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묶인 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시설 장애 어린이. 이 사진은 1970년대 초 블래트 캐플런이 미국의 주립시설에 몰래 잠입하여 찍은 사진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들의 사진은 ‘연옥의 성탄절’이라는 책으로 출간되

장애인 시설에 폭력과 약물이 만연하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일 뿐더러, 이는 생활인 통제와 관리 방식의 일부라는 것도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일들은 수없이 폭로되었고, 지금도 ‘시설 생존자’들의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현실은 바뀌지 않고 비극은 되풀이 되고 있다. 재호의 죽음이 다가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경주푸른마을, 6개월에 한명씩 사망

실제로, 경주푸른마을에서 죽어 나간 생활인은 재호만이 아니다. 이 시설이 개원한 2005년 4월부터 재호가 죽은 올 2월까지, 이곳에서만 5명이 죽어 나갔다. 6개월에 한명씩 죽은 셈이다.

첫 사망자는 김 아무개(남, 15살, 지적장애1급) 어린이다. 이 아이는 시설이 개원한지 6개월 만인 2005년 11월에 죽는다. 직접사인은 발작이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중첩성 간질’이다. ICD(국제질병분류표)를 보면, 중첩성 간질(status epilepticus)은 주로 무관심, 적절한 병원의 부재, 낮은 약물순응도와 갑작스런 약물 투여 중단 때문에 발병한다. 시설 밖에서는 어린이가 간질 한 가지 사유로 죽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그리고 재호도 그렇지만 이 아이의 경우도 죽기는 너무 이른 나이다. 시설이 좀 더 세심하게 보살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2006년에는 한 해 동안 무려 3명이나 죽는다. 1월에는 전 아무개(여, 51세, 지적장애1급)씨가 ‘패혈증’으로, 3월에는 한 아무개(남, 24세, 지적장애1급)씨가 ‘폐부전’으로, 12월에는 이 아무개(남, 23세, 지적장애1급)씨가 ‘급성심부전’으로 숨진다. 그리고 올 2월에 죽은 재호(남, 14세, 발달장애1급)의 직접사인은 ‘호흡부전’이다.

이 가운데 전씨의 사망진단서를 보면, ‘직접사인: 폐혈증’, ‘중간선행사인: 호중구 감소증’, ‘선행사인: 유방암’이라고 병명이 기재되어 있다. 여기서 직접사인은 사망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병증, 중간선행사인은 직접사인의 원인이 되는 병증, 그리고 선행사인은 중간선행사인의 원인이 되는 병증을 일컫는다. 익사나 암처럼 직접사인만으로도 사망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면 사망진단서에 이 3가지 사인을 모두 기록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전씨의 사망 진단은 ‘어느 정도’ 형식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느 정도’라고 한 것은 법정 질병명이 아닌 ‘폐혈증’을 직접사인란에 기입한 것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씨의 경우와 달리 어린 나이에 죽은 한씨와 이씨, 그리고 재호의 사망진단서에는 선행사인이 없다. 이들 죽음의 근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의 직접사인은 하나같이 ‘~부전(不全)’이다. 한씨는 폐가 완전하지 않아서, 이씨는 심장이 완전하지 않아서, 재호는 호흡이 완전하지 않아서 죽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전’은 사람이 죽을 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사망에 수반되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사망진단서에 적지 않는 게 의료계의 원칙이다. 대구 개구리 소년들의 타살을 입증해 유명해진 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실도 “저혈량성 쇼크, 호흡곤란, 심폐기능부전, 뇌압상승, 패혈증성 쇼크 따위는 사망원인이 아니라 ‘사망 기전’이거나 ‘사망에 따른 증상’이므로 사망원인으로는 적당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그 대신, 모든 사인은 ‘법정 질병명’으로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여기서 법정 질병이란, 우리나라 의료법 시행규칙 제9조가 정하고 있는 ‘한국표준질병ㆍ사인분류’에 따른 질병명을 말한다. 이 분류표에는 위에서 나열한 사망에 수반되는 현상들은 들어 있지 않다.

이래서 경주푸른마을 생활인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다는 것이다. 이 젊은이들도 재호처럼 죽어 나간 건 아닐까? 사망진단서만 봐서는 정확한 사인을 알 수 없기에 드는 생각이다.

시설 장애 어린이들, 얼마나 죽고 있나?

촉탁의사라도 있는 인가 시설이 이 정도라면 미인가 시설들의 상황은 더 나쁠 수 있다. 이런 시설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기에 시설 운영 및 생활인 실태에 대한 보고의무가 없다. 그래서 관할 지자체도 이런 시설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경북의 어느 미인가 시설에서 최근 4년 동안 8명의 생활인이 사망했다. 이곳 역시 생활인들이 6개월마다 한명씩 죽어나간 셈이다. 경상북도청이 지난 4월에 김숙향 도의원(민주노동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렇게 죽은 생활인들 가운데 3명이 10대였고 그 사망 원인은 모두 ‘불상’이다. 10살, 13살, 16살인 어린이들이 시설에서 죽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해당 지자체들은 여기에 대한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중앙부처라고 나을 게 없다.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에는 인가시설이든 미인가시설이든 시설 내 장애 어린이 사망에 관한 자료가 전혀 없다. 그 까닭을 묻는 질문에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시설 내 장애아동 사망 실태조사는 (복지부) 시책에 들어있지 않아서”라고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복지부는 장애 어린이의 사망 실태뿐만 아니라 이들에 대한 시책 자체가 없다.)

