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극한 사막 마라톤대회인 사하라 사막(Sahara Race), 고비 사막(Gobi March), 아타카마 사막(Atacama Crossing에 이어 남극도 장애인이 뛰어 넘어 장애인으로서 세계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또 눈을 떴다.

어디가 어딘지 아직 모르겠다.

아직 블리자드 (눈폭풍)가 부는 남극에 있어야 하는데, 춥지도 않다. 숨도 안차다. 살을 에는 돌풍도 불지 않는다.

목숨을 내놓고 달려야 하는 크레바스(빙하 속의 생긴 균열)도 보이지 않는다. 손에도 발에도 동상이 없다.

옆에 있어야 할 도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이곳이 어디일까?

한참을 생각 후에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렇다. 이제 나는 안전한 땅, 축복의 땅, 흙이 있는 곳, 생명의 풀이 있는 곳,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길이 있는 곳에 있는 것이다.

마냥 행복하다. 아아!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던가?

며칠 전 까지 나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만년설로 뒤덮인 남극에 있었다.

제3회 남극마라톤(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고 있었다.

누군가 시켜서 왔다면 백번도 더 포기를 했을 것이다.

뭔가를 생각하겠다고 의미를 두면서 참가했지만 내 머릿속은 조금만 달려도 숨통이 헉헉 막히는 블리자드(눈 폭풍)와 크레바스(빙하 속의 생긴 균열)와 싸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발목을 집어 삼킬 듯 한 날카롭고 뾰족한 빙하조각과 살을 에는 돌풍을 떠올리면 생각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것 같았다.

괜히 극지를 왔나보다.

악마의 발톱으로 변한 쇠조각 같은 빙하조각 길과 상어의 이빨로 변한 만년설은 내 발바닥을 꿰뚫고, 내 발목을 집어 삼킬 태세다.

온도계를 쳐다본다. 차라리 모르면 더욱 좋았을 것을! 온도는 섭씨 영하 30도를 가리켰다. 이런 곳을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안내한 도우미와 머리 깊숙이 새겨진 가족과 친구, 지인들의 이미지도 에너지가 되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바람 한 점, 눈송이 한 점 피할 수 없고, 두 다리를 금방이라도 집어 삼킬 것 같은 만년설과 신발을 금방이라도 뚫어버릴 것 같은 날카로운 빙하조각 그리고 살을 에는 매서운 돌풍뿐인 남극에서 가족을 떠올리니 눈물은 어찌 그리 펑펑 흐르던지.

옆에 있는 도우미 모르도록 소리를 죽이고 머리로 마음으로 내내 눈물을 흘렸다.

온 몸이 얼어버릴 극지에서의 눈물은 따끈한 물을 마시는 것처럼 몸 전체를 따끈하게 하는 청량제 같은 작용을 해주었다.

매서운 눈폭풍이 들어가지 말라고 만들어진 고글은 나의 눈물을 가두어서 얼음덩이를 만들었다. 가끔 고글을 들면 '툭' 하고 얼음눈물덩이가 떨어진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 보다 가슴으로 느끼고 그 동안 조금이나 잘못 살았던 삶을 반성해 본다. 특별한 것이 아니고 평범한 것이었다. 가족들 부모님, 친구와 지인들 등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면 잘 해주어야지 하고 다짐을 해본다.

멍한 순간이다. 도우미 배낭과 내 손목에 매어 있던 1m 짜리 생명줄이 갑자기 당겨진다. 헉! 쓰러진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딱 10분만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엉덩이가 너무 차갑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용수철처럼 하늘로 튀어 오른다.

지옥의 코스 롱데이 첫 관문인 가파른 빙하조각 길은 가는 내내 '내 몸에 숨통이 왜 존재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입속서 나오는 열기가 고철덩이마저 녹여버릴 기세다.

송곳보다 뾰쪽하고 톱니보다 날카로운 빙하조각길을 한 발 한 발 내디딜때마다 머리가 쭈뼛 서고 발목이 후들거려 숨통이 터질 지경이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포기냐? 강행이냐? 현기증이 돈다.

순간 나를 인도하는 도우미와 가족생각이 혼미한 뇌리를 스친다. "송 선생님! 아빠! 여보! 힘내세요!" 하는 소리가 고막을 강하게 때린다.

정신이 든다. 재빨리 배낭을 벗고 귀중한 생명수를 꺼내어 마신다.

"아! 차가운 액·고체덩이다. 몇 초 지나야 차가움이 미지근함으로 바뀐다.

커피를 그냥 넣어서 흔들면 냉커피로 바로 마실 수 있고, 설탕물을 그냥 넣어두면 아이스 바로 먹을 수 있고, 팥빙수로 먹을 수 있는 온도로 물이 얼어 있었다.

