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당사자성에 기반한 탈시설 로드맵 구축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통해 정부에게 요구하는 모습(좌측), 한 장애인 활동가가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는 피켓을 든 모습(우측). ⓒ에이블뉴스 DB

지난 8월 말, 정부에서 2022 예산안을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했다고 한다. 이 예산안은 국회에 제출되어, 정기국회에서 상임위 예비심사, 예결위 본심사 및 본회의 의결의 과정을 거쳐 수정하고 확정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년 예산안 내용을 보면서, 약간은 걱정이 들긴 했다. 최근 정부에서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함에 따라, 이와 관련된 시범사업을 3년 동안 실시한다는 얘기가 있었다. 이후 2025년부터 매년 740명씩 탈시설을 시킨다는 것인데, 현재 시설 거주 장애인이 3만 명임을 생각하면 40년이 지나야 탈시설 완료라는 뜻이라, 너무도 느리다.

임대계약 등 주택관리, 금전관리 등 일상생활 지원 및 각종 서비스 연계 등 지역거주생활 전반에 대한 종합 지원인 주거유지서비스는 탈시설 로드맵에 의하면 장애인 거주 시설이 제공하게 한다는데, 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구조인 시설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한지, 관련 예산이 탈시설-자립에 제대로 쓰일지 의문과 의심이 든다.

탈시설 장애인과 관련, 보조기기를 1인당 300만 원 지원한다고 되어있는데, 보조기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탈시설 장애인의 보조기기에 대한 욕구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런데 경제적 사정 어려운 탈시설 장애인이 300만 원보다 훨씬 넘어가는 보조기기가 필요해 구입 시 자부담이 상당할 수 있다.

개인별로 실제 구입가의 90~95%를 지원하고 나머지 적은 금액을 자부담으로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한데 일률적으로 300만 원 하는 것은, 탈시설 장애인 개인마다 다른 보조기기에 관한 욕구를 예산으로 제한한다는 생각이 든다. 보조기기 개발 시 장애인의 욕구가 반영되지 않는 구조도 탈시설 장애인 포함한 장애인에겐 불편한 요인이다. 그래서 탈시설 장애인의 보조기기 개발 참여 등의 대안도 시범사업 내용에 나와야 했다.

탈시설 준비 중인 장애인 관련 활동지원을 월 최대 60시간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를 환산하면 1일에 평균 2시간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립 지원에 충분할 정도가 아니기에 탈시설 생색내기 예산이란 의심이 든다.

올해 7월 28일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기재부 홍남기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모습(좌측), 세종시 정부청사 도로에 홍남기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하는 내용의 피켓이 깔려 있는 모습(우측).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에이블뉴스 DB

한편 장애인 활동지원 단가는 1시간당 785원 상승했는데, 장애 정도‧유형, 개인의 욕구 등에 상관없이 단가가 일정하고 일률적이라 활동지원사 처우가 열악한 것은 여전하다. 최중증 장애인의 경우 활동지원 가산수당이 2000원으로 올랐지만, 처우가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라 현실성이 떨어진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와 관련한 단가는 활동지원 서비스 단가와 같고, 주간활동 서비스에 참여하는 주간활동인력은 활동지원사와 거의 비슷하게 처우가 열악하다. 또한,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서비스 시간이 100시간에서 120시간 늘었지만, 하루당 4~5시간 정도라 부모들의 돌봄 부담 완화에는 아직도 부족하며 활동지원서비스 차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기존에는 중위소득 120% 이하에게만 지원했던 장애아가족양육지원서비스를 120% 이상에게도 지원하고 시간도 연 720시간에서 840시간으로 확대한다고 한다, 하지만 지원 시간이 하루 당 2~3시간 정도라 장애아동 평균 돌봄시간이 평일 12.34시간, 주말 18.43시간임을 고려하면 역시 가족의 돌봄 부담 완화에 불충분하다. 발달장애인 주간활동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대상 인원이 소폭 상승하는 등 예산에 욕구를 끼워 맞추는 식의 제공자 중심의 지원인 것이다.

장애인 일자리도 작년보다 약 2500명 늘려서 지원하는데, 그 일자리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퇴직금을 안 줘도 되는 1년 이하의 단기간 일자리가 대부분이며, 경제적 수요에 맞추기보다는 장애인의 높은 실업률을 해결하려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기에, 이 일자리를 통해 민간 노동시장으로 전이가 상당히 낮을 수밖에 없는 건 여전하다. 임금도 기껏해야 최저임금이 최대일 정도로 저임금 일자리다.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관련해선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 전담인력 1명 증원 및 지역 옹호기관 1개소 확대 등을 골자로 올해보다 2억 증액해 예산안을 잡았다. 하지만 내년 예산안으론 옹호기관 운영비는 올해와 별반 다를 바 없고, 옹호인력 고용신분이 기간제 계약직인 등 불안정한 건 여전해 내년에도 장애인 권익옹호에 어려움을 겪을까 두렵다.

학대 피해가 많은 지적‧자폐성 장애인 옹호 예산이 충분해야 함에도 기재부 측에서 노인‧아동보호와 같은 사업으로 보며 예산증액을 하지 않는 등 장애인의 욕구를 예산에 맞추는 제공자 중심 예산을 배정하는 건 여전한 것 같다.

코로나 시국으로 일상이 된 사회적 거리두기. ⓒPixabay

이외에도 재난적 의료비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에겐 본인부담금의 80%를 지원하고 기준 중위소득 50%이하는 70%, 50~100%는 60%, 200%까지는 50%를 지원한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기준 중위소득 200% 이상인 계층에 있는 장애인 및 그 가족은 재난적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한다.

또한, 발달장애 정밀검사비 지원에 있어선, 영유아에 한정된 데다, 건강보험료 부과금액 하위 70% 이하로 지원대상을 묶어 놓는 등 소득 기준에 따른 지원인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 자신이 자폐성 장애가 있는지 의심했을 때 진단비를 지원하는 것이 없는 등, 이 지원 역시 욕구를 예산에 맞춘 지원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내년 정부 예산안에서 장애인 관련 내용을 보면 욕구를 예산에 맞춘 제공자 중심의 예산안임이 드러난다. 장애인 삶과 욕구, 필요보다는 예산으로 이것들을 한정 짓는 것이다. 올해 정부의 장애인 관련 예산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사회 내에서 장애인이 당당하게 인간다운 삶을 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요즘 코로나 19 전염병이 창궐해 정부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개인 간 거리를 두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년 예산조차도 장애인 삶, 욕구와 거리를 두려 한다. 이렇게 된다면 장애인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고 세금을 당당히 낼 기반을 박탈당하게 된다.

그러니 정부는 장애인 삶, 욕구와 거리를 두는 예산안을 재고해야 한다. 장애인의 삶과 욕구를 반영하는 이용자 중심 예산 체계로의 재편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은 한, 탈시설-자립은커녕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은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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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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