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지팡이로 보행 중인 시각장애인과 점자블록 위 주차된 공유 전동킥보드.ⓒ김경석씨 제공

'도로 위 무법자'로 불리는 공유 전동킥보드,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죠? 스마트폰으로 QR코드만 찍으면 바로 빌릴 수 있고, 정해진 주차 구역이 없어 도착지 주변에 세우면 바로 반납할 수 있어 편리한 것이 장점입니다. 코로나19로 대중교통 기피 심리가 확산하면서 인기가 더 높아졌습니다.

지난 21일 서울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8월 서울을 기준으로 공유 전동킥보드는 16개 업체에서 약 3만 6000여 대를 도입해 운영 중입니다.

그러나 명확한 주차 장소가 없다보니, 도로나 전철역 앞에 무단으로 주차되며, ‘민폐 주차’, ‘무법자’라는 비판의 시각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 주차가 ‘민폐’로만 그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흰 지팡이를 든 시각장애인입니다.

점자블록 위 무분별하게 주차돼 있는 공유 전동킥보드.ⓒ김경석 씨 제공

최근 시각장애인 보행교사인 김경석 씨(40세, 남)가 기자의 메일을 통해 4장의 사진을 제보했습니다. 인도 위 공유 전동킥보드가 시각장애인에게 ‘시한폭탄’이 될 우려에서 였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니, 서울 강동구 지역 횡단보도 앞 점자블록 위에 여러 대의 공유 전동킥보드가 무분별하게 주차돼 있었습니다. 그는 주차장소가 따로 없다보니, 보행로에서 주행하다가 지하철역 입구 또는 횡단보도에 세워놓거나, 업체에서 이용자들의 접근성이 좋은 이른 바 ‘킥세권’에 킥보드를 놓고 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혹시나 시각장애인이 단독보행을 하다 충돌하는 사고가 날 위험이 있다는 것이죠.

“단순 업체 직원들의 무지함에서 벌어지는 일 수 있겠으나, 이런 문제는 단독보행을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보행안전을 지속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흰 지팡이로 보행 중인 시각장애인과 점자블록 위 주차된 전동 공유 킥보드.ⓒ김경석씨 제공

이 같은 공유 전동킥보드의 무분별한 주차에 대해 꼬집는 언론보도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널브러진’, ‘거리의 쓰레기’, '흉물‘, ’골칫거리‘ 등의 자극적 제목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위에 세워진 문제도 언급되기도 했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12월 개정 예정인 도로교통법에 따라 13세 이상은 누구나 면허 없이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자전거 전용도로에서도 주행할 수 있게 되기에 공유 전동킥보드는 더욱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됩니다.

역 인근에 무단 주차, 방치된 공유 전동킥보드가 도로 교통을 방해하거나 보행자가 걸려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문제, 아무런 대책이 없을까요?

서울교통공사는 모빌리티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케이에스티인텔리전스와 함께 내년 중 시범사업을 통해 1~5개 역사에 거치대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민폐 주차를 막을 강제력 확보를 위한 조례 개정 등도 할 계획입니다.

당장 처벌만 강화한다고 주차 문제가 해결될까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어주는 안내견도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법을 보장해놓고, 출입을 거부할시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돼 있지만, 잘 지켜지고 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최근 JTBC의 보도에서도 7번의 식당 출입을 거절당한 내용이 나오기도 했고요.

물론 공유 전동킥보드 이용자가 특별히 시각장애인을 위험에 처하기 위해 점자블록 위에 일부로 주차한 것은 아닙니다. 무지에 따른 행위인 것이죠.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부착된 향균필름이 점자를 막아 시각장애인에게는 어려움이 될 수 있다.ⓒ에이블뉴스

이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주택, 상가 엘리베이터 버튼에 부착한 ‘향균필름’이 버튼에 새겨진 점자를 막아, 시각장애인에게 큰 어려움을 겪었던 바 있죠.

시각장애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점자블록이 어떤 용도인지, 시각장애인에게 점자가 어떤 의미인지 인지했다면 이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공유 전동킥보드 이용 시 점자블록 위에 주차하거나 주행해서는 안 되고, 단독보행하는 시각장애인이 충돌하지 일어나지 않도록 이용자들의 주의가 필요합니다.

오는 11월 4일은 ‘제 94회 점자의 날’입니다. 송암 박두성(1888~1963)선생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한글점자를 만들어 지난 1926년 11월 4일 반포한 것을 기념하는 날인데요.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보행을 책임집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안전한 통행로이자 생명선인 점자블록, 법으로 위협하기 이전에 성숙된 시민의식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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