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9월 13일 장애등급심사 중단 등을 요구하며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점거했다. 장애심사센터 건물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플랜카드가 걸려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2010년 결산]-①장애등급심사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에이블뉴스는 인터넷 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10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올해 장애인계를 결산하는 특집을 진행한다. 첫 번째 순서는 장애인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장애등급심사다.

올해 장애인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장애등급심사. 장애인들은 올 한 해 동안 장애등급심사가 장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도구라며, 장애등급심사 폐지 등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장애등급심사 예산이 올해보다 약 2배가량 증액, 통과됨에 따라 장애등급심사를 둘러싼 장애인들의 거센 반발은 새해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장애등급심사' 논란은 복지부가 올해 활동보조서비스 지침에 장애등급심사 규정을 강화시키면서 촉발됐다. 정부는 장애등급심사를 통해 장애등급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을 적발해 내, 정말 필요한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활동보조서비스 지침에는 기존 신규 신청자 (2009년 10월 12일 이후)를 대상으로 한 장애등급심사를 2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한 이용자에도 확대 적용하도록 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정부가 서비스를 제공할 예산이 부족하자, 가짜 장애인을 잡는다는 명목을 들이대 등급심사를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의 지침대로 장애등급심사를 받는다면 대부분의 1급 장애인은 '1급을 받을 수 없다'는 게 장애인들의 입장이다. 활동보조서비스는 현재 1급 장애인에 한해 제공되고 있어 1급 장애인이 아니라면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에 의해 점거된 장애심사센터에 붙여져 있는 플랜카드. 장애인들은 "획일적인 의학적 잣대인 장애등급심사는 장애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탄낸다"며 장애등급심사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들의 예상대로 등급 하락 피해는 속출하기 시작했다. 활동보조서비스 시간을 더 많이 제공받고자 활동보조서비스 등급 변경신청을 했던 Y씨는 장애등급심사로 1급에서 2급으로 등급이 하락돼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됐으며, 탈시설을 꿈꾸며 활동보조서비스를 신규로 신청한 C씨도 2급으로 하락돼 시설에서 나올 수 없게 됐다.

정부의 말대로라면 Y씨와 C씨는 장애 등급이 잘못 나온, 장애 1급이 적합하지 않은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혼자선 휠체어에 오를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최중증장애인이다.

이 같은 문제들은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에 머물러 있던 장애등급심사 규정을 모법인 장애인복지법에 명문화하는 개정안이 지난 4월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장애인연금이 시행됨에 따라 더욱 심화됐다.

개정안 통과는 장애등급심사의 법적 명분이 확실해진 계기가 됐다. 개정안은 시·군·구가 등록장애인에 대한 장애등급의 적정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정도에 대한 정밀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는 국민연금 장애연금 지급을 위한 장애심사 및 결정은 물론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중증장애인 등급심사·판정과 장애인연금 대상자 심사·판정을 주요업무로 다루고 있다.

장애인연금이 7월부터 시행된 이후 등급 하락 피해는 더욱 넘쳐났다. 장애인연금을 신청하기 위해 장애등급심사를 받았다가 장애등급이 2급으로 하락돼 기존 받던 활동보조서비스마저 끊겨버리거나 장애수당이나 장애인콜택시 등의 기타 혜택을 받지 못한 장애인들은 울분을 토해냈다.

장애인 당사자가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장애등급심사 비용도 문제로 떠올랐다. 장애등급심사를 위해선 적게는 몇 만원, 많게는 몇 십만원까지 비용이 들지만, 국가적 지원이 전혀 없어 저소득 장애인에겐 장애등급심사 자체가 생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장애수당을 포함해 약 50만원의 수급비를 받는 B씨(뇌병변 1급)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신청, 등급심사를 받게 되면서 CT 촬영비 9만 8,850원을 포함한 15만 5,070원을 진단비용으로 내야 했다. 장애등급심사를 위해 한 달 생계비의 1/3 가량을 부담해야 하는 꼴이다.

이에 장애인 단체 및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전개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국가인권위원회에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긴 장애인들을 위한 긴급구제를 신청했으며, 보신각 앞에서 활동보조서비스 권리를 지키는 무기한 노숙농성을 진행하기도 했다. 또한 장애등급심사 폐지 및 등급기준 전면재검토, 활동보조권리보장 등을 요구하며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기습 점거하기도 했다.

장애등급심사 문제는 국정감사에서도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 박은수 의원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장애등급심사로 등급이 하락된 장애인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지적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장애인들의 외침은 정치권까지 확대돼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타겟으로 올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여·야 할 것 없이 복지부에 장애등급심사에 대한 심각성을 비판해냈다. 박은수(민주당), 곽정숙(민주노동당) 등 장애 당사자 의원을 비롯한 19명의 의원들은 '장애인 등급판정심사제도 개선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원성의 목소리가 조금은 통한 것일까. 복지부는 장애등급심사제도를 개선해 나갈 적극적인 의지로 장애인계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이하 기획단)’을 구성했다.

장애판정·등록분과, 전달체계 및 재정분과, 서비스 제도개선 분과 등으로 나뉜 기획단은 첫 성과물로 내년 3월부터 뇌병변장애인의 장애판정기준인 ‘수정바델지수’를 개선,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한 장애유형별 장애진단 업무와 장애등급 부여 업무를 분리해 장애등급판정의 객관성을 제고한다는 방향과 장애등급심사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 기준 및 절차에 대한 안내 의무화, 이의신청 대면심사 실시 등을 제시했다.

기초수급자에 대해 장애인 등록 시 발생하는 장애진단서 발급 비용과 차상위계층 이하의 저소득층에 대한 검사비 일부를 지원한다고도 했다.

기획단은 ‘장애등급제 폐지’에 관한 구체적 논의도 진행하고 있다. 이는 일부 장애인단체들이 “원론적인 문제로 돌아가, 장애인에게 등급을 매겨 사회적 낙인을 찍는 장본인인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따른 것이다.

기획단의 편성, 그리고 지속되는 논의의 장은 장애등급제, 그리고 장애등급심사에 얽힌 장애인들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반영하고, 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개선의 여지를 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이 코앞에 다가온 2011년 장애인들의 삶, 즉 장애등급심사에 대한 불안함과 함께 활동보조서비스 등 서비스를 받지 못해 삶의 기로에 선 장애인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

새해 예산안에 따르면 장애인등급심사제도와 운영에 관한 예산은 총 153억으로 확정됐다. 이는 올해 예산 73억 5,000만원보다 약 2배 늘어난 것으로 1~6급 신규 등록장애인 및 활동보조, 장애인연금을 비롯한 복지서비스 신청자 등 27만명의 등급심사를 위해 쓰인다.

올해 심사 대상자 수가 19만명임을 감안해 볼 때, 등급심사로 인한 장애인들의 피해 사례는 올해보다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결국 장애등급심사를 둘러싼 논란은 내년에도 지속되고, 이로 인한 장애인들의 시름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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