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의 들녁은 사과로 가득하다. ⓒ정재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 적막하기 그지없는 깊은 주왕산 뒷켠에 위치한 주산지는 영화‘봄여름 가을겨울, 그리고 봄’에서 나오는 천진한 동자승마냥 신기함이 깃든 산속의 보물 같은 연못이다.

늦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소개되기도 하여 마치 가을의 전령사처럼 가을 풍경을 대표하며 우리의 시선을 붙잡는 곳이기도 하다.

고속도로, 국도를 번갈아 가며 5시간 남짓 도착한 경상북도 청송군에 도착했다. 가을은 이제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그 빛을 발하고 있었고 조그만 시골동네 같은 청송군의 들녘은 붉고 탐스런 사과나무로 알차게 무르익고 있었다.

주왕산에 올라가는길. ⓒ정재은

왕산 계곡을 지나치며구불구불 비포장도로를 달려 주산지로 향했다. 주산지는 조선 숙종(1721년) 때 완공, 제방길이 100m에 둘레 1Km로 학교운동장 크기에 불과한 조그마한 인공 저수지이지만 300년 연륜이 느껴질 만큼 태고적인 깊이를 자랑한다. 저수지를 만든 목적은 물론 농사를 짓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허나 이곳 주산지는 아무리 가물어도 단 한번도 바닥까지 물이 마른 적이 없다고 하니 선조들 의 지혜가 엿보이기도 한다.

주산지 입구는 그저 평범한 저수지에 지나지 않았다. ⓒ정재은

원래 이 곳 주산지는 사진작가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진 장소였지만, 앞서 말한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단번에 유명관광지가 되어 버렸다.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올라간 저수지는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하다.

세월의 무게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버들과 전경. ⓒ정재은

주변 산책로를 따라 가는 길에 보이는 왕버들의 자태와 가을 정취는 신비할 정도로 환상에 가깝다 호수에 제 몸을 비비꼬으며 담그고 있는 왕버들은 수 백년의 세월을 물과 산을 벗 삼으며 살아왔을 것인데 저수지 속에 자생하는 약 150년생 능수버들과 왕버들 20여수는 울창한 수림과 함께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이 곳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별바위까지 이르는 등산로도 매우 운치 있는 경관을 자랑한다.

아기자기한 산새와 울긋 불긋 단풍은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에 또 다른 빛을 자아내고 그 위에 흐르는 미묘한 상념(想念)은 깊어가는 가을날의 정취를 가득 담아내고 있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계절의 순환에 따라서 생로병사가 이루어지는 삶의 순환을 아름답게 그린 영화이다. ⓒLJ필름

특히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라는 영화가 촬영되어 현실세계가 아닌듯한 아름다운 '주산지'로서 각광받고 있다. 이 영화덕분에 이제는 여기저기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 올만큼 유명한 여행지가 되었다.

혹자들은 주산지를 두고 이름만 있지, 가면 별로 볼게 없다는 불평을 하기도 한다. 실로 사람들의 입을 타고 손을 타면서 약간은 신선함이 떨어진 면도 없지는 않지만, 태고적인 자연의 신비로움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오래도록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지사에 재직 중이다. 틈틈이 다녀오는 여행을 통해 공단 월간지인 장애인과 일터에 ‘함께 떠나는 여행’ 코너를 7년여 동안 연재해 왔다. 여행은 그 자체를 즐기는 아름답고 역동적인 심리활동이다. 여행을 통해서 아름답고 새로운 것들을 만난다는 설렘과 우리네 산하의 아름다움을 접하는 기쁨을 갖는다. 특히 자연은 심미적(審美的) 효과뿐 아니라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도 정화시켜 주는 심미적(心美的) 혜택을 주고 있다. 덕분에 난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장애라는 것을 잠시 접고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받아온 자연의 많은 혜택과 우리네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함께 나누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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