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이 나를 향해 일방통행을 시작하다. ⓒ정오윤

온통 푸른빛으로 세상이 상큼하게 물들어 가는 계절로 들어서고 별반 다를 거 없이 하루에 일과는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지나가던 어느 날 강원도에 사는 그 분과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친해질 때쯤 그 분에게 일이 생겼다.

집안에 일이 생기면 혼자 웬만한 일처리는 다 하실 정도로 잘하시는데 장애가 있다 보니 손수 일처리를 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들이 있었다. 형은 중환자실에서 차도도 없이 있고 혼자만 가슴앓이 하듯 그렇게 마음 아파 하다가 내게 속 이야기를 내비쳤고 난 그저 들어주고 작은 위로밖에는 한 것이 없었는데 그것이 그 분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나보다.

살다보면 혼자만 짊어지기엔 너무도 힘겨운 일들이 누구나 있는데 장애인인 경우에는 특히나 마음대로 나가 해결하지 못하니 그 맘이 오죽 답답하겠는가. 그럴 때 장애라는 것이 더 큰 벽이 되어 다가오고 절망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데 그걸 내놓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한 경우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똑 떨어지는 명쾌한 해답은 못 얻었다 하더라도 담아둔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거…. 그래서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며 속에 담긴 것들을 마음껏 풀어놓아야 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힘든 시간을 나누었다는 것 때문이었을까? 어느새 그 분은 한 두 줄이면 이야기가 끝나버리던 처음 소심쟁이 노총각 모습은 사라졌고 조금씩 수다쟁이 아저씨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ㅎㅎ 조금만 앉아있어도 힘겨워 30분이면 침대로 가서 누워야겠다던 사람이 한 시간이 되어도 자리를 뜰 생각을 안 하고 이야기를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오래 앉아 계신 거 같은데 힘드시지 않으세요?”

“아! 네, 괜찮은데요. 그러고 보니 오늘 오래 있었네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힘든 줄도 모르고 한 두 시간이 후다닥 도망가 버리고 내가 알기론 오래 앉아 있으면 엉덩이에 욕창이 생겨 고생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나 걱정이 되어 전화로 괜찮으신지 물어보니 다행히 괜찮다고 하고 이전에 전화상의 목소리보단 좀 부드러워 지셨다. ㅎㅎ

조금씩 조금씩 이야기의 횟수도 늘고 시간도 길어지면서 나 역시도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도 손도 고관절도 많이 아팠는데 그런 증상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니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무래도 힘들다는 것을 잊게 되고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점점 몸이 그 시간만큼 적응을 해나가는 모양이다. 그 분은 나로 인해 더 많이 웃게 되었다고 고맙다고 했고 난 그 분 때문에 웃다보니 나 역시 고마웠다.

얼마 후 카페 번개를 그 곳에서 하는데 날 보고 매일 집안에만 있으면 답답하니 그냥 여행 삼아 놀러오라고 말을 꺼내셨다. 같은 중년 소모임에 가입한 사람이 아니기에 그곳에 모인 분들이 불편하게 생각할거 같고 도저히 그 먼 곳까지 갈 자신이 없어 미안하단 말로 마무리를 했고 그 분은 언제고 바람 쏘일 일 있으면 마음 놓고 오라고 숙식 제공할 테니 걱정 말고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엄마도 계시니 염려 말라고 그러시는데 정말 순수한 마음이 느껴졌고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그렇게 어느새 좋은 친구처럼 일상이 되어 갈 무렵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 분이 보내온 메시지에 ‘사랑합니다’란 단어가 뜬금없이 떡하니 올려져 내게로 날라 왔다.

‘이게 뭐야?’ 순간 난 얼음이 되어 누군가 얼음 땡~하고 풀어주지 않고는 풀리지 않을 거 같이 얼어버렸다.

갑자기 머릿속이 이생각저생각 가득 거품처럼 뽀글뽀글 올라와 하얗게 되어버렸고 내 심장은 쿵하고 책상 밑으로 데구루루 떨어져버리고 이건, 이건 아닌데 어쩌지, 어떻게 어떻게 하냐고 난 이럴 생각이 아닌데 그냥 끄고 나갈까 그럼 이 사람이 다칠 거 같고 어떻게 해야 가장 맘 안상하고 잘 마무리를 하지하는 그때,

“거기 없어요? 어디 갔어요?” 하고는 메시지가 왔다.

“아, 아…, 아니요. 있어요.”

“근데 왜 조용해요?”

“아, 그냥 저 저기요?”

“네, 아 놀랬군요. 사부님 사랑한다고요.”

“어머! 정말 아~, 참나 놀랬잖아요. 짓궂으세요. 장난치시고.”

“그럼 정말이면요?”

“에? 아! 아니에요. 하하하! 그러지 마세요.”

“하하! 농담입니다.”

휴~쿵하고 떨어졌던 내 심장을 다시 주워 넣고는 에구 참 나도 순진하네 하면서 코웃음을 치며 다시 일상의 이야기로 아무렇지 않게 돌아왔는데 정말 그게 농담이었을까? 왠지 모를 글자 속에 마음이 묻어 온 것만 같아 불안해졌다. 누군가와 글로든 소리로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것은 어쩜 마음도 한 조각씩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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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타인의 가스 폭발 사고로 인해 장애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선물 받고 다른 사람들보다 이름표 하나 더 가진 욕심 많은 사람. 장애인이 된 후 고통이라는 시간을 지나오면서 불평이나 원망보다 감사라는 단어를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여자. 얼굴부터 온 몸에 58%의 중증 화상에 흉터들을 하나도 감추지 않고 용감하게 내놓고 다니는 강도가 만나면 도망 갈 무서운 여자. 오프라인 상에서 장애인들을 만난다는 것이 어려워 온라인상의 장애인 카페를 통해서 글을 올리면서부터 다른 장애인들과 소통을 하게 되었고 그들의 삶이 사소한 나의 글 하나에도 웃는 것이 좋아 글 쓰는 것이 취미가 된 행복한 여자입니다. 제가 내세울 학력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으로 살아온 6년이 가장 소중한 배움에 시간이었고 그 기간 동안에 믿음과 감사와 사랑이 제게 큰 재산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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