최대한 줄이고 줄인 비상식량과 고기능성 장비와 생활용품이 들어있는 배낭의 무게는 자그마치 10.5kg이다. 어깨는 이미 피멍이 들어 쓰리다.

‘필생즉사요, 필사즉생이라’는 이순신 장군의 말이 생각났다. 살기 위해 귀한 비상식량 3분의 1을 눈물을 흘리며 과감히 버렸다. 새털처럼 가벼웠다.

신발 속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냉동 창고다. 손과 발은 이미 내 것이 아니다.

발가락도, 손가락도 만년설과 날카로운 빙하조각에 노출되어 엉망이다.

꼭 어릴 때 할머니가 챙겨 주시던 광주리의 홍시감처럼 변했다.

나의 손과 발은 물렁거리는 순서대로 터지고 있었다. 구멍 난 자전거 튜브처럼 여기저기 실로 꿰매고 밴드로 땜질하였다. 동상에 걸려 탱탱 부은 곳은 칼집내 죽은피를 뽑아냈다.

설상가상으로 눈밭에 빠져 오른쪽무릎이 접지되어 탈이 났다.

40 도의 가파른 빙하를 절룩거리며 올라가는데 한기를 느꼈다.

사방은 온통 만년설로 뒤덮여 앉아 쉴만한 공간도 없다. 애처롭게 가야하는 이유는 뭘까?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는 배낭서 침낭을 꺼내 몸에 뒤집어 썼다.

굶주린 배는 눈을 퍼 먹어 허기를 채웠다.

이렇게 까지 하면서 가는 의미가 무엇일까? 과연 마지막 날까지 버틸 수 있을까?

'빅터프랭클' 의 '죽음의 수용소'가 생각난다.

새벽이 두렵다. 오늘도 얼마의 고문을 나 자신에게 시켜야 될지? 오늘은 악마의 발톱 빙하조각이 얼마나 나의 살을 도려낼지? 칼바람이 얼마나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버릴지.

밤에는 지축을 뒤흔드는 돌풍이 얼마나 잠을 설치게 할지?

아무튼 확실한건 이것들은 나의 힘과 의지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극한상황이다. 더듬거리며 아침밥을 입에 억지로 밀어 넣고, UN에서 파견 나온 환경감시원과 주자들 눈치 봐 가며 생리현상 해결하고 그날 필요한 식량 및 장비를 점검하고 복장착용하기도 왜 그리 바쁜지?

나는 삶에서 누구를 광명의 세계로 인도 하였는가? 누가 바른 길로 가도록 고무시켰는가?

나로 인하여 올바른 삶을 살도록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다시 한번 자신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최소한 2000kcal 이상의 영양이 공급 되야 한다. 그러나 혹한과 뱃멀미에 식욕마저 떨어진 상태에서 허기를 만년설을 씹어 먹으며 배고픔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아내는 "왜, 고생을 사서하느냐." 여자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후회가 된다.

많은 갈등과 아픔과 희열 속에서 피오줌이 나왔다.

그래도 시간은 간다고 위로해 본다. 밤하늘은 별이 쏟아질 것 같이 선명하다. 솜털처럼 푹신한 눈밭에

누워 그대로 잠들고 싶다. 문화관광부 2008년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된 '삼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 내 처녀시집 제판이 기다리고 있을 그곳으로…….

레이스 마지막날이다. 희비가 엇갈리기 시작한다. "오늘이 끝" 이라는 생각은 이미 육체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다.

이내 세계에서 가장 추운 사막, 만년설로 뒤덮인 남극을 두발로 넘어 완주 메달과 그랜드슬램 메달을 목에 걸었다.

장애인이 세계최초로 세계 4 대 극한 사막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것이다.

나는 드디어 해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핑 돈다. 이제 삶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죽음의 문턱이 삶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푸른 들과 산을 가진 조국에게 감사한다.

다시 새로운 삶, 더 정직한 삶, 더 친절한 삶, 더 성실하고 약속도 잘 지키고, 아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삶을 살자고 다짐해 본다.

힘든 고통과 어려움이 많을수록 완주후의 성취감이나 도전하는 의미가 그 만큼 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좋은 기회였다.

끝까지 불평 없이 안내해준 도우미 유지성 팀장님과 부산 문화방송 최병한 차장님, 박태규 기자님, 열심히 응원해준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지인들에게 감사드린다.

*이 글은 2009년 1월 7일 남극마라톤을 다녀와서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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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태씨는 군복무중이던 22살 때 수류탄 폭발사고로 두 눈을 실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꾸준히 장애인계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전북시각장애인도서관장이자 전북 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 4대 극한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마라토너이자 '삼 일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라는 시집을 낸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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