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헌법의 시초인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Wikimedia Commons

헌법 제32조는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제1항 일부)라고 명시했습니다. 발달장애인 고용 활성화뿐만 아니라 적절한 임금수준 보장, 최저임금제 의무 적용을 헌법적으로 규정한 셈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발달장애인 고용에 있어서 장애인개발원의 ‘퍼스트 잡’ 같은 노력이 있다고 친다고 해도 발달장애인 고용을 국가적으로 독려하는 정책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에게 적절한 임금수준이 제공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시작하면서 헌법 조항을 이야기한 것은 결국 오늘 이야기의 결론이 헌법적인 문제로 넘어갈 수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즉, 발달장애인 고용 정책 자체가 결국 ‘헌법적 의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발달장애인 고용 정책에서 이전보다는 꽤 많은 진전을 보인 것도 있지만, 정작 대기업이나 공공분야에서의 발달장애인 고용은 매우 뒤처져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직도 발달장애인이 대기업이나 공공분야 공채를 통과했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대기업 같은 경우에는 공채를 통과한 발달장애인 직원은 아마 생기면 뉴스거리가 될 것이라고 저마저도 자조할 정도로 없습니다.

독일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대기업이 책임지는 편이 압도적인데, 한국은 유난히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이 뒤처져있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발달장애인 청년 인구가 점점 증가하고 있고 숫자는 그렇다고 해도 비중이 압도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막아낼 수 없습니다.

이제 장애인 고용의 성패는 신체장애인을 떠나 발달장애인 고용 성패가 곧 장애인 고용의 성패로 작용할 전망이 압도적입니다. 장애인 인구 비중에서 발달 장애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서 장애인 고용 인구의 불균형 현상이 발생하거나, 장애인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거나, 고용 불안정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특히 대기업과 공공분야는 젊은 층 은어로 ‘일자리 하드캐리’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 말은 쉽게 말해 ‘하드캐리’라는 말이 막대한 책임이나 역할을 뜻한다고 젊은 층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마디로 대기업과 공공분야는 ‘양질의 일자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최적의 직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공공분야는 발달장애인 고용에 제일 소극적이고, 기껏 고용해도 바리스타 수준이거나 연계고용 같은 직접고용이 아닌 스타일로 운영하는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는 사회적 경제에 발달장애인 고용을 책임지라고 떠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물론 대기업과 공공분야에서 발달장애인 직접고용을 시도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수가 적다거나, 단순직 비율이 높다거나, 천편일률적인 고용 패턴을 보이는 것입니다. 가장 문제점인 것은 비장애인 직원과 소통하면서 일하는 직종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크고요.

그렇지만 대기업과 공공분야가 본격적으로 뒷심 발휘를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가장 뛰어나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그들이 발달장애인 고용에 적극적이기를 빕니다.

임금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번 모 언론의 보도는 제게 충격이었습니다. ‘시급 250원’. 말도 안 되었습니다. 일당 2,000원. 하루에 용돈 2,000원을 주는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저렇다는 것입니다.

최저임금법 제7조라는 ‘악마의 조항’이 버젓이 살아있기에 그런 것이 있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최저임금을 제공하는 것은 헌법적 의무입니다. 그런데 지켜지지 않으니 이것도 문제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 발달장애인 최고의 노동조건은 ‘하루 8시간 노동, 최저임금 이상 지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최저임금 받는 것이 그나마 감지덕지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니까요. 발달장애인은 그만큼 최저임금 보장이 덜 되어있다는 문제점이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언제 카카오 브런치에서 ‘나는 정규직, 직급 대리, 월급 실수령액 200만 원이 지금 직장생활에서의 소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딘가에서 그렇게 말한 카카오 브런치 글을 보셨다면, 그 글은 제가 쓴 글이라는 것을 뒤늦게 밝혀드립니다. 이제 합법적으로 공개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글은 곧 나올 제 자서전에 실릴 글이기도 합니다.

그 글은 의외의 호응을 얻어 5만 건 넘는 조회 기록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소확행’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발달장애인의 현실을 거꾸로 말한 그 울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말이 나와야 할 정도로 발달장애인 임금이 월 200만 원을 초과하는 사례는 극히 적은 편입니다. 아마 먼 미래의 제가 그 ‘마의 실수령액 200만 원’ 선을 넘게 되는 최초의 대중적인 발달장애인 노동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다시 헌법 제32조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던 발달장애인 고용의 헌법적인 의무임을 따진 이유는 ‘이렇게’입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사회 속으로 뛰어들어 사회 속 생활을 즐기는 것이 가장 행복한 삶이고 발달장애인을 낭비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을 더 늦추면 안 됩니다. 발달장애인 고용 문제에 대해 정치권의 관심이 급한 시점입니다. 발달장애인 대기업, 공공분야 진출 활성화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최소한 최저임금을 보장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논의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앞으로 5년~10년 이내에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장애인 고용 문제가 사회 문제로 제기되고 위기라는 진단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제 판단이자 예측입니다.

더불어민주당 176석.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이슈이고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이름을 바꾸겠다는 미래통합당도 이 문제에서는 정쟁거리로 삼아서는 안 되는 이슈입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의원이 있는 정의당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이슈입니다. 즉, 원내 3당이 다 같이 ‘스크럼을 짜고’ 여-야가 따로 없이 연합전선을 구축해서 해결할 이슈입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은 결국 헌법적 의무입니다. 헌법적 의무를 내팽개치고 이랬다가는, 언젠가 발달장애인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힐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아직 발달장애인들이 조직화가 안 되어서 그렇지, 조직화하였으면 1980년대의 장애인 운동과 다른 새로운 장애인 운동 주체 세력이 던진 질문지에 이제 답해야 하는 것은 정치권의 몫입니다.

발달장애인 고용이라는 헌법적 의무를 저버리지 않게 해주세요. 이번 국회가 갓 시작했으니 이것은 바랍니다. 이제 10년, 다음 국회 임기 안에 이 문제가 해결될 실마리라도 안 나오면…. 그 날 발달장애인 당사자 아니면 부모 둘 중 하나, 아니면 둘 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돌봄 부담이나 경제적 위기, 일하고 싶어도 일 못 해서 그런 것이.

발달장애인 고용은 결국 ‘헌법적 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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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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