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아소산 활화산에서 지현씨가 기념 사진을 찍었다. 장애인들도 분화구 바로 앞까지 다가가서 장엄한 풍경을 구경할 수 있다. ⓒ여행박사

운좋은 사람만 볼 수 있는 아소산의 깊은 속살

구마모토항에서 아소산으로 가는 길, 2호차 김정기 가이드는 “소풍 갈 때 비온 적 없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했다. 시시각각 변덕을 부리는 활화산의 코 앞에서 입산금지 경보가 내려 발길을 돌려야 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상 운을 타고나지 않았으면 헛걸음을 할 거란 거였다.

우리 차 안의 대부분이 운 좋은 사람이어선지, 숨어 있었던 태양이 반짝이는 금니를 드러내며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차창 밖으론 산과 산 사이 구릉지가 펼쳐지고, 굽은 길을 돌면 삼나무숲이 나타나 눈길을 앗아갔다. 육질이 최고라는 일본산 검은 소와 고개 숙인 말들이 넓은 목초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억새풀, 긴 머리채가 바람결을 따라 나부끼는 목가적인 풍경이 계속됐다.

좋은 가이드를 만나면 해박한 지식까지 얻어갈 수 있는 게 여행. 2호차 김정기 가이드는 내내 마이크를 잡고 일본의 역사와 지리를 안내해 주었다. ⓒ여행박사

산 아래 차를 주차해야 하는 관광버스 사람들은 케이블카로, 분화구 바짝 앞까지 차를 댈 수 있는 미니버스 사람들은 차에 탄 그대로 나카다케 분화구에 다다랐다. 운전기사 미키씨가 조작해주는 휠체어 리프트에서 내리자 완만한 아스팔트 길이 펼쳐졌다. 난생 처음 마주친 화산지대의 황량함이라니! 전동휠체어로 분화구 앞까지 달려갈 수 있을만큼 길은 잘 닦여져 있었다.

산봉우리가 웅덩이처럼 움푹 깎여져 나간 분화구는 켜켜이 패인 검은 속을 드러내며 무섭도록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는 저 아래를 들여다 보니, 비취반지 녹아 흐르듯 신비한 옥빛 물이 끓고 있었다. 흰 연기를 뿜어 올리며 유황가스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는 풍경이 신비로웠다.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 손바닥을 적셔 보고 싶다는 유혹이 밀려 왔다. 마침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질식할만큼 악취가 난다는 유황 냄새를 몰아가 주었다.

다운이 어머니 지영씨는 “이 때까지 온 곳 중에 제일 웅장하고 멋있고 일본다워요”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녀는 중학생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다.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과 또래친구들에게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 주고 싶어서란다. 장애가 있거나 없거나 아이들은 부대끼면서 서로 배우는 게 있는 법. 그녀의 공부방엔 장애, 비장애의 벽이 없다.

자폐성장애를 갖고 있는 다운이는 춤추고 노래하는 걸 지켜보는 게 고역이었다. 그렇지만 딴청을 하면서도 동참했다는 점이 어머니 지영씨에게는 값지다. ⓒ여행박사

하지만 그렇게 아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느라 엄마는 공부 자료를 만들며 가르치며 바삐 지내야 했다. 엄마보다 누나를 더 잘 따르는 아이라, 이번에도 시험기간만 아니었다면 누나가 올 예정이었다. 얼마만에 일손을 놓고 아들과 단 둘이 지내보는 건지…. 오롯이 아들과만 마주하는 시간 속에서 그녀는 성장한 아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다운이가 매일 바뀌는 일정과 장소를 견뎌내고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지켜보기만 해도 흐뭇한 일이었다.

혼자만 행운을 잡은 게 미안해서 그녀는 다운이 친구 엄마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찬값을 아껴서 다같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시원한 청량제가 될 것인가. 돌아가 건네줄 선물을 고르느라 기념품점마다 기웃거려 보았지만 환율도 비싸고 주머니도 넉넉하지 않아서 쉽사리 지갑을 열진 못했다. 그러다 발견한 연필 한 자루. 문구 코너 그 많은 상품 속에서도 그것은 그녀의 눈에 확 띄었다. 손끝이 무딘 장애학생들에게 안성맞춤인 손잡이가 달린 연필이었다. 행동반경을 바다 건너 일본으로 옮겨 보아도 이렇게 그녀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아들과 관련된 것. 돌아가 어서 빨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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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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