 있었다. 필자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 먹고, 씻고, 입고 벗고, 대소변, 학습과 외부 활동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18시간에 가까운 케어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집을 떠나야하고 자립생활을 훈련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이 시설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가족을 떠나 자립생활체험 홈에서 지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스스로 밥을 먹는 것이었다. 식사 보조기기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을 찾아보았지만 필자의 장애특성에 맞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찾을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 밥을 먹는 동작은 숟가락을 엄지와 검지, 중지 사이에 쥐고 팔을 뻗어 그릇의 밥을 떠서 손목 회전과 팔을 들어 입까지 가져가는 복합적인 과정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필자의 경우는 손목의 스냅동작(손목 돌리기)이 어렵고 어깨와 팔꿈치 관절에 구축이 있으며, 경직과 뻗침이 있어 기존의 식사 보조기기 중에는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필자에게 도움이 될만한 식사 보조기기들의 장점들을 활용하여 개조해보기로 하였다.

우선 집에서 가족들이 먹여줄 때 사용하였던 볼이 크고 무거운 숟가락을 개조하였다. 숟가락의 볼에서 손잡이의 1/3 부분까지 남기고 자른 후, 잘려진 나머지 손잡이(2/3 부분)를 다시 이어서 납땜하였는데, 이 때 대략 ‘ㅅ'자 모양의 각도로 붙였다. 이는 손목의 스냅동작이 어려운 것을 감안하여 손에 쥐는 손잡이와 입에 위치하는 숟가락의 볼이 이루는 각도를 계산하여 맞춘 것이었다.

다음 편에서는 필자가 사용하는 숟가락과 포크의 개조 과정을 첨부하고, 식사 보조기기의 맞춤 제작이 가능한 보조공학서비스 기관과 실제 장애특성에 맞추어 제작된 식사 보조기기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평호 칼럼리스트
나사렛대학교에서 재활공학을 전공했으며, 보조공학기기 개발 관련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지내오면서 주변의 친구들이나 아는 장애인들이 보조공학기기 관련 정보와 사용하고 있는 보조기구의 관리 요령들을 잘 몰라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며 늘 남의 일 같지 않았다.장애인당사자로서 사용하고 체험한 기기들에 대한 소개와 정보를 공유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