다만, 이 관계자는 “생활시설이 거주에 국한되어야지 지금처럼 재활, 의료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문제”라며, “시설 내 장애 아동에 대한 약물 규제는 지금으로서는 어렵고, 복지부가 장애인 생활시설에 거주하는 개별 장애인의 ‘최소서비스기준’을 마련 중이니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이에 대해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정부가 시설 장애 어린이의 건강과 사망 실태에 대해 아무런 통계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건 참으로 놀랍습니다. 이 문제를 국회와 행정부에 적극 제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시설 거주자 4명에 1명은 장애 어린이

2006년 12월에 통과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보면, 장애 어린이는 “가능한 한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제18조 2항)”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당사국 정부는 “직계가족이 장애 어린이를 돌볼 수 없을 경우 친지나 친척 등이 보살피고 이도 안 될 경우에는 지역사회에서 가정과 같은 환경 속에서 그 아이를 보살피는 대안적 돌봄이 되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제23조 5항).”

또 우리나라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아동은 완전하고 조화로운 인격발달을 위하여 안정된 가정 환경에서 행복하게 자라나야(제3조 2항)”하며, “아동의 보호자는 아동을 가정 안에서 그의 성장 시기에 맞추어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하여야 한다(제4조 2항).” 최근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을 보더라도 “장애아동의 인권을 무시하고 강제로 시설 수용 및 무리한 재활 치료 또는 훈련을 시켜서는 아니 된다(제35조 4항).”

하지만 이 모든 법규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정한 조건만 되면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장애 어린이가 시설에 수용될 수 있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가 시설에만 이런 어린이들이 약5,000명이다. 인가 시설 거주자 4명에 1명 꼴이다. 미인가 시설에는 또 얼마나 더 있을지, 이 부분은 통계조차 없다.

더구나 어린이 전문 시설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장애 어린이들은 나이든 장애인들과 뒤섞여 있다. 특히, 경주푸른마을처럼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에는 지적 장애인들과 신체적 장애인들이 함께 수용되어 있다. 어린 장애인들을 그저 마구잡이로 수용하는 것이 정부 시책의 전부인 셈이다.

그럼에도 당국은 시설 내 장애 어린이에 대한 특별 조치를 취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복지부가 해마다 발표하는 ‘사회복지시설 공통업무지침’이나 최근 추진 중인 ‘장애인거주시설 생활인의 인권보장 지침(안)’에는 시설 거주 장애 어린이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그러니 이 어린이들의 약물 오남용을 비롯한 건강 관리에 대한 대책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장애 어린이의 시설 수용과 그에 따른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장애 아이들만이라도 가정에서 키워야”

재호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윤리 의식에 깊은 생채기를 내었다. 시설 밖에서는 각종 어린이 보호 제도와 정책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시설 안에서는 장애 어린이들이 재호처럼 죽어 가고 있는데도 정부 당국이나 시민사회는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5,000명이 넘는 장애 어린이들은 우리 사회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이다. 이는 장애 어린이를 철저하게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보호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대조적이다.

여기에 대해, 대구대 조한진 교수는 “미국에도 장애인 시설이 있지만 주로 성인들만 있고 장애 어린이가 있는 경우는 보지 못했어요”라면서, “장애 아이들을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돌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고 마지막 수단으로 시설을 생각해봐야 하는데, 우린 너무 쉽게 아이들을 시설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경주푸른마을 사건을 세상에 알린 대구DPI의 육성완 대표는 “장애가 있든 없든 적어도 아이들만이라도 시설이 아닌 가정과 지역 사회에서 돌봐야죠. 어린 아이들을 시설에 집어넣고 죽을 때까지 거기에 내버려 두는 것이 문명사회에서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라고 반문했다.

육 대표의 말마따나 이 ‘가당찮은’ 반문명적 현실을 어찌할 것인지, 재호는 죽음으로 이 사회 어른들에게 따져 묻는다.

*지금까지 ‘경주푸른마을 장애 어린이 사망 사건 취재기’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 이 시설에 대한 경상북도청의 특별 감사가 끝났습니다. 감사 결과가 발표되면 그동안 제기되었던 다른 의혹에 대한 후속 기사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윤삼호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대구DPI 정책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몇몇 장애인 단체 활동가를 거쳐 지금은 부산에 있는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화의 정치>, <장애학: 과거, 현재, 미래>, <동정은 싫다>, <장애와 사회, 그리고 개인> 같은 장애학 서적을 번역했습니다. 장애학 특히 장애 역사에 관심이 많고, 지금도 틈틈이 자료를 읽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주류 학계가 외면하는 장애인의 역사를 현재와 연결하여 유익한 칼럼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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