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밥 다 먹어가는 사람들것도 같이 계산해 주세요."

그녀와 함께 여기 저기를 둘러보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 소리에 식당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 보았으나,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과, 음식을 테이블에 놓고 전화를 하고 있는 사람 이외에 '밥 다 먹어가는'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니까 계산대 앞에 있는 저 사람이 말한 사람은 우리 커풀을 말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저기 갑자기 왜 그러시죠?"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낯선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나는 때마침 비어 있는 물컵을 채운다는 핑계로 급히 자리에서일어나 계산대 앞으로 갔다. 그러나 내가 채 입을 움직이기도 전에, 그녀와 나의 음식값을 이미 계산하고 나가려던 그가, 내 모습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다시 말했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모습을 봤어요.보기 좋은 커플인데, 용기내시라고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 싶었어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받아 주세요"

그가 식당을 나선 이후에도 비어있던 컵에 물을 채워 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1만원이 채 되지 않는 음식값을 대신 내주면서 반말을 하지 않고 나름 배려하려는 모습이었지만, '이런 일은 좀 겪지 않았으면'하고 바랬던 상황 중 하나이기도 했다.

갑자기 접시에 남은 음식들이 보기 싫었다. 기분이 상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나가자. 갑자기 밥 맛이 뚝 덜어진다"

식당을 나서는 데에는 그 한 마디면 충분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간혹 좋고 싫고를 분명하게 말을 할 수 없는 '불편한 인심'을 겪었었다.

혼자서 버스를 타고 다닐 무렵에는 “그 몸으로 버스를 타느라 고생한다“며 버스비를 내려는 내 손을 밀어내는 버스 기사가 있었고, 지하철 매표구에서 원하는 목적지를 애기하고 나면, 돈 대신 사탕을 쥐어주며 무임 승차권을 내주는 직원이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종강파티를 하거나, 선배들과 식사 시간을 갖고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하철 환승 통로를 지나갈 때면, 동료들과 회식 후, 술을 마셨을 법한 회사원이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이 불편한 내 조카가 생각난다” 며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거나 끌어안고 우는 경우를 겪었고, 그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때로는 역무원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은 싫고 좋은 여부를 떠나 홀로 마음 속에 담아두면 되는, 어찌보면 소위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였던데 비해, 불편한 인심으로 데이트 중에 겪게 되는 당혹스러움은 당사자인 나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도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음식값을 대신 지불한 그가 만약 또 다른 식당의 사장이라면, 그래서 다른 비장애인 커풀들에게도 '보기좋은 연인'이라며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누구나 반갑게 받아들일 수 있지만, 어느 한 쪽의 장애가 “보기좋은 커플”의 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들에게, 남자와 여자 중 어느 한 쪽의 장애로 인해 보기 좋은 커플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불편한 인심이 싫은 것은 비장애인들이 흔히 말하는 장애인이 가진 '자격지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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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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