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가 꿈인 박지원 군과 어머니 김명숙(48세)씨가 밝은 표정으로 런웨이를 걷고 있다. ⓒ에이블뉴스

“어려서부터 멋진 모델이 되고 싶었어요.”, “아름다운 목소리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요.”, “20여 년 간 엄마의 보호만 받았던 나 엄마를 지켜드리는 경호원이 되고 싶어요.”

상상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꿈,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가슴 한 구석 간직하고만 있었던 장애인들의 꿈이 패션쇼 무대에서 펼쳐졌다. 안양시관악장애인종합복지관이 지난 28일 오후 7시 라프로메사웨딩홀에서 개최한 그린나래 패션쇼에서다.

그린나래. 그린 듯이 아름다운 날개라는 이름의 이 패션쇼는 복지관이 개관 20주년을 기념해 마련했다. 장애인들이 자신의 꿈이 담긴 의상을 입고 부모님과 함께 무대에서는 1부와 기성복을 입고 모델들과 무대에 서는 2부로 꾸며졌다.

시작 전 대기실 안. 메이크업을 받고 꼼꼼하게 자신의 의상을 챙기고 있었고 “좋아요”, “신나요”라는 반응의 참가자와는 달리 몇 명은 긴장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가장 먼저 예쁜 기타를 곁에 두고 있는 박지원(19세, 발달장애) 군이 눈에 들어왔다. 대중 앞에서는 기타리스트가 꿈인 만큼,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차분히 메이크업 의자에 앉아있는 이서영(19세, 뇌병변장애) 양은 다소 긴장감을 나타냈지만, 무대에서 멋지게 브이를 그려 보이겠다고 약속했다.

모두가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차분히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이서영 양. ⓒ에이블뉴스

모델같이 큰 키로 대기실 안을 누비는 이혜림(24세, 발달장애)씨는 난생 처음 신어보는 빨간 하이힐이 짧은 치마가 어색하기도 하고, 패션쇼 무대에 설 생각을 하니 떨리기도 했지만 상상했던 그 모습의 내가 된다니 어색함과 긴장감 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진짜 꿈이 모델이었는데 오늘 하루지만 꿈이 이뤄진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는 것.

난생 처음으로 패션쇼에 서는 어색함과 민망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어 용기 낸 아버지, 어머니, 또는 형제, 자매, 남매들. 함께 무대에 서는 가족들도 즐거워 보였다.

혜림 씨의 어머니 조은성(54세) 씨는 “처음에는 앞에 나서는 것이 싫어서 반대를 했는데 딸이 원해서 하게 됐다”면서 “이렇게 참가를 해서 딸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걱정했던 것 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이날 경호원이 꿈인 아들 국희준(25세, 발달장애) 군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멋진 여배우로 변신한 어머니 김상희(52세)씨도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멋진 경험을 해주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참가했는데 하다보나 제가 더 즐기고 있는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경호원이 꿈인 국희준 군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멋진 여배우로 변신하고 있는 김상희 씨. ⓒ에이블뉴스

모델 견정환 씨와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는 전해은(사진 좌) 양과 이하영(사진 우)양. ⓒ에이블뉴스

전문모델들은 참가자들이 즐겁게 준비하고 있는 동안 “같이 사진 찍을까”, “오늘 잘 할 수 있지”라며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며 긴장을 풀어줬다. 이중 유독 다정해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앞선 화보 촬영에서 호흡을 맞춘 이하영(15세, 뇌병변장애) 양과 모델 견정환(26세)씨다.

배우가 꿈인 하영 양에게 우월한 비주얼로 칭찬을 받은 견정환 씨는 “처음에는 어렵고 그랬는데 이제는 서로에 대해서 좀 더 잘 알게 된 것 같다”고 파이팅을 외쳤다.

패션쇼는 3개월이라는 긴 과정으로 준비됐다.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초기에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기획과 연출을 맡은 DK엔터테이먼트, 전속모델들의 재능기부, 의상을 협찬한 캐주얼 브랜드 팰틱스, 양해일 디자이너 등의 따듯한 도움으로 차질 없이 무대를 꾸밀 수 있었다.

드디어 패션쇼의 시작. 홀을 가득 메운 200여명의 관객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혜림 씨와 어머니 조은성씨가 등장했다.

긴장된 모습의 혜림 씨는 익숙한 운동화를 벗고 빨간색 하이힐을 신은 게 어색했는지 삐걱 거리기도 했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약속했던 것처럼 자신감 넘치는 워킹을 선보였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패션쇼 장에 흐르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박수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 다른 참가자들도 멋지게 무대에 올랐다. 무대 중앙에서 멋지게 포즈를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서영 양은 시작 전 약속했던 브이를 그려냈고, 지원 군은 어머니와 준비한 포즈를 멋지게 해냈다. 20가지 빛깔의 꿈을 입은 그들은 무대 위의 어떤 조명보다 반짝 반짝 빛났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내내 큰 박수소리로 환호를 보냈던 가족과 지인들은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는 후한 점수를 줬다.

치어리더가 꿈인 이수지(23세, 발달) 양을 응원하기 위해 자리한 활동보조인 전미자(여, 59세) 씨는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재밌게 봤다. 이렇게 큰 행사인줄 알았으면 꽃다발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수지가 꽃다발을 세 개나 받아서 다행”이라면서 “수지가 종종 이거(패션쇼)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다. 누가 모델이고 누가 장애인인지 모를 정도로 잘했다”고 칭찬했다.

무대 한켠 눈시울을 붉혔던 오영준 군의 아버지 오세명(52세) 씨도 “오늘 무대 위에 선 아들을 보며 평소에 느끼지 못한 감동이 와 눈시울이 뜨거웠다”면서 “이제껏 보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모델이 꿈인 이혜림(24세, 지적장애) 양이 어머니와 함께 멋진 워킹을 선보이고 있다. ⓒ에이블뉴스

멋지게 경호원으로 역할을 소화한 국희준(25세, 발달) 군과 어머니. ⓒ에이블뉴스

28일 그린나래 패션쇼 참가자들의 워킹에 관객들이 환호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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