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의 낙태는 장애인의 삶을 부정하는 것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에 일명 ‘장애아 낙태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당시 많은 장애인단체들이 “장애를 낙태 사유로 인정하는 것은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물론 이명박 당시 대통령후보야 평소 거동으로 보아 장애인의 인권과 그 존재가치에 대해 심사숙고해본 적이 아마도 없는 것 같으니 그 발언은 그의 평소 태도를 드러낸 것일 거다. 하지만 그의 태도와 인식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그때 장애인계에서 나왔던 반론 자체는 성찰해볼 가치가 있다.

먼저 언급해두어야 할 것은, 나는 기본적으로 낙태를 합법화하는 것에 찬성한다는 점이다. 태아가 잠재적인 인간이라 낙태하는 것은 살인이라는 주장은 사실 따져보면 넌센스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자위행위를 하며 버린 수 억 마리의 정자는 수 억 명의 미래 인간들이 아닌가?(실제 정자와 수정란의 존재론적 지위는 별다르지 않다) 설사 이미 수정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추었다고 해도 아직 아무런 자의식이 없어 고통조차 못 느끼는 태아의 권리가, 불가피하게 낙태를 선택해야할 여성의 현실적인 상황과 그에 대한 권리보다 앞선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따라서 적어도 태아가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고, 낙태시 여성의 몸에도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낙태를 반대해야할 절실한 이유는 없다.

어쨌든, 그래서 낙태를 용인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는데, 그럼에도 지금은 낙태를 불법화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장애아의 경우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있기 때문에, 이 사실 자체가 장애인들에게 장애란 ‘명백히 제거해야할 요소’란 것을 국가가 용인한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니 장애인의 입장에서 당장 ‘발끈’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장애아를 낙태하는 것은 현재 장애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란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태아의 생물학적 변이와 장애는 다른 개념

현재를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많은 사람들과의 유의미한 관계, 그리고 지금까지 삶을 이끌어온 각종 기억, 추억, 경험들의 총체이다.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개체가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사회의 시간과 공간의 관계망 속에서 형성된 총체적인 존재다. 이런 존재인 우리가 의미 있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온 고유한 역사와 관계들 때문이다. 이 시점까지 오는데 우리의 장애는 단지 ‘불편한’ 어떤 결핍상태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하나였고, 이 장애와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하면서 우리 삶의 모습은 펼쳐졌다. 그러므로 장애는 한 사람의 정체성 그 자체이며, 부정할 수 없는 존재의 일부분이다. 나 역시도 만약 장애가 없이 27년을 살아왔다면 지금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장애를 부정하는 것은 현재 그 사람의 존재 일부분을 부정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 태아에게 예상되는 생물학적 변이를 제거하는 것은 현시점을 살고 있는 총체적 존재인 한 인간의 장애를 부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태아가 생물학적으로 일정한 ‘변이’를 갖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은 그저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담이나 어려움을 예측케 하는 요소일 뿐이다. 그러한 변이를 가진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삶을 지속하고, 그렇게 성장하면서 그 아이의 일부가 되기 전까지, 그것은 아직 ‘장애’가 아닌 생물학적 ‘사실’일 뿐인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장애는 단순한 생물학적 손상이나 변이가 아닌, 세계에서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가는 한 인간의 정체성이다.

따라서 우리가 낙태를 용인한다는 것은 그 태아가 아직 고통과 자의식을 갖지 않은 세포의 결합체에 불과하며, 따라서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여러 가지 부담이나 부모의 상황 등을 존중하는 것이 그 세포체를 지키는 것 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특정한 생물학적 변이가 명백히 양육자에게 예측될 수 있는 부담이며 그 태아가 한 인간으로 성장할 때 고통을 가중시킬 개연성 있는 요인이 분명하다면, 그것을 낙태사유로 삼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특정한 변이를 갖게 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그 아이의 미래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확률적으로 그것이 가져다줄 건강상의 위험이나 삶의 어려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그것을 부정하는 것 또한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언급해두어야겠다.

당연히 더 바람직한 상황은 어떤 생물학적 상태를 가지고 태어나든 그 아이를 풍부한 환경에서 양육하고 사랑받으며 커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후보를 비롯한 권력층이 장애아의 낙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다양한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무책임을 표현하는 것 뿐임도 알고 있다(사실 이들에게 그런 발언을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일단 우리는 특정한 생물학적 ‘변이’가 많은 불편함과 고통을 유발시킬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낙태를 허용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태아의 상태를 낙태의 조건으로 삼는 것에 그렇게 까지 울분을 토할 일은 없다. 장애와 생물학적 변이는 다른 것이며 사회적으로 총체적인 의미를 부여받은 유일무이한 인간과, 태어나기 전의 세포체에 불과한 태아의 지위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MB님은 이런 고려 하에 하신 말씀이 아닐테니 그 당시에 욕먹은 것을 두둔할 마음은 전혀 없다.

20대 후반의 지체장애인. 태어나서부터 10여 년간 병원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검정고시, 특수학교 중학부, 일반고교를 거쳐 2003년 대학에 진학해 사회학을 전공했고, 2009년부터 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우주와 관련한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생물학 서적, 연극, 드라마, 소설 등을 좋아한다. 스스로 섹시한 장애인이라고 공언하고 다니지만 가난하고 까칠한 성격에 별 볼일 없는 외모로 연애시장에서 잘 안 팔린다. 신이나 사람, 어떤 신념에 의존하기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자 노력중이다. 직설적이고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화법을 종종 구사해 주변에서 원성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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