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sight unseen'에 출품한 미국 시각장애인 Kurt Weston 작가의 사진. ⓒCBS라디오 홈페이지

전편에 이어 "장애인 스마트(權)" 에 대해 알고, 함께 그 것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우리 모두 당당하게 "장애인 스마트(權)" 을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그 전에, 먼저 이 글의 내용은 CBS라디오 창사특집 '소리를 보여 드립니다' 의 내용을 바탕으로 필자의 생각을 첨부한 것임을 명확히 해둔다.

스마트 미디어 시대에는 장애인의 삶이 현격히 달라진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고, 비장애인과 똑같이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있다. IT 및 보조기술 그리고 웹 접근을 통해 학습권이 확대되면, 시·청각장애인이 판사가 되고, 교수, 법무심사관, 음악가, 속기사 등 다양한 직종에 도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적절한 주변의 도움과 환경의 개선, 그리고 보조공학기기의 도움이 어우러진다면 장애인의 직업생활은 일상화 될 수 있다.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웹 접근권은, 비장애인에게 있어서의 이동권, 소통권, 학습권과 같은 개념이다. 웹접근권이 보장된다면 장애인들의 독립적인 삶이 가능하며, 삶의 질이 현격히 달라질 수도 있다.

제2부 "당신은 접근이 차단됐습니다"에서는 IT와 보조기술 및 웹접근성 활용해 장애를 뛰어넘는 사례를 발굴 소개하면서 '장애인 웹 접근권'을 점검해 본다. 장애인의 눈으로 직접 웹에 접근해보고 그 접근이 '차단되는' 이유를 직접 찾아본다. 나아가 장애인 차별 없는 웹 환경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 사회와 기업은 어떤 제도적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을 해야하는지 고민해 보고자 한다.

시각장애 학생들이 인터넷 접속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표정이 밝지 못하다. 접속하는 홈페이지마다 길이 다 막히나 보다. 먹통과도 같은 인터넷 웹 사이트에서 그들은 지금 길을 잃고 서 있다. 마치 문턱을 올라가지 못하는 휠체어처럼, 갑자기 차단된 도로에 황당하게 멈춰선 자동차처럼 말이다.

웹 접근성이 보장되지 않은 인터넷 사용 환경, 그 것은 마치 "창문이 없는 방안에서 창밖의 절경을 보라"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어느 여성 중증장애인에게 '외출'이란 어떤 의미일까? 비장애인 누구나가 맘만 먹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외출'이지만 장애인에게 바깥나들이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앞이 안 보여서 못 나가고, 청각장애인은 소리가 안 들려서 외출을 삼가 한다.

이러한 이동권 못지 않게 요즘은 장애인 웹 접근권이 새로운 화두이다.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정보 접근권(사용권)이나 인터넷 접근권이 가로 막힌 인터넷 또는 IT사용 환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 한가운데 내버려진 채 서 있는 모양과도 다름 아닐 것이다.

장애인과 노약자 같은 정보취약 계층도 어렵지 않게 웹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인터넷 뱅킹, 인터넷 쇼핑, 인터넷 수강신청, 관공서 전자 민원까지, 웹에 접근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시대가 현실이다.

2008년 시행되고 2013년 4월부터 전면 확대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우리나라 모든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 웹 접근성의 기준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운데 웹 접근권이니 장애인차별금지법이니 하면서 그렇게 극성을 떨어야 하는건가 묻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만 인터넷을 못 한다면? 당신만 이메일을 열어볼 수 없고, 메신저도 못하고, 뉴스 검색도 못 한다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들도 이러한데 듣지도, 보지도, 이동할 수도 없는 장애인들은 오죽 할까 생각해보면 될 것이다.

장애인의 요구는 거창한 게 아니다. 실사용자를 고려해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인터넷 중독" 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을 만큼 현 시대는 인터넷, IT관련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정보의 홍수시대" 라고들 한다.

홍수라고 표현할 만큼 정보는 넘쳐나는데, 그 넘치는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작은 물동이가 없어 정보에 대해 목마름을 가진다면…….

그 "작은 물양동이" 가 바로 앱 어플리케이션을 통한 정보에 대한 접근(사용권)권, 인터넷 접근성 즉, 웹 접근성 기준의 보장인 것이다.

