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지적장애를 가진 중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고등학생들을 법원이 불구속 입건하자, 솜방망이 처벌을 하려는 것 아니냐며 장애인 부모들을 들끓게 하고 있다.

야만 사회에서도 일어나기 어려운 집단적 성폭력 사건이 청소년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가 않으며, 지적 장애를 가진 딸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로서 너무나 개탄스러울 뿐이다. 장애를 가진 딸아이가 조금이라도 귀가 시간이 늦어지면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가 조바심에 시달린다.

작년에는 법원이 지적 장애아동을 수년간 성폭력한 친족들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여 부모들이 공분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에도 지적장애 중학생을 동네 주민들이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고, 심지어 같은 학교 초등학생들이 장애학생을 성폭행한 사건은 모든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큰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지적 장애여성을 강제로 성매매 시키다가 구속되는 사건이 이제 일상적인 뉴스가 되어 버렸다는 데, 한국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느낀다.

자신을 방어하기 어려운 지적 장애, 발달장애 여성들은 너무나도 쉽게 성폭력과 성적 착취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데도 변변한 예방 대책이 없고,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도 권리를 옹호하는 시스템이 취약하다.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간음죄를 규정한 성폭력특례법 6조 조항(신체적,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사람은 형법상 강간 또는 강제추행에서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이 오히려 발달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입증하기 어렵게 만들거나 솜방망이 처벌의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이는 법원이나 경찰이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기는 커녕 ‘항거불능’ 조항을 협소하게 해석하여, 심각한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남성 중심의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항거불능 상태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가 지적 장애를 가진 피해자는 진술의 어려움을 겪는데, 이런 점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 성폭력사건 쟁점 토론회’에 나온 전문가들은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를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범행 의도에 수사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나쁜 관계와 바람직한 관계를 판단하기 어려워하는 지적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무튼 지적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범죄는 더욱 엄중하게 가중 처벌되고 하루 속히 확실한 예방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성적 권리 옹호와 관련해 간과하면 안되는 지점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성폭력 피해 만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와 성 범죄에 놓이기도 쉽다는 사실이다. 발달장애인 가담한 성 범죄나 성매매 범죄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제는 잘 알려지지도 않고 있고,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영화 마라톤에서 초원이 처럼 독특한 취향에 집중하거나 표현이 서툰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성 범죄자로 오해받기 일쑤다. 나아가 발달장애인들 가운데는 성에 대한 인식과 의사능력이 있음에도 자기 욕구에 대한 조절이 취약하여 실제로 성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친밀한 이성 경험 기회가 부족하고 성적 표현에서도 억압받기 쉬운 발달장애인들은 청소년기와 성인기를 거치면서 성적 욕구와 이성에 대한 표현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달 부산에서 에이즈에 감염된 10대 지적장애인 여성이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만난 남성들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은 성폭력 사건보다도 더욱 가슴 아프고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여성장애인 단체나 장애인 부모단체들이 분노하기는 커녕 아무런 입장도 내놓지 못하고 잠잠한 것은 왜 그럴까? 결국 에이즈 감염을 숨기고 성매매를 한 지적 장애인 여성 한 개인에 대한 도덕적 단죄로 모든 문제를 덮어버리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는 아직도 발달장애인들에게 취약한 성적 권리 옹호, 성 범죄와 일탈의 위험, 그들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 그저 쉬쉬하고 지나갈 문제로만 바라보려고 한다. 발달장애인이 당하는 성폭력 범죄와 똑같이 발달장애인이 드러내는 성적 문제에 대해서도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셈이다.

장애인 부모나 특수교사,사회복지사들도 가혹한 도덕의 잣대로 장애인의 성을 억압하려 하거나 무성적인 존재로 차별하여 인간으로서의 욕구마저 억누르게 된다.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성적인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고는 온전히 자립해서 생활한다고 볼 수 없다. 성폭력에 대한 대책 만이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성적 욕구와 성 생활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장애인에 대한 성적 지원서비스가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 이제부터라도 발달장애인의 성 문제를 바로 보고 교육적이고 환경적인 대안에 대해 논의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지만, 먼저 발달장애인들도 이성친구와 사귀고 성적 경험을 할 기회, 결혼할 기회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존중하는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친밀한 관계 경험이나 이성에 대한 경험 등 성적인 자기결정 경험이 없이는 어떠한 교육도 가능하지 않다. 발달장애인도 경험을 통해 성적 표현기술과 옹호기술을 배우고,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면서 애정을 달성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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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중학생 딸을 둔 아버지 활동가입니다. 아이들 돌보고 살림도 챙기는 주부이기도 합니다. 2003년 부모활동가로서 장애인교육권연대,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를 조직하였고, 장애인활동가들과 함께 진보정당 장애인위원회를 건설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애어린이 희망찾기>, 위드뉴스 <새로운 부모운동을 위한 전국순회> 라는 연재 글을 썼고, 2007년 한신대에서 <한국사회 장애인 부모운동 연구> 이라는 논문을 썼습니다. 현재 함께가는서울장애인부모회 정책국장과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서울장애인교육권연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조례운동본부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부모운동과 가족지원, 발달장애인의 자립과 해방에 관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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