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결산]-③장애등급판정기준

2011년의 끝자락에 서있다. 올해 장애인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에이블뉴스가 인터넷설문조사를 통해 선정한 ‘2011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전개한다. 세 번째는 장애등급판정기준이다.

지난해부터 계속된 장애등급판정기준 논란

장애등급판정기준을 놓고 쏟아진 장애인들의 불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장애등급과 관련된 논란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올해로 넘어오면서도 논란과 문제제기는 계속됐다. 매년 장애등급과 관련된 장애인들의 불신이 가득한 상황 속에 복지부는 장애인들이 신뢰할만한 개선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장애인들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지난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보편적인 서비스 권리를 보장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지난해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인연금을 신청한 장애인들이 장애등급심사를 받으며 등급이 하락되는 일이 속출했다. 장애인계는 장애등급심사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정치권도 국정감사 등을 통해 장애를 고려하지 않은 장애등급심사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문제들을 지적하고 나섰다. 장애등급심사와 장애등급판정기준은 지난해 장애인계의 핫 이슈였다.

이같은 반발들은 복지부를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장애인계와 전문가로 구성된 '장애인서비스지원체계 개편기획단'을 꾸리며 활동을 진행했고 개선 방향을 모색, 올해 4월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뇌병변장애 판정기준 개선안 등 내놨지만‥큰 차이없어

먼저 복지부는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판정기준 개선안을 내놓았다. 뇌병변장애인의 장애등급판정기준 도구인 수정바델지수가 뇌병변장애인의 등급하락을 높인다는 지적이 계속되던 찰나였다.

복지부는 수정바델지수의 등급간 점수를 1급은 기존 24점 이하에서 32점 이하, 2급은 25점~39점 사이에서 33점~53점 사이로 조정하는 등 10점 내외 수준으로 조정했다. 또한 수정바델지수로 평가하기 어려운 1~3급의 장애상태에 대해 개별적 장애특성에 맞게 평가할 수 있도록 편마비장애와 관련한 항목을 신설했다.

또한 복지부는 장애등급심사 절차를 개선, 기존 병·의원에서 의사 1인이 수행하던 장애진단과 장애등급판정 업무를 분리하도록 했다. 일선 의사들이 환자를 계속적으로 진료하면서 등급판정을 내리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부담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장애등급을 판정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에 따라 장애진단 업무는 일선 병·의원이, 장애등급부여는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가 맡도록 했다.

안면장애 장애등급판정기준에 안면장애 등급을 5급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안면장애 장애등급판정기준에는 2급1호, 3급11호, 4급9호 이외에 4급3호와 5급1호, 5급2호가 신설됐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가 지난 3월 28일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뇌병변장애판정기준을 뇌병변장애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에 맞게 전면 수정하라"고 촉구하는 모습. ⓒ에이블뉴스

하지만 이런 복지부의 노력은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장애인들의 불신을 없애기에는 부족했다. 뇌병변장애인들은 복지부가 내놓은 뇌병변장애인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해 기존과 달라진 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신체손상이나 기능상실로 인한 기능장애로 판정하는 지체, 시·청각장애인과 달리 뇌병변장애인은 일상생활동작 정도를 수정바델지수로 판정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일상생활동작 정도를 판정하게 되면 같은 정도의 신체나 기능장애가 있더라도 경우에 따라 판정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특히 감각적 장애를 갖고 있지 않은 뇌병변장애인에게 배뇨·배변조절 항목을 적용하는 것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배뇨·배변조절이 여부에 따라 장애등급이 하락되는 것은 뇌병변장애인에게는 불리한 판정기준으로 개선 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심장장애, 통증장애에 대한 피해 계속

실제로 장애등급판정기준으로 인한 장애인들의 피해는 끊임없이 나타났고, 심장장애에 대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도마 위로 올랐다. 장애등급재심사로 인해 등급이 하락하거나 등급 외 판정을 받는 심장장애인들이 계속적으로 늘어난 것.

