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이 단식 14일 만에 건강악화로 단식농성을 중단했다. ⓒ에이블뉴스

"오늘로 저는 행동을 접으려 합니다. 무엇보다 주위 분들과 장애인 동지들의 수고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단식하는 상태에서 집회하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혹여 농아인 형제들이 화난 마음에 과격한 행동으로 다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장애감수성이 있는 장애인당사자로 한국장애인개발원장을 선출해야한다며 단식농성을 벌여온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이 건강 악화로 14일 만에 단식농성을 접었다.

변 회장은 14일 오전 11시 자신이 단식농성을 벌여온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일단 단식의 행동은 접으나 투쟁을 접는 것은 아니다"면서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차별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저의 의지는 하나도 변한 게 없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준비해온 회견문을 발표하고 곧 바로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다. 기력이 소진돼 A4 석 장 분량의 회견문의 대부분은 농아인협회 사무처장이 대신 읽었으며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못했다.

변 회장은 회견문에서 "말 못하는 제가 단식의 방식으로 말하려 한 것을 복지부 공무원들과 장애인개발원의 이사들은 헤아려 주시길 바란다"며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거두어 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애초부터 장애인이 주요기관의 대표 자리를 맡는 것은 버거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편견입니다. 장애인이 공무원 출신보다 능력이 없을 거라는 편견은 차별입니다. 더욱이 공정한 경쟁이 아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지망한 장애인들을 들러리로 만든 복지부의 외압도 차별을 조장한 것입니다.

정당한 편의만 제공된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능력을 보일 기회를 원합니다. 개발원장으로서 주요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생물학적 장애가 아니라 자격 있는 장애인인지 편견 없이 살펴봐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개발원장에 응모한 분들은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변 회장은 15일로 예정되어 있었던 한국장애인개발원의 복지부 부당인사압력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측의 집회에 대해 접어달라는 부탁도 내놓았다.

"저 하나가 단식을 접는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더 큰 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또 온 몸으로 저항할 것입니다. 내일로 예정된 비대위의 집회도 일단은 접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저도 회복하고 앞장서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는 개발원 이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없는 결정을 기대하며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변 회장이 단식을 중단함에 따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농아인협회 등의 임원들의 지지 단식도 모두 중단됐다. 단식농성장 자리는 비대위 인사들이 번갈아가며 농성을 이어가기로 했다.

한편 변 회장의 요청에 따라 비대위는 14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집행위원회에서 집회 개최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오는 16일에는 한국장애인개발원 이사회와 간담회를 갖고 현 사태에 대해 협의할 예정이다.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이 이룸센터 로비에서 단식을 중단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곧 바로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에이블뉴스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이 14일 만에 단식농성을 접고, 병원으로 후송되고 있다. ⓒ에이블뉴스

[토론합시다]장애인개발원과 장애인당사자주의, 어떻게 보십니까?

[변승일 회장 기자회견문 전문]단식을 마치며 고합니다

오늘로 저는 행동을 접으려 합니다. 무엇보다 주위 분들과 장애인 동지들의 수고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제가 단식하는 상태에서 집회하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혹여 농아인 형제들이 화난 마음에 과격한 행동으로 다치지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일단 단식의 행동은 접으나 투쟁을 접는 것은 아닙니다.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차별의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저의 의지는 하나도 변한 게 없을 것입니다.

13일간의 단식을 마치며 정부와 장애인과 전문가 분들에게 몇 말씀 고합니다.

저도 다른 장애인들과 다르지 않게 평생 장애를 안고 살면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참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때론 차별에 항의하고 울부짖어도 봤지만 무기력만 확인할 때가 태반이었습니다. 헤아리지 못할 정도의 더 많은 차별은 차별인지 조차 모르고 지냈다는 게 맞을 것입니다.

내가 겪어온 이런 삶을, 장애를 가진 내 자식에게까지 또 물려주어야 한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힘듭니다. 저는 단식에 임할 때 거창한 장애인지도자로 나선 것이 아닙니다. 누구나 똑 같은 부모의 심정으로 나선 것입니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차별에 나라도 나서 온 몸으로 항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단식을 하다 그 자리에서 죽어 세상이 변화된다면, 그래서 제 자식들은 저와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저는 단식의 고통 따위나 죽음마저도 두렵지 않습니다.

말 못하는 제가 단식의 방식으로 말하려 한 것을 복지부 공무원들과 장애인개발원의 이사들은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거두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애초부터 장애인이 주요기관의 대표 자리를 맡는 것은 버거울 것이라는 선입견은 편견입니다. 장애인이 공무원 출신보다 능력이 없을 거라는 편견은 차별입니다. 더욱이 공정한 경쟁이 아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지망한 장애인들을 들러리로 만든 복지부 의 외압도 차별을 조장한 것입니다.

정당한 편의만 제공된다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은 능력을 보일 기회를 원합니다. 개발원장으로서 주요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생물학적 장애가 아니라 자격 있는 장애인인지 편견 없이 살펴봐 주길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개발원장에 응모한 분들은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지난 7년간 전국의 장애인들은 전무후무하게 하나 되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려 피나는 투쟁을 해왔습니다. 세상을 바꾸려 한 것입니다. 차별 없는 세상에서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려 한 것입니다. 법이 시행되어 그런 세상은 우리에게 온 것입니까?

이번 개발원장 인선과정을 보면서 희망이 아닌 절망을 또 반복해서 느껴야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장애인이 또 떼를 쓴다고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또 밀어붙이기만 한다고 합니다. 정말 그렇게 느끼는 분들이 아직도 있다면 우린 또 다른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도 차별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는 세상이 여전히 우리들을 힘들게 합니다. 장애를 새로이 인식하고 차별의 개념을 국민에게 홍보해야 할 주무부처의 공무원들마저 변하지 않는 인식을 가졌다면 장애인에게 차별금지법은 무슨 의미입니까

저 하나가 단식을 접는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향해 더 큰소리로 외칠 것입니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또 온 몸으로 저항 할 것입니다. 내일로 예정된 비대위의 집회도 일단은 접어주시길 간곡히 바랍니다. 저도 회복하고 앞장서 투쟁할 것입니다. 우리는 개발원 이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없는 결정을 기대하며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끝으로 저의 개인적인 행동으로 주위 분들과 장애동지분들게 염려와 번거로움을 주게 된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어 송구스럽다는 말씀 올립니다.

2008. 07. 14

한국농아인협회 회장 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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