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책 표지.ⓒ출판사

세상에는 수없이 많고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젊은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나이, 계급, 국적,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나아가 성소수자들의 사랑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에 속해 있으면서도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었던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性)과 사랑 이야기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인데, 마치 그 손상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까지 제거되었다는 듯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타이완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와 특수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 전방위적인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신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저절로 자위를 알더라고요. 가르쳐준 사람이 없는데도 할 줄 알았어요.” _ 황리야(지적장애인 위위의 어머니, 사랑과 연애 교육 전문가)

“사회복지사는 최선을 다해 도울 뿐, 주제넘게 나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서는 안 돼요. 세상의 일반적인 가치관으로 볼 때 두 사람을 가장 부모다운 부모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 그들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절대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부모죠!” _ 류쥔웨이(지적장애인 부부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저에게 사랑은 신앙과 같아요. 몸을 던져 사회운동을 하는 것도 사랑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죠. 사랑이 없으면 장애 없는 환경이 갖추어진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사랑이 없으면 완벽한 평생 돌봄 시스템이 갖추어진다 한들 또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_ 샤오치(루게릭병으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사회운동가)

“두 번째 남자친구도 지체장애인이었어요. 그 사람과 성관계를 하려면 얼마나 번거로운지 아세요? 모든 지지대를 다 풀기까지 기다리는 데만 엄청 오래 걸려요, 하하하!” _ 후이치(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여성)

“진짜 안타까워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동성애자 그룹에 합류했어요. 아름다운 육체를 누군가에게 선보일 기회를 갖지 못했잖아요. 저 자신에게 정말 미안해요. 젊고 팔팔할 때의 몸은 정말이지 자랑스럽잖아요!” _ 황즈젠(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 남성, 성소수자)

이 책에는 다양한 신체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꺼내는 용기와 짜릿한 교감의 순간,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과 슬픔, 신체의 손상에서 오는 한계와 도전이 숨김없이 그려져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러 유형과 정도의 장애인들은 저마다 자기 신체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사랑을 펼쳐 나간다.

장애인과 장애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은 왜 늘 유난스러운 주목을 감당해야 하는가?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나 활동지원인, 돌봄 노동자는 사생활의 어디까지 관여해야 하는가? 적극적으로 피임이나 낙태를 권해야 하는가? 혹은 성생활을 돕는 일까지 해야 하는가?

중증 장애인에게 국가나 민간에서 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꼭 필요한 복지인가? 오히려 장애인을 예외로 두는 차별적 시선인가? 왜 그 이용자는 거의 언제나 남성인가? 장애인 성소수자의 존재는 왜 언급조차 되지 않는가?

휠체어를 타지만 자기 몸에 맞게 엄마 역할을 익혀가는 샤오위, 지적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비난에 맞서 싸우는 린후이팡, 수년에 걸쳐 지적장애인 커플의 연애, 결혼, 출산을 지원해온 사회복지사 류쥔웨이, 타이완 최초로 성 자원봉사 단체를 설립한 지체장애인이자 성소수자인 황즈젠, 성 자원봉사를 이용한 뒤 자기 비하에서 벗어나 새 인생을 시작한 스티븐 등 각각의 사례는 독자를 인간의 신체가 던지는 첨예한 질문 앞으로 데려간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이제 사랑을 말할 때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 천자오루, 역자 강영희, 출판사 사계절, 페이지 324, 가격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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