심장장애는 만성질환으로 약물을 복용하거나 통원치료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장애로, 심장장애인들이 병원에 입원할 경우에는 이미 의식을 잃고 실려 가는 위급상황일 때를 나타낸다는 게 심장장애인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장애등급판정기준에는 이런 고려 없이 입원 관련 항목인 ‘입원병력’과 ‘입원횟수(최근 6개월 이내)’ 항목을 큰 비중으로 두고 있다. 결국 장애등급판정기준대로라면 위급상황일 경우에만 심장장애 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심장장애인들은 등급재심사가 돌아올까 등급이 하락될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실정이다.

통증장애에 대한 등급판정기준도 문제되긴 마찬가지다. 지체장애 1급에서 5급으로 등급이 하락된 정순기씨는 장애등급 판정 시 감각손실이나 통증에 의한 장애를 배제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정씨는 지난 1월 의사로부터 '복합부위 통증증후근'으로 지체장애1급이라는 소견을 받았고, 이후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에서 재판정을 받았다.

올해에는 통증장애에 대한 등급판정기준이 문제로 떠올랐다. 정순기씨는 '지체기능장애의 경우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장애등급판정기준으로 인해 장애등급이 하락됐다. 사진은 정씨가 국민연금공단과의 면담을 진행한 뒤 나서는 모습. ⓒ에이블뉴스

하지만 정씨는 장애등급 판정기준 중 '지체기능장애의 경우에는 감각 손실이나 통증에 의한 장애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조항에 따라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의신청을 제기해 받은 직접심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고, 지체장애 5급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정순기씨는 이에 항의하며 국민연금공단에서 1인시위를 벌였고, 그 결과로 대면심사를 다시 받았지만 최종 지체장애 3급으로 결정됐다. 정순기씨는 “통증으로 인해 사지마비장애가 인정된다고 얘기하면서 장애1급으로 판정되지 않는 지 이해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국민연금공단이 장애등급심사를 매기는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서인환 사무총장은 "국민연금공단이 하는 판정기준이 명확해져야 한다. 판정이 제대로 되는지 모니터링이 가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국민연금공단이 단독으로 심사를 진행하는 만큼 심사 정보를 공개해 투명한 심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장애등급판정기준에 대한 문제제기는 장애인들만 한 것이 아니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7월 심장장애인 권혁선씨가 '부당한 장애등급결정 취소요청' 민원을 제기한 것에 대해 복지부의 장애등급심사 결정이 부당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심장장애 2급이던 권혁선씨는 지체장애 4급의 중복합산으로 장애1급으로 지내왔지만, 장애등급재심사에 따라 심장장애 등급외 판정을 받고, 최종 지체 4급으로 결정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신청인의 심장기능장애가 지속돼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운데도 등급외로 판정한 것은 부당하다"며 재심사할 것을 의견 표명했다.

장애인에겐 두려움의 존재‥특성 반영 기준 마련 멀어

이런 와중에 복지부는 올해 4월부터 장애등급심사 대상자를 1~6급의 모든 신규장애인으로 확대했다. 장애등급심사는 기존 장애등록자 중 재판정 기간이 도래하거나 활동보조서비스 및 장애인연금 등을 신청한 사람 중 의료기관에서 1~3급의 장애진단을 받은 사람에 한해 실시됐지만, 1~6급의 장애인등록 신규 신청자 전체에 대해 장애등급심사를 적용하기로 했다.

결국 장애등급판정기준은 장애인에겐 더욱 큰 두려움의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장애인 등록여부와 등급 차이에 따라 각종 복지서비스가 달라지는 현 장애인정책 속에서 장애등급판정기준은 모든 장애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핵심 기준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들은 장애인의 구체적인 특성을 반영한 장애등급판정기준 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가 장애유형별 특성에 따른 획기적인 장애등급판정기준 개선안을 내놓지 않는다면, 장애인의 장애등급 하락사태와 함께 장애등급판정기준, 나아가 장애인등급제에 대한 불신은 매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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