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웠던 몇 해 전 겨울, 출근길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분과 만나게 되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나오는 경우가 많은 출근길이기에 그와 나는 몇 번 마주쳤었던 터였다. 그는 나와 동일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고, 보통은 아무런 보장구 없이 홀로 다녔으나 날씨가 궃은 날에는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그 날도 같은 시간에 마주쳤기에, 두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한 후 버스를 기다렸다. 그 때 그의 어머니가 말을 걸었다.

“오늘 어머니는 안 오셨어요? 총각 어머니도 그렇겠지만 나도 우리 애가 걸어다니는 게 안심이 안돼서 매일 나와요. 한 번 넘어지면 잘 일어나지를 못하니까. 이런 사람들(장애인들) 집안 일이나 회사 갈 때 사람이 도와주는 제도도 있다고 하던데, 그걸 왜 1급만 해주나 몰라. 우리 아들도 그런 사람들 붙여주면 내가 아침마다 나올 일도 없을텐데."

정확한 용어는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도와주는 사람'이란 활동보조인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장애 1급이 되지 않으면 불편한 정도에 관계 없이 신청조차 되지 않는 활동보조인 지원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 말에 조용히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몇몇이 “정말 그런 제도가 있느냐” 고 물어왔고, 1급으로 신청 대상이 제한돼 있다는 말에 “그렇게 불합리하면 고쳐야 하는데 문제가 많다', '이렇게 불편한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서비스다' 등의 말이 오갔다.

사람들은 곧 줄지어 도착하는 버스를 보고 자신이 타야 할 번호를 찾아 뛰어갔고, 나 역시 멀리서 다가오는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둘러야 했지만, 장애인이 아닌 이들이, 활동보조 서비스의 필요성과 한계를 함께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예전에 비해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장애인의 사회적 인프라 개선, 특히 이동권과 관련된 시위를 목격한 비장애인들의 말은 매우 냉정한 것이 사실이다. 장애인들을 위해 사회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데 감사할 줄 모른다고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장애인을 너무 돌아다니게 해서 이것저것 요구사항이 많아졌다고도 한다.

장애인 자녀를 학교 혹은 직장에 보내기 위해 동행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아침에 나가느라 고생한다” 고 말하지, “이러 이러한 부분이 개선되면 나와 우리 아이가 좀 더 쉽게 다닐 수 있을 것” 이라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한다. 이를 지켜보는 비장애인들에게도 “내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말을 할 뿐이다.

매년 졸업 입학 시즌마다 “부모님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졸업했다” 거나, 상급 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들이 등장하게 된다.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는 것은 부모들이 등ㆍ하교를 같이 했다는 뜻이며, 그 과정에서 고생도 많았음을 의미한다.

때로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지하철 역이나, 학교 계단을 힘들게 올라갔을 수 있고,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역에 휠체어 바퀴가 빠져 아찔했던 상황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 중앙차로에서 휠체어를 탄 자녀와 함께 버스를 이용하기 위해 고생했던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노력을 거쳐 좋은 결과를 얻었으니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졸업이나 입학이라는 결과에만 집중하다보니 교내 혹은 사회에서의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더욱 열심히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말하지 않게 되고 만다.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이 세상에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먼저 사회 인프라 확충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만약 그들이 교내의 엘리베이터 설치나 이동권 개선 등의 부탁을 했다면 벌써 상당수 대학교에는 엘리베이터 하나 정도는 설치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보기에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들이 사회에 대해 개선할 점을 이야기하지 않으니 그만큼 더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인식의 발달이 지연되었는지 모른다.

이제 내년부터라도 장애를 딛고 입학이나 졸업에 성공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면 이러 이러한 점이 개선되면 후배들이 더 편하게 학교를 다니고, 사회에도 더 안전하게 진출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 이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편의시설 개선을 가장 간절히 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장애인인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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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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