"기회의 균등" 문제는 비단 웹 접근성 기준 보장의 문제뿐만 아니다. 빈곤, 이동권, 성별, 다문화, 성적 소수자에 이르기까지 소외 또는 박탈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상대적 약자"의 문제로, 이 시대를 관통하는 사회적 이슈 중 하나일 것이다.

시각장애인 '테스트 엔지니어'가 우리나라 인터넷 포털의 다양한 서비스의 웹 접근성을 날카롭게 모니터한다. 포털에서 레이아웃, 블로그 등을 점검하고, 검색, 이메일, 카페, 쇼핑 등등을 장애인의 눈으로 모니터 한다. 저시력자와 색맹 색약자의 눈으로도 포털 서비스를 점검한다.

이런 열성적인 모니터 덕분에 네이버, 다음, 네이트 같은 포털 업체가 조금씩 '실사용자 중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장애인이 사용하는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우리 장애당사자의 손으로 점검하고,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은 의견을 개진해 개선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시스템 구성 등에서 일정부분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장애당사자의 권익 실현과 넓게는 일자리 창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순기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웹 사이트들의 장애인 접근성은 과연 몇 점이나 될까?

한빛맹학교 학생들과 직접 테스트 해보기로 했다.

우선 관공서를 대상으로 해 보자. 학생들은 관공서에 전자민원 한 줄 올릴 수 있을까?

20분 넘도록 접속을 했건만 아무도 인터넷 민원을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일은 쉬울까?

아이들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간다.

이번엔 상업적인 업체에 접속했다. 인터넷 쇼핑은 어떨까?

맹학교 학생들은 웹 사이트에 접속한 2시간 동안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했다. 선생님 지도를 받으면서 시도를 했는데도 말이다. 마치 컴퓨터가 "당신은 접근이 차단됐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웹사이트의 웹 접근성은 68.5점이었다. 2013년 한국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9개 기관 70개 웹 사이트를 평가한 결과이다.

중앙행정부처는 B학점, 공연장은 D학점, 신문사, 방송국, 대형마트는 F학점 등등. 웹접근성 상 문턱이 좀 높다는 것은 단순히 '올라가기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차단됐다'는 뜻과 다름 아니다.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웹에 접근해서 민원서류 하나 떼기 위해 장애인은 이렇게 멀고도 구불구불한 길을 가야 하는 걸까?

최근에 "스마트 정부 3.0" 이라는 구호 아래 '민원 24'등 여러 관공서 인터넷 사이트 구축과 활용으로 민원절차의 간소화와 민원 편의의 증대, 이를 통한 효율성의 증대를 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마치 딴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얘기들이다.

이런 결과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장애인들이 편리를 봐 달라고 사회에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라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법률로 정해진 바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장애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구성원인 국민의 자격으로.

외국의 사례로 잠시 눈을 돌려보자. 장애인 권리가 잘 보장된 영국의 경우를 살펴보자.

영국의 시각장애인 로저 보너 씨는 10년 전 갑작스럽게 시력을 잃은, 공익사업 기획자이다. 출장 갔던 파키스탄에서 이메일이와 다시 한 번 파키스탄을 가게 되었다. 로저 보너 씨는 예약 사이트에 접속해서 어렵지 않게 이슬라마바드행 항공편을 찾을 수 있다.

로저 씨가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항공편을 예약할 수 있는 건 시각장애인단체 '액션 포 블라인드 피플'(Action for blind people) 덕분이다.

장애인들이 정보통신과 보조기기를 충분히 활용하고 어렵지 않게 웹에 접근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누구라도 의지가 있다면 장애를 딛고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활동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 이런 측면에서 영국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얼마 전 공사 인터넷 홈페이지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웹 접근성 미비로 민사소송으로 까지 이어진 사례를 생각하면 정말 하늘과 땅 차이란 표현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영국의 한 나이트클럽의 D.J의 이야기도 있다. 무대 위의 '디제이 멍키'는 마크 니콜슨, 청각장애인이다. 어릴 적 시끄러운 음악 속에 디제잉을 하다가 귀에서 드릴 소리 같은 게 죽을 때까지 들리는 이명(耳鳴)이란 장애를 얻게 됐다. 하지만 이 드릴 소리와 함께 그는 계속해서 디제잉을 한다. 소음을 줄여주는 맞춤형 이어플러그 덕분이다.

