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내가 너에게 안기려고만 해도 피하더라. 도대체 왜 그래?

모처럼만의 데이트였지만, 커피숍에 앉은 우리들의 분위기는 무겁기만 했다. 서로 생활 패턴이 다르기에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가 보고 싶고,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 같이 예쁘게만 보이는 사이지만, 스킨쉽에 있어서 그녀는 내가 안기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가 종종 이용하는 노래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럴까? 내가 싫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럴까?

머릿속으로는 여러 가지 추측이 고개를 들고 있었지만 조용히 그녀의 입만 바라보기를 몇 분, “ 사실은.." 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알고 있던 장애인과 비장애인 커플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가 알고 있던 또 다른 커플은, 한 봉사단체에서 처음 만나, 오빠와 동생 사이로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했다. 휠체어를 탔던 사람이었기에 밖에 나가는 시간보다 주로 남자친구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여느 커플과 다름 없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남자친구가 관계를 요구해 왔고서로가 좋아하기에 무리 없이 스킨쉽이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날 이후, 남자친구가 자신을 만나기만 하면 항상 관계를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연인들 간의 스킨쉽은 서로가 동의하고, 어느 한쪽이 아닌 양쪽 모두 편안한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때로는 상대방의 컨디션이나 기분 상황에 따른 양보도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는 이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요구를 했다는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힘드니까 오늘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에 두고 보자” 고 달래기도 하고, “ 내가 오빠랑 안고 있으려고 만나는 줄 아느냐” 고 화도 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처음에는 “장애 때문에 이성과 신체적 접촉을 해 본 적이 없어서 그렇다” 는 말에 몇 번을 참고 넘어갔지만, 계속되는 요구 앞에서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렀고, 결국만난 지 6개월 만에 여자친구가 결별을 선언하면서, 이들의 사이는 끝이 났다.

자신의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 “ 장애인들은 성에 대한 자제력이 없다” 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그녀는, 내 여자친구가 몸이 불편한 나와 사귄다고 하자, “ 한번 스킨쉽을 하기 시작하면 자제력이 없어 너만 힘들어질 테니, 허락하지 말라“ 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안겨 있는 것도 거부하게 만든 이유였다.

여자친구는 나에게 “ 만약 내가 너와 키스 이상의 스킨쉽을 한다면 참을 수 있느냐” 고물었다. 자신의 컨디션과 기분을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 배려할 수 있느냐는 의미였다.

속으로는 “ 나는 그 사람과 달라”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 동일한 상황을 겪게 되면 참을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 보았다. 쉽지 않은 문제였다.

오랜 고민 끝에 여자친구에게 한 말은 “참을 수 있다” 가 아니라 “ 노력해보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몸이 불편한 이들에게도 비장애인들의 욕구와 동일한 그것이 있다는 것은 장애인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참을 수 있을까?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이 아닌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만큼, 자제력을 가지고 있는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시점인지도 모르겠다. 장애인에게도 욕구가 있다 라는 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몸이 불편해도 자제력이 있다" 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와의 포옹을 거부했던 이유는 이렇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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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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