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유전자 정치' 책 표지.ⓒ그린비출판사

노들장애학궁리소 김도현 연구활동가의 네 번째 번역서 ‘장애와 유전자 정치’가 최근 출간됐다.

표지는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지만, 내용은 매우 강렬하고 날카롭다.

김도현 활동가가 앞서 번역한 책들이 장애학 연구의 기본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이론서의 성격이 좀 더 강했다면, 이 책은 대중적으로 함께 읽고 토론하기 위해 번역한 책이기도 하다.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법은 부재한 상태면서 사전 판별을 권유하는 것은 무엇을 암시하는가? '맞춤 아기' 등의 '더 나은 육종'을 위한 기술은 장애인을 어떤 사회적 위치에 점찍을 것인가?

'장애'가 그저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유전자' 탓인가? 이 모든 성찰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유전자 정치’라는 개념 아래 장애와 우생학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여러 장점과 미덕을 지닌다. 우선 국제적 우생학 연구의 풍부한 성과와 문헌들을 바탕으로 영국, 미국, 독일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북유럽의 우생학까지도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정리해 내고 있다.

예컨대 스웨덴은 1922년 전 세계 최초의 국립 우생학 연구기관인 국가인종생물학연구소를 설립한 나라였고, 1935년 단종법 제정 이후 1975년까지 약 6만 3000건의 단종수술이 이루어졌다.

이는 미국에서 1907년부터 1974년까지 시행된 6만 5000건과 맞먹는 수치로, 나치 독일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인구당 가장 많은 단종수술이 이루어진 나라가 스웨덴이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의 이 같은 우생학 역사가 이 책의 전반부를 구성한다.

7장 이후의 후반부에서는 20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한 인간게놈학(human genomic)의 성장과 그 영향을 고찰하고 있다. 게놈학은 흔히 ‘유전 암호’라고 불리는, 게놈의 염기서열과 그 특징을 밝혀내는 작업을 기본으로 한다.

진단 검사나 대규모의 선별 검사 프로그램을 통해 질병과 연관된 유전자를 발견하는 작업이 핵심이지만, 유전자 치료 및 약물 치료의 발전 또한 큰 중요성을 갖는다. 저자들은 이러한 발전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사회적 결과, 그리고 그런 발전이 수반하는 유전학, 장애, 질병에 대한 문화적 이해 및 표상을 고찰하면서 매우 통찰적인 논의들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우생학 시대에 어떤 실천이 필요한가? 저자들은 결론에서 유전 정보에 근거한 차별 및 프라이버시와 관련해 좀 더 강력하고 효과적인 규제를 제창하고 경미한 유전질환이나 행동 형질에 대한 산전 검사의 개발을 중단하고, 그와 관련된 정보가 간접적으로 입수 가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그냥 무시하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윤리적으로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우리는 장애가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가 될 때 어느새 우생학자가 되어 버리곤 한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될 것임을 미리 알아 버렸다면, 우리 소위 정상인들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장애인을 안 보이게 할 수 있다면….

데이터 활용에 대한 법과 규제, 윤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그 답을 계속 찾아 나가야 할 것이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이 책 읽기를 권한다.

<앤 커‧톰 셰익스피어 지음, 김도현 옮김, 480쪽, 2만8000원, 그린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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