영국에 비해 우리 기술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생각의 차이다. 웹 접근권에 대한 생각, 그리고 IT와 보조기기 지원에 대한 인식차이가 두 나라 장애인의 '삶의 질의 차이'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

웹을 비롯한 인터넷 관련 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의학을 위시해 각종 장애인 관련 공학기술의 발달, 즉 융합기술의 발달로 장애인 보조공학기기의 발전은 눈부실 것이다.

그리고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3D프린터기기와 그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장애인 개개인에 맞는 이른바 '개인 맞춤형 보조공학기기'의 발전은 장애인의 삶 전반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일본에서도 장애인 웹 접근권과 보조기술이 초미의 관심사이다. '칼라리노'는 갖다 대면 색깔을 말해주는 보조기기이다. 장애인도 혼자서 옷을 코디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 규모도 방대하다. 일본 인터넷 도서관에 무려 50만 권.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용 오디오북 만 권에 비하면 무려 50배 수준이다. 이는 양 국 시각장애인의 지식의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이 인터넷을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보조기기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IT와 웹 접근권을 조금만 더 보장해 준다면 좋을텐데.

실제 오디오북의 경우는 비단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시력이 약화된 노령자나 글을 모르는 문맹자, 심지어 잠시 눈을 쉬게 하고픈 비장애인에 이르기까지 그 유용함은 실로 범위가 넓다고 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모두 이로운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이렇게 되면 장애인 삶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여기 이미 그 답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세계 최초의 시각장애인 국가자격 속기사 심준구 씨. 심준구 씨는 '시각장애인도 속기사를 할 수 있다.' '최고 수준으로 할 수 있다' 는 것을 온 몸으로 증명해 낸 사람이다.

“정보통신과 보조기술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거예요. ”

심준구 씨는 현재 TV 자막을 제작하는 한국복지방송 대표로 일하며, 제2, 제3의 시각장애 속기사를 키워내고 있다.

우리 장애인들도 자신의 상황과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그에 맞는 직업을 찾는다. 또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뤄 줄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나 능력을 향상시켜 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 고민하고 실현시켜가고 있다. 21세기 고도 기술사회를 살아내고 있는 당당한 한 사람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일지도 모르겠다.

최근 우리나라에선 장애인들에게 주목할 만한 두 가지의 경험이 있었다. '시각 장애 예술가들의 사진전'과 '청각 장애인에게 진동으로 소리를 느끼게 해주는 음악회'가 그 것이다.

음악이 연주될 때마다 진동 의자가 떨리고, 소리가 그래프로 전환돼서 LED 화면에 나타났다. 난생처음 소리를 눈으로 보고, 촉각으로 느낀 청각 장애인들은 들떠 있었다.

2013년 봄 <싸이트 언씬(Sight UnSeen)- 보이지 않는 이들의 시각> 전은 전 세계 시각장애예술가들의 사진전이었다. 이 전시회는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에게도 놀라운 감동을 안겨 주었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사진을 찍고, 경탄할만한 조형물은 또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전시회에 작품을 낸, 미국의 커트 웨스턴 (Kurt Weston) 작가는 필요한 작업이나 기능을 대신해주는 'AT 수평 스캐너' 라는 장비의 힘을 빌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실현시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인 사진전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컴퓨터 정보통신과 보조기술이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고, 시각장애인은 이렇게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재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한국명 홍원서) 박사가 시도했던 시각장애인의 운전시스템 시연도 충격이었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들은 오늘도 웹 접근성을 토론한다. 또 다시 장애인 웹 접근권이 선포되고, 그 때마다 장애인들은 접근 가능한 웹 접근권을 목 놓아 호소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최소한을 정해 놓은 것"이라 일컫는 법(法)이라도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왜 이리 안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것인지.

웹 접근권, IT 접근권이 최근 전 세계 누리꾼을 울린 동영상을 만들어냈다. 인공 와우 수술로 귀가 열린 엄마가 난생 처음 아이 목소리를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감동, 웹 접근권은 장애인 삶을 이렇게 감격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인터넷에서 장애인의 접근이 차단돼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제3부 "장애인 스마트 접근권을 말한다" (토론)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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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Kg의 미숙아로 태어나면서 출생 시 의료사고로 심한 뇌병변장애를 운명처럼 가지게 되었다. 부산장애인자립생활대학 1기로 공부했으며, 대구대 재활과학대학원에 출강한 바도 있다. 지금은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의 이사로 재직 중이다. 모바일‧가전을 포함한 장애인 접근성, 보조공학 등 관련 기술을 다룰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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